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잘 나가고 한국경제 침체 못 벗어나는 이유

머니투데이 홍찬선 부국장겸 산업1부장 2013.07.06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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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선의 네글세상;4자성어로 본 한국]<11>거안사위(居安思危) vs 갈이천정(渴而穿井)

삼성 잘 나가고 한국경제 침체 못 벗어나는 이유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를 제외하면 한국경제 상황은 참담합니다.’

올 들어 자주 듣는 ‘삼성전자착시론’이다. 지난 1분기 성장률이 0.8%로 우려했던 것보다 낫다는 게 정부와 한국은행의 판단이지만 ‘삼성전자’를 빼면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일부에서는 1998년의 외환위기와 2008년의 글로벌금융위기 때보다 더 어렵다는 얘기도 나온다.

반도체 및 스마트폰 덕분으로 ‘나홀로 호황’을 구가는 삼성전자, 노조의 특근거부에도 상반기 중에 사상 최대 판매를 기록한 현대차 (241,000원 ▼8,000 -3.21%) 때문에 경제가 실제보다 부풀려져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비판 겸 하소연이다.



삼성과 현대차는 잘 나가는데 한국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보면서 떠오르는 말은 거안사위(居安思危)다. 아무런 문제가 없어 태평성대일 때 위기를 생각한다는 뜻이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 “현실에 안주하지 말라”며 끊임없이 위기의식을 강조했다. “No1 또는 Only1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다” “5년 후, 10년 후에는 삼성의 1등 제품이 모두 사라질 것”이라며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이 덕분으로 삼성전자 (77,600원 ▼400 -0.51%)는 지난 2분기 중 매출(57조) 영업이익(9.5조원) 영업이익률(16.7%)이 모두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세계 시장점유율이 1등인 상품이 7개나 된 덕분이다.



일러스트=임종철일러스트=임종철
거안사위는 일이 닥치기 전에 준비를 함으로써 피해를 최소화하는 상두주무(桑杜綢繆)와도 일맥상통한다. 상두주무란 새가 비 내리기 전에 뽕나무 뿌리를 물어다 둥지 입구를 막아 빗물을 피하는 것을 가리킨다. 하찮은 미물인 새마저 유비무환(有備無患)을 실천하는 것을 보면 영장류 가운데서도 가장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사전에 대책을 세우지 못하는 게 한심하다. 두산그룹은 위기가 닥치기 전에 돈이 되는 계열사를 먼저 파는 구조조정을 단행함으로써 어려움을 겪지 않으면서 비즈니스 포트폴리오를 성공적으로 바꾸는 상두주무를 실천한 것으로 유명하다.

반면 소를 잃은 뒤에야 외양간을 고치는 잘못을 저지르는 기업이 적지 않다. 요즘 어려움을 겪고 있는 STX그룹과 지난해 인구에 회자됐던 웅진그룹, 그리고 대우건설을 인수했다가 ‘승자의 저주’에 걸려 그룹이 휘청했던 금호그룹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기업은 목마른 뒤에야 우물을 파기 시작하는 갈이천정(渴而穿井)의 잘못을 저질렀다. 경영위기가 닥친 이후에 억지로 떠밀려서 계열사를 팔려고 하니, 제값을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매각시기도 늦어져 그룹 전체가 흔들리는 비극을 겪게 됐다. 위기 전에는 비싸게라도 회사를 사려는 '판매자 시장(Sellers' Market)'이 형성되지만, 문제가 불거진 이후에는 바겐세일을 해도 잘 팔리는 않는 사려는 사람이 주도권을 행사하며 골라서 살 수 있는 구매자 시장(Buyers' Market)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한국경제를 이끌고 있는 정치인과 관료들도 거안사위와 상두주무보다는 갈이천정의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나온다. 경제 사령탑인 현오석 부총리는 가계부채가 1000조원이 넘었는데도 위기상황으로 보지 않는다고 했다. 가계부채 부담으로 경기회복이 지연될 수는 있지만 부동산시장도 회복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국회는 한술 더 떠 기업의 투자와 일자리 창출의 발목을 잡는 이른바 ‘경제민주화법’을 무더기로 통과시켰다.

먼저 주도권을 잡는 사람이 유리하다(先發制人, 선발제인). 기업의 경영과 국가 경제 운영도 마찬가지다. 한국경제에 불이 붙어 초토화될 우려가 높은데도 NLL(북방한계선)과 경제민주화 논란이 그치지 않는다. 거안사위와 상두주무는 물론 갈이천정에 대한 인식마저 없는 정치인과 관료 때문에 우리의 아들, 딸들이 앞으로 무엇을 먹고 살 것인지 정말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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