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발 '亞 금융위기' 닥치나… 어게인 1997?

머니투데이 김신회 기자, 차예지 기자, 권다희 기자 2013.08.20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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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루피를 시작으로 아시아 화폐가치가 잇달아 급락하며 1997년 아시아 경제를 초토화시킨 외환위기가 재현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인도發 금융위기 우려 고조… 1997년 외환위기 데자뷔?
인도 경제에서 최근 나타나고 있는 증상들은 태국을 시작으로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필리핀 경제를 차례로 무너뜨리며 한국에도 엄청난 후폭풍을 남긴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와 비슷하다.



인도의 루피 가치는 올들어 20% 이상 하락했다. 루피/달러 환율은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지난 5월말 양적완화 축소 가능성을 처음 내비치면 지난 6월 사상 처음으로 심리적 지지선인 60루피를 돌파했다(루피 가치 하락).

루피 가치는 20일 달러 대비 64루피까지 돌파하며 지난 6월 이후에만 12.3% 급락했다. 중앙은행인 인도준비은행(RBI)이 시장에 개입하고 있지만 전혀 효력이 없는 상태다.



루피 가치가 급락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인도 경제와 금융시장을 떠받쳐왔던 외국인 자금이 대거 빠져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6월에만 외국인 기관투자가들은 인도 증시에서 1063억8000만루피, 약 2조200억원의 자금을 빼갔다. 월간 기준으로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지난 2008년 10월 이후 가장 많은 액수다.

아시아 외환위기 때 아시아 신흥국들이 핫머니의 갑작스런 유출에 따른 달러 품귀로 파란을 겪었던 것과 유사하다.


1997년 6월30일부터 같은 해 12월31일까지 외국인 자금이 이탈하며 태국 바트는 달러 대비 48% 추락했고 같은 기간 인도네시아 루피아, 말레이시아 링깃, 필리핀 페소는 각각 44%, 35%, 34% 급락했다. 6개월 새 원화 가치도 48%나 하락했다.

버냉키 의장이 처음 출구전략을 시사한 이후 인도네시아 루피아는 달러 대비 9.9% 떨어졌고 말레이시아 링키트는 6.1%, 태국 바트는 4% 떨어졌다.

◇연준 리스크에 경상수지 적자국 자금이탈 가속화

최근 외국인 자금은 아시아 경상수지 적자국에서 빠른 속도로 빠져나가고 있다. 이 역시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때와 유사하다.

당시 아시아 외환위기는 경상수지 적자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자금이 유입되며 통화 가치가 경제 상황에 비해 높게 유지돼 왔던 국가들에서 해외 투자자들이 자본을 급격히 회수하며 발생했다.

1996년 가을 태국 금융기관들이 부실대출로 인해 연쇄적으로 대규모 대손에 직면하자 해외 투자자들이 태국에 대한 대출을 급격히 축소하고 자금회수에 나서며 바트화에 대한 평가절하 압력이 커졌다.

태국 외환위기는 경제상황 악화에도 불구하고 정부 개입 등으로 통화가치를 인위적으로 지탱해왔던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으로 통화 절하 압력을 확산시켰다.

때마침 엔저로 일본 기업들이 동남아 지역에 대한 투자를 회수하고 동남아 국가들이 중국과 가격경쟁력에서도 밀리자 외국인 자금의 이탈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지금 발생하고 있는 동남아 지역에서 외국인 자금 이탈은 미국의 통화정책 정상화 우려라는 외부 요인이 촉발시켰다. 전민규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1997년과 지금의 차이점 중 하나는 미국 출구전략이라는 외부 악재와 이에 따른 불확실성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의 통화정책이 정상화될 때 가장 큰 타격을 받게 되는 국가는 '경상수지 적자'를 '자본수지 흑자'로 보전해 왔던 국가들이다. 경상수지 적자국은 교역을 통해 외화를 벌이들일 능력은 떨어지지만 미국의 통화 완화정책으로 늘어난 달러 유입의 수혜를 입어 왔다. 따라서 달러가 미국으로 회귀하면 큰 타격이 우려된다.

글로벌 금융위기 후 연준의 통화부양책이 전례 없이 컸던 탓에 통화정책을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시나리오도 불확실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연준은 지난해부터 매월 850억달러의 모기지 채권과 국채를 매입하는 3번째 QE를 실시하고 있다. 3차례 QE로 시중에 풀린 유동성은 2008년 대비 3배가량 늘어난 것으로 추산된다.

영국의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2009년 이후 이머징마켓에 유입된 자금이 4조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위기 확산될까? 외환보유액 확충 등 여건 달라

현재 자금 이탈은 인도와 인도네시아에서 두드러지지만 말레이시아 등 다른 동남아 경상적자국도 걱정스러운 국가로 꼽힌다.

리처드 옛셍가 호주 ANZ은행 글로벌 마켓 리서치 대표는 "말레이시아와 태국은 지난 몇 년간 대출이 급격히 늘어 레버리지 정도가 매우 높다"고 우려했다. 차입비중이 높을 경우 금리가 오르면 부채 부담이 급증하게 된다.

말레이시아는 지난 1분기에 1997년 이후 첫 경상수지 적자를 냈으며 해외자본 의존도가 높아 미국 양적완화 축소에 취약한 국가로 꼽힌다. 말레이시아 링기트는 올들어 8% 가랑 하락하며 3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에 비해 아시아 국가들이 외환보유액을 충분이 확보해 놓은 점은 당시와 비교해 낙관적인 전망을 가능케 한다.

대외 상황도 다소 다르다. HSBC는 최근 보고서에서 최근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 경제를 1997년의 상황과 비교하기 쉽지만 잘못이라고 강조했다.

아시아 경제에 대한 우려는 연준의 양적완화 축소 가능성에서 비롯됐는데 과거 사례를 봤을 때 미국의 통화정책 선회로 인한 타격은 크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대표적으로 1994년에 연준이 갑자기 금리인상을 단행했을 때도 일본은행(BOJ)이 통화완화 정책을 유지한 결과 아시아 신흥국들은 성장을 지속했다. 현재 BOJ가 아베 신조 총리 집권 후 여느 때보다 강력한 통화부양책을 쓰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시아 외환위기가 재현될 우려는 없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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