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 원촌중학교에서 열린 서울시교육감배 학교스포츠클럽 야구 원촌중 대 서일중 경기에서 한 원촌중 학생이 경기의 기록을 하고 있다. /사진=정도원 기자
본부석의 오정훈 서울시교육청 장학사는 의문을 풀 길이 없었다. 3회말 홈팀 원촌중의 공격이 시작될 무렵 이 학교 신종헌 군이 본부석에 와서 "서일중 유격수에게 건네달라"며 음료수를 한 병 맡기고 갔기 때문이다. 오 장학사의 의아한 눈빛에 신 군은 "기분이 상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라고 답하고 덕아웃으로 돌아갔다.
의문은 서일중 예상열 군을 찾아가 음료수를 전해주고서도 풀리지 않았다. 예 군 또한 이유를 짐작하지 못했기 때문. 예 군은 투수와 유격수를 보았기 때문에 상대 선수와 충돌하지도 않았고 그 때 3루에서 3루수와 충돌하며 넘어진 주자는 원촌중 김선우 군이었다.
문득 1회말 예상열 군이 3번 타자 정재원 군에게 몸에 맞는 공을 던진 뒤 모자를 벗어서 인사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몸에 맞는 공 하나를 던진 뒤에도 꼭 모자를 벗고 인사하는 습관. 그것이 발전해서 3루에서 충돌했을 때 서로 일으켜 세워주고 흙을 털어주며, 서로에 대한 배려로 나아가는 것이리라. 인성 교육은 멀리 있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이 모든 모습이 축제와 같은 분위기에서 이뤄진다. 10-0으로 크게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3회초 공격을 맞이한 서일중. 1번 타자 여현우 군이 좌월 솔로 홈런을 치며 포문을 열었다. "우리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무력시위인 셈이다. 여 군은 "지난 이닝에 너무 대량으로 실점했다"며 "톱타자로서 하나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노리고 들어갔다"고 말했다. 비장한 책임감은 있으되 분위기가 무거운 것은 아니다. 때마침 일단의 서일중 학생들이 응원을 하러 왔다. 지도 교사의 "친구들도 구경 왔는데 더 열심히 해야겠지?"라는 말에 천연덕스럽게 "그런데 10-1로 털리고 있어요"라고 웃으며 답한다. 운동부 경기에서 '털리고 있다'고 대답을 했으면 '지고 있는데 잇몸을 보이냐'며 난리가 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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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마다 가장 기다려지는 게 토요일"이라는 학생들. 그러나 결코 공부를 게을리 하는 것은 아니다. 학교스포츠클럽 때문에 공부를 게을리 한다면 '교육 1번지'라는 이 곳 강남에서 학교스포츠클럽 활동이 자리를 잡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신범진 군은 "(지도)선생님이 자장면 쏘신다고 한다"며 옷을 갈아입고 떠날 준비를 한다. 토요일에 다른 일정이 없는 것일까. 신 군은 "오후에 과외 수업이 있다"며 "하지만 과외 숙제는 새벽까지 해서 다 끝내 놨다"고 말했다. 숙제를 미리 해두지 않으면 경기가 끝나자마자 집으로 돌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어머니도 (숙제를 미리 해두는 모습을 보고) 경기 끝나고 나서는 좀 놀고 오라더라"며 웃었다. 갈아입을 옷도 신 군의 부친이 가져다주었다. 스스로 알아서 자기 할 일을 잘 하는데야 학부모가 더 간섭할 것이 없다.
오 장학사는 "우리가 어릴 때는 체육 시간이 공 하나 던져주고 '너희 알아서 놀아' 식으로 진행되다보니 체육이 단순한 시간 때우기 또는 여가 보내기로 오인되고 말았다"며 "이렇게 학교스포츠클럽 활동을 통해 체계적으로 체육 활동을 하고, 또 그 긍정적 효과를 직접 체험한 학생들이 사회 각 분야로 진출하게 되면 인식이 바뀌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 공터에서 야구 놀이를 하고 있는 미취학 아동들. 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나서, 나아가 중·고등학교에 가서도 이렇게 즐겁게 야구를 하며 인성도 함양하고 학업 스트레스를 건전하게 해소할 수 있을까. 학교스포츠클럽 활성화의 성패에 그 답은 달려 있을 것이다. /사진=정도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