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보며 쉬는 서글픈 군상

머니위크 김진욱 기자 2013.04.30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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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 커버]대한민국 '직딩백서' - 쉬고 싶은 한국 직장인/ 휴가 열흘 중 사흘은 못쓰는 현실… 대체휴일제가 반가운 이유

사진_머니투데이 홍봉진 기자사진_머니투데이 홍봉진 기자


쉬운 퀴즈 하나. '하루의 절반 가까이, 즉 수면시간을 뺀 거의 모든 시간을 보내는 곳은?' 정답은 일터다. '9시 출근 6시 퇴근'. 통상적인 근무시간은 이렇지만 정작 이를 지키는 직장은 많지 않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직장인들의 연간 평균 근무시간은 OECD 평균인 1750시간보다 훨씬 많은 2193시간. 조사대상 국가들 중 단연 1위다. '대한민국은 직장인의 무덤'이라는 평가가 나올 법하다.



한국 직장인들은 지금 '쉬고' 싶어한다. 하지만 기업이 직장인의 '쉼'을 쉽게 허락할 리 없는게 우리의 냉혹한 현실. 최근 대체휴일제의 입법화를 놓고 떠들썩한 것도 이와 관련이 깊다.

◆암울한 근무현실…OECD 국가 중 '꼴찌'?

본지가 한국 직장인의 실태에 관심을 가지기로 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경제전문가들은 한국 경제활동인구가 2018년에 정점을 찍고 이후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점차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신생아 수가 30년 전에 비해 40% 정도 급감할 것으로 전망돼 한국도 일본처럼 저성장 기조에 접어들 것이란 것. 일각에선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3%대로 낮아졌고 5년 뒤에는 2%대까지 떨어지는 것을 피할 수 없다는 추측도 나온다.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하고 있는 반면 출산율은 최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향후 생산가능인구가 크게 줄어 경제성장의 잠재력이 감소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실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국내 생산가능 인구 예측자료에서 국내 생산가능인구는 점차 감소하다 2030년 이후부터는 감소속도가 더욱 빨라질 것으로 예견됐다.

문제는 경제활동인구의 감소가 뚜렷해지는 상황에서 한국 직장인들의 업무효율성까지 크게 떨어지고 있다는 것. OECD의 '경제정책 개혁 2012년'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노동시간이 가장 길지만 생산성에 있어서는 회원 34개국 가운데 28위로 하위권에 머물렀다.

개개인의 업무효율이 한 기업의 실적지표에 적지않은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직장인의 근무환경을 개선시켜야 하는 게 기업들의 역할이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는 방증이다.


앞서 언급했듯 대한민국 직장인의 근무현실을 가장 잘 대변하는 것은 근로시간이다. 한국 직장인들은 OECD 회원국 중 가장 많은 '연간 총 2193시간'을 일하면서 보낸다. 회원국 평균보다 400시간이나 더 많다. 정부가 집계한 지난 2011년 주당 평균 노동시간에서도 한국은 44.6시간으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길다. 임금은 낮고 노동시간은 긴 전형적인 개발도상국 형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셈이다.

기업들은 직원들의 근로시간이 단축되면 으레 노동생산성이 저하될 것을 우려한다. 하지만 이는 실제와 차이가 난다. 지난해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결과에 따르면 근로시간 단축은 근로자의 건강권 보호, 일과 가정의 양립, 충분한 휴식과 교육훈련에 대한 재투자를 이끌어내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것으로 분석됐다.

김현철 한국경영정보연구원 대표는 "업무효율성은 시간과 정비례하지 않는다. 주어진 시간에 얼마나 일에 집중하는지가 중요한 것"이라며 "경영진 역시 근로시간 단축과 같은 시스템을 현실에 맞게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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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10일 중 3일은 눈치보여 못써"

근로시간이 많은 것도 문제지만 직장인들의 '쉼'을 방해하는 또 다른 요인으로는 실제 휴가 사용빈도가 낮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한국 직장인들의 휴가 사용률이 '최하위' 수준이라는 조사결과가 이를 잘 보여준다.

온라인여행사 익스피디아가 얼마전 전세계 주요 22개국 직장인 868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한국 직장인들의 연간 유급휴가 일수는 평균 10일로, 22개국 중 가장 적은 것으로 집계됐다.

고작 10일의 평균 휴가일수 중 실제 사용 휴가일수도 평균 7일(사용률 70%)에 그쳤다. '13일 중 5일'을 사용한 일본(38%) 다음으로 낮은 수치. 영국, 프랑스 등 10개 국가는 주어진 휴가를 100% 다 사용했고, 대만의 경우 평균 휴가일수가 10일로 한국과 최저로 동일했지만 실제 사용 휴가일수는 평균 12일로 한국보다 더 높았다.

지난해 7월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발표한 '창의적 아이디어 창출 및 신성장 동력으로서의 휴가' 보고서에서도 한국 전체 노동자의 연차휴가 사용률은 46.4%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주어지는 평균 연차휴가 일수인 15.3일 중 7.1일만 사용한 셈이다.
직원들의 휴가사용을 가로막는 것은 휴가사용에 대한 직장 내 경직된 분위기가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휴가문화가 활성화되거나 제대로 정착되지 않은 곳이 의외로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 이성태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직장인 휴가 활성화를 위해서는 휴가를 권장하는 기업문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직장인의 '휴식'에 대한 논의는 최근 국회에서 입법화가 추진되고 있는 '대체휴일제'와 관련해서도 한껏 달아올랐다.

