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격의 아메리카노'-카페인 권하는 사회

머니투데이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 2013.07.18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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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마이너'의 세상읽기]

편집자주 수십억건의 소셜 빅데이터에 나타난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관찰해 의미있는 정보를 이끌어내는 '데이터 마이너(Data Miner)'의 눈으로 세상 이야기를 색다르게 풀어보고자 합니다. 우리의 미래는 현재의 일상 속에 녹아있기에 데이터 마이너는 일상을 보면 다가올 세상을 읽어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진격의 아메리카노'-카페인 권하는 사회


최근 3년간 ‘마시다’라는 행위에 대한 사람들의 표현을 살펴보니 ‘커피’와 ‘물’의 큰 상승이 보입니다. 특히 커피는 수천년간 한국사람들에게 사랑받은 술을 제치고 어느새 ‘마시는’ 행위와 가장 많이 연관되는 대상이 됐습니다.

15억건의 트윗을 통해 분석해 본 바에 의하면 우리는 하루 3번 커피를 찾습니다.



보통 가장 먼저 마시게 되는 커피는 ‘모닝 커피’ 겠지요. 보통 출근 전후 오전 9시에서 10시 사이에 마시게 되는 이 커피는 전날의 숙취와 피로를 풀어주는 모양입니다. 어제 마신 술을 빨리 뇌에서 몰아내는데 카페인 만한 것도 없긴 하지요.

두 번째 커피는 오후 1시에 마시는 ‘테이크 아웃’ 커피입니다.
구내식당에서 건강을 위해 혹은 다이어트를 위해 500칼로리 이하의 점심을 선택하고는, 그 마저도 남기고 회사 건물 밖으로 커피를 마시러 갑니다. 점심 값보다 1000원 이상 비싸고 470 칼로리나 되는 얼음 섞인 카푸치노를 집어 들면서도 개의치 않는 유명 커피전문점의 ‘테이크 아웃’ 커피 말입니다.



세 번째 커피는 오후 4시쯤 찾아옵니다.
하루 종일 상사가 저지른 불합리한 행위에 대한 뒷담화가 이뤄지는 회사 근처 커피집의 커피 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앞으로 성공적으로 직장생활을 마감한 뒤 퇴직금으로 커피 관련 사업을 한다면 어떤 커피를 팔아야 할까요? 여기서 성공적으로 마감한다는 것은 3~5억에 달하는 커피전문점 창업이 가능한 퇴직금 수령을 의미합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치킨집’을 해야 하거든요.

위의 분석에 따르면 아침엔 자판기, 점심엔 유명 프랜차이즈, 오후엔 테라스가 있는 카페의 커피가 요구되겠지요. 이렇듯 같은 커피이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가 맥락에 따라 다릅니다


여러 커피 종류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아메리카노’인데요. 소셜미디어의 빅데이터를 분석해보면 ‘아메리카노’는 지난 2008년 이후 400% 이상 관심도가 증가해 ‘카푸치노’, ‘카페라테’ 등 다른 커피 종류와는 비교할 수 없는 약진을 보여줍니다.

아메리카노의 급상승이 상징하는 것은, 우리에게 커피 둘에 프림 둘, 설탕 셋과 같이 노동의 어려움을 쉬게 해 주던 달디 단 커피가 쓰디 쓴 블랙 커피로 바뀐 것이라 할 수 있겠죠.

‘아메리카노’의 급상승은 어떤 의미일까요?
아메리카노는 미국 독립전쟁의 시발점이었던 보스턴 차 사건 이후에 차 대신 커피를 마셔야 했던 미국인들의 삶에서 출발했다고 합니다. 이후 2차 세계대전 때 유럽에 갔던 미군들이 마시던 것을 보고 유럽인들이 이름 붙였다는 설이 있습니다. 여기에 산업혁명이 이뤄지던 시기 노동력 극대화를 위해 커피가 쓰였다는 이야기도 함께 떠오릅니다.

우리 삶의 결핍과 욕망이 물건에 깃든 의미를 만들어내고 바꾸게 됩니다.

아메리카노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다는 것은 결국 쓴 커피를 요구하는 것일 텐데, 이는 육체노동의 고단함을 달래주던 달달한 커피와는 사뭇 다르게 느껴집니다. 정신 노동으로 힘든 요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격려 차원에서 카페인을 원하는 것이겠지요.

이것의 진화된 형태로서 외국에선 클럽에서 밤새워 놀기 위한 고카페인 음료가 우리나라에선 야근과 시험의 대비책으로 책상위에 살포시 놓여져있는 장면을 떠올리시면 될 것입니다.

학창 시절 누구나 한번쯤은 성적에 대한 압박으로 잠을 쫓는 약이나 자판기 커피를 몇잔 씩 들이켜본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우리가 잠을 푹 자는 것이 일종의 죄책감처럼 다가오는 것도 당연하겠지요.

육체노동의 시간을 벌기 위해 잠을 희생하던 세상이 이제 지식을 사고 파는 세상으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잠을 자지 않으려고 카페인을 권하는 사회는 불면증과 우울증의 부작용을 차곡차곡 쌓아갑니다. 미하엘 엔데는 이미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인 1973년도에 그의 소설 ‘모모’에 회색인간을 등장시켜 이렇게 서로의 시간을 탐하는 사회의 암울함에 대해 경고했습니다.

이제 카페인을 권하는 대신 커피 향을 권하는 사회로 바뀔 때도 되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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