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덕지 교육 현주소는] ⑪ 원촌중 학생이 서일중 학생에게 음료수를 전해달라고 한 까닭은?

머니투데이 MT교육 정도원 기자 2013.06.15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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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 원촌중학교에서 열린 서울시교육감배 학교스포츠클럽 야구 원촌중 대 서일중 경기에서 한 원촌중 학생이 경기의 기록을 하고 있다. /사진=정도원 기자1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 원촌중학교에서 열린 서울시교육감배 학교스포츠클럽 야구 원촌중 대 서일중 경기에서 한 원촌중 학생이 경기의 기록을 하고 있다. /사진=정도원 기자


학교 폭력, 왕따, 자살… 연일 지면을 장식하는 교육 현장의 흉흉한 소식에 학부모는 가슴이 내려앉고 아이들은 학교 가기를 두려워한다. 반면 학교스포츠클럽 활동과 관련해서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 훈훈한 모습에 눈을 비비고 다시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1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 원촌중학교에서 열린 서울시교육감배 학교스포츠클럽 야구 원촌중 대 서일중 경기를 통해 교육 현장에서의 학교스포츠클럽 활동상과 효과를 들여다본다.

본부석의 오정훈 서울시교육청 장학사는 의문을 풀 길이 없었다. 3회말 홈팀 원촌중의 공격이 시작될 무렵 이 학교 신종헌 군이 본부석에 와서 "서일중 유격수에게 건네달라"며 음료수를 한 병 맡기고 갔기 때문이다. 오 장학사의 의아한 눈빛에 신 군은 "기분이 상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라고 답하고 덕아웃으로 돌아갔다.



'둘이 부딪쳤나?' 2회말 원촌중 공격 중에 8번 타자 신범진 군이 3루수 직선타를 때렸다. 글러브로 빨려들어가는 타구에 기겁한 3루 주자가 허겁지겁 귀루하는 과정에서 3루를 베이스태그하려 한 3루수와 충돌하면서 엎어졌던 적이 있다. 서로 일으켜 세워주고 흙먼지를 털어주는 모습이 훈훈했다. 혹시 그 일 때문일까.

의문은 서일중 예상열 군을 찾아가 음료수를 전해주고서도 풀리지 않았다. 예 군 또한 이유를 짐작하지 못했기 때문. 예 군은 투수와 유격수를 보았기 때문에 상대 선수와 충돌하지도 않았고 그 때 3루에서 3루수와 충돌하며 넘어진 주자는 원촌중 김선우 군이었다.



의문은 경기가 끝나고 신 군을 만나고 나서야 풀렸다. 신 군은 "유격수가 상대 팀 선발투수였잖느냐"며 "오늘 실점을 많이 해서 기분이 상했을 것 같아 음료수를 전해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보통 마음 씀씀이가 아니다. 노유경 원촌중 교감의 "학교스포츠클럽을 통해 다른 학교 학생들과 교류하며 다른 학교 학생들도 우리와 똑같은 학생이고 똑같은 처지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말이 비로소 실감이 났다.

문득 1회말 예상열 군이 3번 타자 정재원 군에게 몸에 맞는 공을 던진 뒤 모자를 벗어서 인사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몸에 맞는 공 하나를 던진 뒤에도 꼭 모자를 벗고 인사하는 습관. 그것이 발전해서 3루에서 충돌했을 때 서로 일으켜 세워주고 흙을 털어주며, 서로에 대한 배려로 나아가는 것이리라. 인성 교육은 멀리 있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이 모든 모습이 축제와 같은 분위기에서 이뤄진다. 10-0으로 크게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3회초 공격을 맞이한 서일중. 1번 타자 여현우 군이 좌월 솔로 홈런을 치며 포문을 열었다. "우리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무력시위인 셈이다. 여 군은 "지난 이닝에 너무 대량으로 실점했다"며 "톱타자로서 하나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노리고 들어갔다"고 말했다. 비장한 책임감은 있으되 분위기가 무거운 것은 아니다. 때마침 일단의 서일중 학생들이 응원을 하러 왔다. 지도 교사의 "친구들도 구경 왔는데 더 열심히 해야겠지?"라는 말에 천연덕스럽게 "그런데 10-1로 털리고 있어요"라고 웃으며 답한다. 운동부 경기에서 '털리고 있다'고 대답을 했으면 '지고 있는데 잇몸을 보이냐'며 난리가 났을 것이다.


"일주일마다 가장 기다려지는 게 토요일"이라는 학생들. 그러나 결코 공부를 게을리 하는 것은 아니다. 학교스포츠클럽 때문에 공부를 게을리 한다면 '교육 1번지'라는 이 곳 강남에서 학교스포츠클럽 활동이 자리를 잡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신범진 군은 "(지도)선생님이 자장면 쏘신다고 한다"며 옷을 갈아입고 떠날 준비를 한다. 토요일에 다른 일정이 없는 것일까. 신 군은 "오후에 과외 수업이 있다"며 "하지만 과외 숙제는 새벽까지 해서 다 끝내 놨다"고 말했다. 숙제를 미리 해두지 않으면 경기가 끝나자마자 집으로 돌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어머니도 (숙제를 미리 해두는 모습을 보고) 경기 끝나고 나서는 좀 놀고 오라더라"며 웃었다. 갈아입을 옷도 신 군의 부친이 가져다주었다. 스스로 알아서 자기 할 일을 잘 하는데야 학부모가 더 간섭할 것이 없다.

오 장학사는 "우리가 어릴 때는 체육 시간이 공 하나 던져주고 '너희 알아서 놀아' 식으로 진행되다보니 체육이 단순한 시간 때우기 또는 여가 보내기로 오인되고 말았다"며 "이렇게 학교스포츠클럽 활동을 통해 체계적으로 체육 활동을 하고, 또 그 긍정적 효과를 직접 체험한 학생들이 사회 각 분야로 진출하게 되면 인식이 바뀌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 공터에서 야구 놀이를 하고 있는 미취학 아동들. 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나서, 나아가 중·고등학교에 가서도 이렇게 즐겁게 야구를 하며 인성도 함양하고 학업 스트레스를 건전하게 해소할 수 있을까. 학교스포츠클럽 활성화의 성패에 그 답은 달려 있을 것이다. /사진=정도원 기자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 공터에서 야구 놀이를 하고 있는 미취학 아동들. 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나서, 나아가 중·고등학교에 가서도 이렇게 즐겁게 야구를 하며 인성도 함양하고 학업 스트레스를 건전하게 해소할 수 있을까. 학교스포츠클럽 활성화의 성패에 그 답은 달려 있을 것이다. /사진=정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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