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임종철
일본전기(NEC)의 니시가키 코지 전 사장이 십수 년 전에 밝힌 ‘일본이 반도체에서 삼성전자에게 역전당한 이유’다. “천문학적 자금이 들어가는 반도체 투자에 일본 기업은 이자를 꼬박꼬박 내야 하기 때문에 멈칫거리는 사이 삼성전자는 당장 비용이 없는 자본금으로 과감하게 투자한 것이 승부를 갈랐다”는 설명이다.
세계1위 D램 업체였던 NEC와 히타치(日立)는 한국에 빼앗긴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공동으로 엘피다를 만들어 삼성전자에 대항하려 했지만, 부실화돼 마이크로테크놀로지에 인수될 운명에 놓여 있다. 요즘 ‘경제민주화법’으로 규제를 강화하려고 하는 ‘순환출자’가 한국 반도체를 글로벌 탑으로 발전시키는 원동력이었다는 사실을 한국만 모르는 셈이다.
중국이 개혁개방 30여년만에 독일과 일본을 차례로 제치고 세계 2대 경제대국(G2)로 부상하는데 CDB가 ‘보이는 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중국수출입은행도 3조2000억달러에 이르는 외환보유고를 바탕으로 남미와 아프리카 등에서 자원개발투자에 나서며 G1 부상을 뒷받침하고 있다.
학문하는 것은 배를 타고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과 같아서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퇴보한다(역수행주;逆水行舟, 부진즉퇴;不進卽退)는 말이 있다. 이는 공부뿐만 아니라 기업과 국가 경제도 마찬가지다. 한국이 ‘한강의 기적’이란 찬사를 받고, 외환위기(1997년)의 고통을 이겨내고 선진국 문턱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성장률이 2%대로 떨어지면서 제자리걸음을 하는 사이, 중국 브라질 등에 (GDP 규모에서) 역전당했다.
삼성전자가 NEC 마쓰시타(松下) 소니 등을 차례로 따돌리며 승승장구했던 화려함은 이제 옛일이 되어가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까지 나온다. 엔저(低)를 통해 ‘잃어버린 20년’에서 탈출하려는 ‘아베노믹스’의 훈풍으로 토요타자동차의 시가총액이 삼성전자를 추월했다. 지난 1분기 성장률도 0.9%로 한국과 동률을 이뤘다. 일본경제는 젊음을 되찾고 있는 반면 한국경제는 조로(早老)증에 빠졌다는 비아냥이 현실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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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국회는 ‘경제민주화법’를 무더기로 쏟아내고 있다. 5월 임시국회 때 정년 60세로 연장, 유해물질사고시 매출액의 5% 과징금 등을 통과시킨데 이어 6월 임시국회에서도 대체휴일제, 일감몰아주기 제한 등을 규정한 법률안이 통과될 예정이다. 마치 북한에서 한동안 유행했던 ‘속도전’을 보는 듯 하다.
『맹자(孟子)』‘공손추상’편에 발묘조장(拔苗助長)이라는 말이 나온다. 송나라 민(閔)이라는 사람이 자기 논의 모(苗)가 다른 집보다 작게 보이자 밤에 논으로 가서 모 끝을 뽑아 올렸는데, 다음날 가보니 모두 말라 죽었다. 사물의 성장 및 발전단계를 고려하지 않고 서둘러 성과를 보려고 하면 오히려 그르친다(욕속부달, 欲速不達)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경제민주화는 반드시 실현해야 할 과제다. 다만 소나기처럼 한꺼번에 몰아치면 기업을 움츠러들게 한다. 한국경제가 엔저 공습과 중국 추격 등으로 장기복합불황에 빠져들고 있다는 경고가 나오는 시점에서 기업의 발목을 잡는 ‘속도전 식 경제민주화법 통과’는 한국경제의 조로증을 더욱 부채질 할 것이다. 경제민주화가 서민과 중소기업을 더 어렵게 할 우려도 있다. 경제민주화가 경제를 죽이는 게 아니라 경제를 살리는 방향으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이유다.
‘창조경제로 제2의 한강 기적’을 만들어 내야하는데 스스로 무장해제 하는 것은 교각살우(矯角殺牛)다. 한국은 지금 일화(日禍)와 중화(中禍)의 협공을 받는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서 있다. 박 대통령은 ‘경제 죽이는 경제민주화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