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는 선진국의 표상입니다. 기아에 허덕이는 제3세계 어린이들이 나오는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지방을 태우고자 러닝머신을 뛰는 것은 로마의 귀족들이 산해진미를 즐기면서 구토하는 방을 두었던 것과 그리 다를 바 없다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마저 듭니다.
소셜데이터에서도 비키니를 이야기하는 것보다 다이어트를 이야기하는 시점이 약 2주를 앞서고 있으니 우리 인간이 견딜 수 있는 다이어트의 한계는 14일이 최대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렇다보니 4주나 6주를 버텨 체중을 조절할 수 있다는 방식의 건전한(?) 광고는 아무래도 사람의 마음을 끌기 쉽지 않겠습니다.
올해 서울연구원 발표에 따르면 부모의 소득이 많을수록 아이의 비만도가 낮았고, 부모의 소득이 적을수록 아이의 비만도는 높았으며 부모가 학력이 높으면 높을수록 아이들의 비만도가 낮았다고 합니다.
선과 악의 대결구도도 아닌데 '날씬하다'와 '뚱뚱하다'는 말에 평가적 표현이 나오는 것은 사회성을 가진 언어가 우리의 가치판단체계를 반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몸매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지게 된 것은 성형의 확산과 궤를 같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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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미디어 확산과 함께 시작된 인증샷의 유통으로 외모에 대한 판단이 첫 만남을 결정하는 전제조건이 돼 버렸습니다. 이 조건에 따라 이성을 만난다는 기본욕구가 제어되면서 10여년 동안 성형이 더욱 확산됐죠. 그 결과는 다시 외모에 대한 기준을 올리게 되면서 목표를 이루기가 더 어려워졌고, 이는 몸짱 열풍으로 번지게 됐습니다.
지난 3월 모백화점은 '빅사이즈 언더웨어 매장'을 연다고 밝혔습니다. 최근 3년 간 매출을 분석한 결과 C컵 이상 중대형 사이즈 브래지어제품의 매출비중이 31%로 4배 가까이 높아진 데 따른 것이라고 합니다.
"식습관의 변화로 체형이 서구화되는데다 굴곡 있는 몸매가 사회적으로 각광을 받으면서 나타난 변화"라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획득된 형질은 유전되지 않는다는 진화론적 견해까지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수천 년의 시간도 짧다고 할 수 있는 진화의 체계를 단 수십 년 만에 이룩했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일입니다. 사회적으로 각광받으면 즉시 그 수가 증가하는 이상형이라니, 과학기술의 발전은 놀랍기까지 하네요.
전 세계 성형시장에서 한국의 성형이 차지하는 비중이 25%로 추산됩니다. 어림잡아 계산해도 전세계 인구 대비 15배 이상 수준의 성형시장을 갖고 있으니 가히 성형공화국이라 부를 수 있겠습니다.
남들의 시선에 과도하게 신경쓰거나 외부의 이상향을 내면화하는 것은 정신건강에도 좋지 않습니다. 행복에 대한 기준이 단일화되는 순간, 그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은 불행해지고 마니까요.
서로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나만의 기준을 세우는 것은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모둠살이를 하면서 우리 사회의 기준이 일시에 바뀌길 기대하면 그건 무모한 행동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오늘은 힘들더라도 아침식사 하기 전 오전 7시부터 다이어트를 결심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