머리를 빡빡 밀어야 CEO가 될 수 있는 이곳

머니투데이 실리콘밸리=유병률 특파원 2013.08.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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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률의 체인지더월드] <60> 실리콘밸리 IT회사들의 나이 차별

왼쪽은 머리를 밀기 전 랜디 아담스. 오른쪽은 민 이후. <사진: 위키피디아, 포브스> 왼쪽은 머리를 밀기 전 랜디 아담스. 오른쪽은 민 이후. <사진: 위키피디아, 포브스>


실리콘밸리에서의 환갑은 마흔이다. 동성애 차별도, 성차별도 적은 이곳에서 유독 넘을 수 없는 장벽이 바로 나이라는 뜻이다.

작년 말 실리콘밸리에서 회자된 이야기 하나 소개한다. 랜디 아담스(61)라고 하면 그래도 이 바닥에서는 꽤 알려진 사람이다. ‘어도비 아크로뱃(Adobe Acrobat)’ 개발을 주도했고, 10개나 되는 회사를 창업했다.

그런데 최고경영자(CEO)를 모집하는 면접에서 번번이 낙방을 하는 것이었다. 다른 후보들보다 나이가 많기 때문이라고 판단한 그는 머리를 아예 빡빡 밀어 버렸다. 신발도 ‘컨버스’ 운동화로 바꾸고 면접을 보러 갔다. 덕분에 그는 모바일 컨퍼런스콜 서비스회사인 ‘소셜다이얼’ CEO가 될 수 있었다. 그 이후 그는 눈꺼풀 들어올리는 수술도 했고, 최신기기는 무조건 구입한다고 한다.



그는 “머리를 밀지 않았으면 CEO 자리를 얻을 수 없었을 것”이라며 실리콘밸리의 나이 든 구직자들에게 면접 팁도 소개했다. “서류가방 대신 백팩을 맬 것, 델 노트북과 블랙베리는 애플과 안드로이드 제품으로 즉시 바꿀 것. 황금색 로렉스는 최악이다. 손목시계는 차지 마라.”

당시 로이터통신이 랜디 아담스의 일화를 소개한 이유는 실리콘밸리의 공공연한 연령 차별을 지적하기 위해서였다. 기사의 제목도 ‘실리콘밸리의 추악한 비밀, 연령차별(Silicon Valley’s dirty secret ? age bias)’이었다.



혁신과 테크놀로지의 메카인 실리콘밸리만큼이나 젊고, 어린 인재를 좋아하는 곳도 드물듯하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가 29살이고, 그가 10억 달러(약 1조1000억원)에 인수한 인스타그램 창업자도 29살이다. 또 야후가 각각 11억 달러(약1조2000억원)와 3000만 달러(약 330억원)에 인수한 텀블러(Tumbir)와 섬리(Summil) 창업자는 27살과 17살이다.

창업자 나이가 이 정도면 직원들의 나이도 짐작이 갈만하다. 실리콘밸리가 속해있는 캘리포니아주 고용개발부에 따르면, IT관련 직업의 절대 다수가 25~44살이다. 그 중에서도 소프트웨어 앱이나 웹 개발자들은 25~34세가 대부분이다.

이곳에서는 마흔 살만 넘어도 연로하다. 반도체 같은 하드웨어 말고는 명함 내밀기가 쉽지 않다. 미국에서 연령차별과 관련한 고용분쟁이 가장 많은 곳도 실리콘밸리이다. 경험이 포트폴리오가 되기는커녕 장애이고, ‘베테랑’이라는 표현이 결코 자랑거리가 못 된다. 10살이나 어린 임원한테 구직 인터뷰를 봐야 하는 일도 다반사이다. 한편에서는 대규모로 감원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엔지니어가 부족하다고 이민법을 개정해서라도 젊은 해외인재를 데려와야 한다고 로비를 하는 곳이 바로 실리콘밸리이다.


미국 언론들도 “실리콘밸리에서는 나이가 저주이다(age can be a curse)”, “26살이 넘었으면 응시할 필요도 없다”고 심심찮게 보도한다. 최근 ‘샌프란시스코 크로니컬’은 경력 번듯한 40대 IT 구직자들의 비애를 소개하면서, “40~50대를 경력의 황금기라 하지만, 실리콘밸리에서는 최소한 10년은 더 빠르다”고 적기도 했다.

테크놀로지가 만들고 있는 창조적 파괴를 보면, 실리콘밸리의 비정한 연령 차별이 한편으로 이해도 간다. 기술의 사이클이 워낙 빠르게 돌아가기 때문에 기업은 늘 최신 기술로 무장해야 한다. 굳이 더 비싼 돈 들여가며 장기 숙련된 엔지니어들을 붙들고 있을 필요가 없다. 현재 개발중인 상품에 꼭 필요한 기술을 가진 엔지니어를 그때그때 찾아 쓰는 것이 합리적이다.

상품의 사이클도 워낙 빠르게 돌아가기 때문에 조직은 가볍고 빨라야 한다. 밤새 코딩해서, 론칭하고, 수정하는 작업을 수도 없이 반복해야 한다. 빠르게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층층의 관리자급 매니저들은 오히려 걸리적 거린다.

마크 저크버그는 2007년 스탠포드대 강연에서 이렇게 이야기한 적도 있다. “젊을수록 똑똑하다. 체스 챔피언들도 다들 30살 미만이지 않는가. 젊을수록 삶도 단순하다. 자동차도 가족도 없어도 된다. 이런 단순한 삶이 진짜 중요한 것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해준다.”

대량생산의 시대를 열었던 테크놀로지는 사람을 가리지 않았지만, 혁신시대의 테크놀로지는 사람을 가린다. 누가 좀 더 최신의 기술을 가지고 있느냐는 나이 순으로 말이다. 40대 후반에 아이팟을 개발하고, 50대 초반에 아이폰을 만들어낸 스티브 잡스는 실리콘밸리에서도 예외에 가깝다.

그러나 젊은 나이를 강조한 마크 저크버그도 이제 서른 살이 되며, 그도 세월을 거스를 수 없다. 마흔이 되고 쉰이 된 저크버그가 비록 밤새 코딩할 체력은 떨어질 수 있어도 그의 열정이 식을 것이라 생각되진 않는다.

애플의 수석부사장 조너선 아이브는 수년전 한 디자인 컨퍼런스에서 이렇게 말했다. “스티브가 말하는 애플의 목표는 돈 버는 것이 아닙니다. 애플의 목표는 정말로 좋은 제품, 정말로 위대한 제품을 만드는 것입니다.”라고.

잡스가 살아있었다면 예순이 되든, 일흔이 되든 더 꼬장꼬장하게 더 위대한 제품을 위해 열정을 불태웠을 것이 분명하다. 여전히 블랙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으로 말이다.

문제는 나이가 아니라 열정이다. 비록 체력이 떨어지더라도 공부하는 자세와 열정을 유지해야한다. 나이와 함께 늘어나는 고집과 선입견을 랜디 아담스처럼 머리라도 한번 빡빡 밀면서 날려버리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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