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몰락한 까닭은 이것

머니투데이 홍찬선 부국장겸 산업1부장 2013.05.11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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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선의 네글세상]<3>선우후락(先憂後樂) vs 지족불욕(知足不辱)

편집자주 고진감래(苦盡甘來) 새옹지마(塞翁之馬) 지지불태(知止不殆)... 네 글자로 만들어진 사자성어(四字成語)는 우리 조상들의 오랜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생활의 지혜이자 인생철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란 말처럼 선조의 지혜는 현재와 미래를 슬기롭게 살아가는 지표가 됩니다. 사자성어를 통한 '네글세상'로 독자 여러분과 함께 한국 경제와 사회 문화 등을 생각해봅니다.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일러스트=김현정일러스트=김현정


꽃이/피는 건 힘들어도/지는 건 잠깐이더군.

최영미의 시 ‘선운사에서’의 첫 부분이다. 무슨 일을 이루기는 매우 어렵지만 실패는 순식간에 이뤄진다는 것을 표현한 것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시구(詩句)다. 힘들여 방을 말끔하게 청소한 뒤 잠시만 한눈팔아도 금세 엉망진창이 되는 것처럼, 모든 에너지는 이용가능한 질서정연한 상태에서 이용할 수 없는 혼란으로 흐른다는 ‘엔트로피 법칙(열역학 제2법칙)’과 일맥상통한다.

지금 최영미의 시와 엔트로피법칙을 처절하게 느끼고 있는 사람은 바로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일 것이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젊은 여성 인턴을 성추행한 혐의로 전격적으로 경질되며 ‘워싱턴 스캔들’의 주인공이 됐다. 게다가 워싱턴에서 야반도주하듯 한국으로 도망쳤다는 논란으로 한국인을 망신시키고 국가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특히 박 대통령의 방미 성과는 그의 ‘부적절한 처신’으로 빛이 바랬다. 그의 성추행이 알려진 10일, 온라인은 그를 성토하는 글로 넘쳐났다.



군자(지도자)는 세상일에 대해 남보다 먼저 걱정하고 즐거움은 제일 늦게 즐긴다(선우후락, 先憂後樂)고 한다. 윤 전 대변인은 이런 지도자의 기본자세를 보이지 못했다. 박 대통령이 미국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영어로 연설할 준비에 열중하던 시간, 그는 호텔에서 여자 인턴과 술을 마시고 성추행 추문에 휘말렸다. 남보다 먼저 근심하기는커녕 먼저 즐기려다 스스로 패가망신한데다 국격(國格)마저 떨어뜨렸다.

그의 망신은 스스로 만족할 줄 알면 모욕을 당하지 않으며(지족불욕, 知足不辱), 그칠 줄 알면 위험하지 않다(지지불태, 知止不殆)는 지혜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미국에 가서 빠듯한 순방 일정을 소화한 뒤 한 잔의 술로 피로를 푸는 정도에서 끝났다면 그에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박 대통령도 풍성한 방미성과를 안고 발걸음 가볍게 귀국했을 것이다. 하지만 브레이크를 잡지 못한 그의 그칠 줄 모르는 ‘고(Go)'는 모든 것을 뒤틀어 놓았다.



공자는 ‘군자는 크되 자만하지 않지만(泰而不驕) 소인은 교만하되 크지 못하다(驕而不泰)’라고 했다. 항공기 안에서의 ‘라면 상무’와 남양유업 직원의 욕설사건 등, 겸손하지 못하고 교만한 갑(甲)의 의식에서 비롯된 참사가 잇따라 터진 뒤에 국정의 최고 책임부서인 청와대 대변인이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했다. 산업자원통상부가 더 이상 갑(甲)과 을(乙)을 표현하지 않도록 협약서 양식을 개정하기로 하는 등 ‘갑의 횡포’를 줄이기 위한 대책을 내놓는 상황에서 청와대가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윤 전 대변인의 ‘워싱턴 스캔들’은 박 대통령에게도 상당한 부담을 줄 것이다. 그를 청와대 대변인으로 임명하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의 반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의심스러운 사람은 쓰지 않고(의인불용, 疑人不用) 일단 기용했으면 의심하지 않는다(용인불의, 用人不疑)라는 원칙에 따라 그의 인사를 밀어붙였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은 윤 전 대변인은 지금 ‘그 때 참지 못한 것’에 대해 매우 후회하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엎질러진 물은 다시 항아리에 담을 수 없다. 모든 일이 엉망진창이 돼 버려 만사휴의(萬事休矣)된 상태에서 그의 후회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다만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인사검증과 국정운용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는 계기가 된다면 박근혜정부에게는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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