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호의 체인지업]김기태감독의 LG 야구는 왜 강해졌을까

머니투데이 장윤호 스타뉴스 대표 2013.07.06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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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김기태 감독 ⓒ사진제공 = OSEN↑LG 김기태 감독 ⓒ사진제공 = OSEN


물론 야구는 상대적이다.

김기태 감독(44)이 이끄는 LG는 3일 잠실 홈구장에서 열린 한화전에서 1회말 2점을 선취하며 2-0으로 앞섰다가 곧 이은 2회초 수비에서 대거 7실점하고 말았다. 경기 초반이어서 2-7은 5점차이기는 해도 추격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진행 상황을 보면 LG가 2회말 한 점을 따라가 3-7, 4회초 한화가 1점을 도망가 3-8, 다시 5점차, 그리고 4회말 곧 바로 LG가 1점을 추격해 4-8로 중반전 시작까지 4점차 한화 리드였다. LG는 5회 3점을 올려 7-8, 한 점차로 접근한 뒤 7회 2점을 추가해 9-8로 역전승했다.



단순하게 표현하다 보면 LG가 2-7로 뒤지던 경기를 극적으로 뒤집은 것 같지만 경기 흐름은 언제든지 나올 수 있는 내용이었다. LG가 9회말 마지막 공격에서 9-8로 역전승한 것과는 차이가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LG라는 팀(Team)이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LG는 달라졌기 때문에 강해졌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그 답은 비로소 LG가 ‘팀(Team)’이 됐다는 것이다. 약했을 때의 LG는 스타 플레이어(Star Player)들이 각자 자신들만의 야구를 했다. 모래알처럼 흩어져 ‘팀(Team)’으로 보이지 않았다. 신예급 선수나 선수 가족이 감독을 비난하는 일도 벌어졌다.



그런데 올해는 변했다.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39세의 외야수 이병규와 메이저리그 출신인 봉중근(33)도 팀(Team)의 일원이 됐음을 보여주고 있다.

↑ 기성용과 홍명보 감독 ⓒ사진제공 = OSEN↑ 기성용과 홍명보 감독 ⓒ사진제공 = OSEN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자리를 홍명보 감독에게 물려주고 프로축구 전북으로 복귀한 최강희 감독은 뒤늦게 터져 나온 기성용(스완지시티)의 비밀 페이스북 내용으로 지도자로서의 위상에 타격을 받았다.

한국 축구는 월드컵 8회 연속 진출에 성공하고도 무엇인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감독과 일부 선수들의 갈등 관계가 확인되면서 축구 팬들은 물론 전 국민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이 과정을 보면서 LG가 약했을 때의 분위기가 떠올랐다.


오래 전의 일이다. 한국야구에 처음으로 ‘드림팀(Dream Team)’이라는 명칭이 등장했다. 지난 1988년 한국인 유일의 메이저리거 박찬호가 방콕 아시안게임에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참가하게 되자 한국 야구 국가대표팀에 ‘드림팀(Dream Team)’이라는 대단한 수식어가 붙었다.

드림 팀이라는 표현은 미 프로농구 NBA 스타들이 올림픽을 금메달을 위해 국가대표로 나설 때 흔히 사용된 표현이다. 말 그대로 꿈에서나 볼 수 있는 최고의 스타들로 구성된 팀을 의미한다.

그런데 지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미국 농구 국가대표팀은 ‘드림팀’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그 이유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당한 치욕적인 망신 때문이었다. ‘드림팀’이었던 미국은 아테네 올림픽에서 겨우 동메달에 그쳐 ‘건방지기만 한 스타들’이라는 비난을 받은 바 있다.

4년 후인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명예 회복에 나선 미국 농구 국가대표팀은 LA 레이커스의 코비 브라이언트 등이 활약하면서 올림픽 2연패에 나선 스페인을 118-107로 제압하고 금메달을 조국에 선사했다.

시상식이 끝난 후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미 농구 대표팀은 기념사진을 촬영하면서 엄청난 몸값의 스타들이 모두 자신이 받은 금메달을 감독이었던 마이크 크루제우스키의 목에 걸어주었다. 그리고 감독을 중심으로 도열했다. 감독의 지휘 하에 하나가 돼 금메달을 획득했음을 과시했다.

미국 농구 대표팀은 베이징 올림픽에서 달라진 점이 있었다. ‘드림팀’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팀(Team) USA’라고 했다. ‘자기 밖에 모르는 이기심에 오만까지 더해진 국가대표들이라는 비난을 받았던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당시와 확실하게 선을 긋고 차별화에 나섰던 것이다.

조국을 대표하는 국가대표 ‘팀(Team)’으로 새롭게 출발해 미국 농구의 자존심을 회복해달라는 미국인의 염원이 ‘팀(Team) USA’라는 수식어에 담겨졌다.

베이징 올림픽 당시 한국 야구 국가대표팀은 ‘드림팀’이라는 평가를 받지 못했다. 당시 두산의 김경문 감독이 국가대표팀 감독이었고 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4번 타자 이승엽이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었으나 드림팀으로 불리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 대표팀은 쿠바와의 결승전에서 9회말 포수 강민호가 류현진이 던진 스트라이크 같은 공을 주심이 볼로 판정하자 어필을 하다가 퇴장을 당하는 사태가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3-2 한 점차 리드를 지켜냈다. 9전 전승의 감격적인 금메달이었다.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은 1904년 한국에 야구가 도입 된 이후 최고의 순간으로 기록되고 있다. 야구는 2008 베이징올림픽을 마지막으로 올림픽 정식 종목에서 탈락돼 현재 2020년 올림픽 재진입을 목표로 치열하게 스포츠 외교를 펼치고 있는 중이다.

당시 베이징 올림픽 한국 야구 대표팀은 ‘드림팀’이 아니라 ‘팀(Team) 코리아’였다. 부진을 거듭하다가 일본과의 준결승전에서 결승 2점 홈런을 터뜨리고 흘렸던 이승엽의 눈물이 팀 코리아에 녹아들었고 마침내 금메달로 결실을 맺었다.

현재까지 LG는 ‘팀(Team) LG’로 진화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 중심에 4일 한화전을 앞두고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된 팀의 막내 투수 임찬규에게 미안함 마음을 전한 김기태 감독이 있다.

반면 한국 축구 새 사령탑 홍명보 감독은 ‘팀(Team) 코리아’를 만드는 것이 시급한 과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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