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김현정
최영미의 시 ‘선운사에서’의 첫 부분이다. 무슨 일을 이루기는 매우 어렵지만 실패는 순식간에 이뤄진다는 것을 표현한 것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시구(詩句)다. 힘들여 방을 말끔하게 청소한 뒤 잠시만 한눈팔아도 금세 엉망진창이 되는 것처럼, 모든 에너지는 이용가능한 질서정연한 상태에서 이용할 수 없는 혼란으로 흐른다는 ‘엔트로피 법칙(열역학 제2법칙)’과 일맥상통한다.
지금 최영미의 시와 엔트로피법칙을 처절하게 느끼고 있는 사람은 바로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일 것이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젊은 여성 인턴을 성추행한 혐의로 전격적으로 경질되며 ‘워싱턴 스캔들’의 주인공이 됐다. 게다가 워싱턴에서 야반도주하듯 한국으로 도망쳤다는 논란으로 한국인을 망신시키고 국가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특히 박 대통령의 방미 성과는 그의 ‘부적절한 처신’으로 빛이 바랬다. 그의 성추행이 알려진 10일, 온라인은 그를 성토하는 글로 넘쳐났다.
그의 망신은 스스로 만족할 줄 알면 모욕을 당하지 않으며(지족불욕, 知足不辱), 그칠 줄 알면 위험하지 않다(지지불태, 知止不殆)는 지혜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미국에 가서 빠듯한 순방 일정을 소화한 뒤 한 잔의 술로 피로를 푸는 정도에서 끝났다면 그에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박 대통령도 풍성한 방미성과를 안고 발걸음 가볍게 귀국했을 것이다. 하지만 브레이크를 잡지 못한 그의 그칠 줄 모르는 ‘고(Go)'는 모든 것을 뒤틀어 놓았다.
윤 전 대변인의 ‘워싱턴 스캔들’은 박 대통령에게도 상당한 부담을 줄 것이다. 그를 청와대 대변인으로 임명하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의 반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의심스러운 사람은 쓰지 않고(의인불용, 疑人不用) 일단 기용했으면 의심하지 않는다(용인불의, 用人不疑)라는 원칙에 따라 그의 인사를 밀어붙였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은 윤 전 대변인은 지금 ‘그 때 참지 못한 것’에 대해 매우 후회하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엎질러진 물은 다시 항아리에 담을 수 없다. 모든 일이 엉망진창이 돼 버려 만사휴의(萬事休矣)된 상태에서 그의 후회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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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인사검증과 국정운용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는 계기가 된다면 박근혜정부에게는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