눈치보며 쉬는 서글픈 군상
◆'무르익는' 대체휴일제…직장인 숨 좀 쉬나

'법정 공휴일과 일요일이 겹치면 평일에 하루를 쉬게 하는 제도'인 대체휴일제는 4월19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안행위)가 기존 7건의 관련 법안을 통합한 '공휴일에 관한 법률안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안행위가 4월25일 전체회의를 열어 해당 개정안 처리를 시도했으나 정부가 반대를 표명하고 여야가 이견을 좁히지 못해 사실상 4월 임시국회 통과가 무산됐다. 안행위는 같은달 29일 다시 전체회의를 열어 최종 처리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지만 여·야·정의 의견 차이가 커 처리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에 따라 정부는 공휴일법이 아닌 대통령령을 고쳐 대체휴일제를 도입하는 방법으로 오는 9월 정기국회에 개정의견을 제출하겠다는 입장이다.

대체휴일제의 도입과 현실성을 놓고 이처럼 찬반 논란이 치열한 이유는 정치권의 '노동시간을 줄이고 소비를 진작시킬 수 있다'는 의견에 기업들이 경제적 손실을 내세워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현재 재계에서 가장 우려하는 것은 인건비 상승과 금액적인 손해로 요약된다. 공휴일을 무급휴일로 규정한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유급휴일제도를 운용하고 있어 대체휴일제가 도입될 경우 공휴일 확대로 인한 인건비 상승이 불가피하다는 게 기업들의 입장이다.

여기에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대체휴일제 도입으로 기업들이 추가 부담해야 할 인건비가 연 4조3000억원에 달하고 줄어든 조업일수로 인한 생산 감소액이 최대 28조1000억원에 달해 총 32조4000억원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한다는 점을 내세워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제도 도입을 주도한 국회 안행위 측은 대체휴일제 도입으로 서비스산업 발전과 내수진작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며 이에 맞서고 있다. 안행위는 국내 근로시간이 OECD 국가 중 많은 편이지만 노동생산성은 크게 낮기 때문에 근로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대체휴일제가 필요하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대체휴일제 관련법안을 발의한 윤상현 새누리당 의원도 "들쭉날쭉한 공휴일수 때문에 안정적인 삶의 질을 추구하고 휴식과 재충전으로 생산성을 높이자는 공휴일의 본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대체휴일제가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실제 직장인들이 혜택을 보는 시기는 빨라야 2015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와 내년의 모든 공휴일과 설·추석 당일이 평일에 속해 일요일과 겹치는 2015년 3·1절부터 대체휴일제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한국직장인, 업무시간에 딴 짓한다?
 
한국 직장인의 '쉼'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는 사이 일각에선 직장인의 '일'에 대한 접근방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조사결과가 나와 주목된다.

지난해 세계적인 컨설팅기업 타워스 왓슨이 발표한 '2012 글로벌 인적자원 연구'에 따르면 한국 직장인의 84%는 자신의 업무에 지속성있게 몰입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직장인 1000명을 포함, 전세계 28개 국가, 29개 마켓의 3만2000명이 참여한 조사에서 '지속성있게 업무에 몰입하는' 한국 직장인은 전체의 16%로, 글로벌 평균인 35% 대비 현저히 낮게 조사됐다.

한국이 속한 아시아권에서 지속적 몰입도가 낮은 국가들은 일본(14%), 홍콩(15%), 대만(15%), 한국(16%)의 순이었고, 중국이나 인도 등 고성장 지역은 50%가량이 지속성 있게 몰입하는 모습을 보였다.

글로벌 회계·컨설팅 법인 언스트앤영이 최근 발표한 한국 사무직 직장인들의 생산성 인식 실태에 관한 보고서에서도 한국직장인은 직장에 머무르는 9시간30분(점심시간 1시간 포함) 중 업무와 관련 없는 인터넷 검색, 동료와의 잡담, SNS, 메신저 대화 등 개인적인 활동에 22.4%(1시간 54분)를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응답자들은 개인활동시간을 제외한 자신의 하루 업무시간 중 38%(2시간30분)를 의사결정이나 검토과정에서의 지연, 불분명한 지시로 인한 중복작업, 불필요한 회의 등 비효율적인 업무에 소비하고 있다고 답했다.

☞ 용어설명

※경제활동인구란?
일정 연령 이상의 인구 가운데 노동능력이나 노동의사가 있어 재화나 서비스 생산과 같은 경제활동에 기여할 수 있는 인구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취업이 가능한 14~15세 이상의 인구 중 학생·주부·환자 등 노동능력이나 노동의사가 없는 사람을 제외한 인구이며, 취업자와 실업자를 포함한다.

※생산가능인구란?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연령대(15~64세)의 인구로 '경제활동인구'와 '비경제활동인구'로 나뉜다. 우리나라는 2017년 3612만명을 기점으로 생산가능인구가 점차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대체휴일제란?
어떤 휴일이 다른 휴일과 겹치면 휴일이 아닌 날을 더 쉬도록 해 공휴일이 줄어들지 않도록 하는 제도다. 우리나라는 1989년 1월 음력 설 공휴일을 확대하면서 이 제도를 실시했지만 쉬는 날이 너무 많다는 의견에 따라 시행 21개월 만에 폐지됐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7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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