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경제의 엔진은 스펙파괴 채용혁명에서 시작된다

머니투데이 서명훈 기자 2013.04.15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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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 공채 '스펙 파괴'… 인문학 등 다양한 인재 선발, 지원 급증

대기업들이 출신 대학교와 영어점수 등 이른바 ‘스펙’의 틀을 과감히 벗어 던지고 있다. 조직 문화에 잘 적응할 것 같은 '모범생 인재'보다는 다소 튀더라도 창의성과 개성이 강한 '바이킹 인재'를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창조 경제’의 시작이 채용 혁명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학력이나 각종 자격요건을 없애 누구나 지원할 수 있는 ‘열린 채용’이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열린 채용’은 우리 사회에서 적지 않은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오고 있다. ‘좋은 대학을 나와야만 좋은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는 공식이 깨지면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 가운데 하나인 입시 위주의 교육 풍토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 것으로 기대된다.
창조경제의 엔진은 스펙파괴 채용혁명에서 시작된다


◇ 삼성, 채용 혁명 주도한다
채용 혁명을 주도하고 있는 곳은 삼성그룹. 지난해 실시한 저소득층과 지방대생 등을 일정 비율로 뽑는 방식은 올해 다른 그룹들도 속속 도입하고 있다.



삼성은 올해 3급 신입사원 9000명을 포함해 지난해와 비슷한 2만6000명 가량을 채용할 계획이다. 이들 인원은 상반기와 하반기 두 차례로 나눠 뽑을 예정. 올 상반기 공채의 경우 지난달 원서접수를 마감했고 지난 7일에는 국내 5개 지역과 해외 3개 지역에서 삼성직무적성검사(SSAT)까지 끝낸 상황이다.

특히 올해는 다양한 인재 선발 방식이 도입되면서 지난해보다 지원자가 1만명 가량 증가했다.



먼저 삼성은 올해 인문학이나 엔지니어적 자질 등을 고루 갖춘 ‘통섭형 인재’ 200명을 별로도 선발하기로 했다. 사업 영역간 경계가 모호해지는 컨버전스(Convergence) 시대에 필요한 인재를 직접 키우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를 위해 지난달 18일부터 진행 중인 상반기 신입사원 채용에서 통섭형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SCSA(Samsung Convergence Software Academy) 과정을 도입했다. SCSA 과정으로 입사지원서를 제출하면 이 가운데 200명을 뽑아 통섭형 인재로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SCSA 과정에 도전하는 우수 인재들이 보다 큰 열정과 희망을 가지고 지원, 꿈과 보람을 키워 갈 수 있도록 처우 기준 등을 대폭 상향 조정했다. SCSA 과정 6개월간의 교육지원비를 당초 6개월에 300만원(월 50만원)에서 수습사원 수준인 1300만원으로 대폭 상향 조정했다. 처음 2개월은 월 150만원을, 이후 4개월은 수습사원 급여수준인 월 250만원을 지급한다.


또 입사 후 처우도 조정했다. 삼성은 6개월간의 교육과정을 수료하고, 소정의 자격시험을 통과한 교육생에게는 입사 후에 SCSA 교육과정 6개월을 경력으로 인정해 동일한 시점에 졸업하고 채용된 동기들과 동일한 승격기준을 적용할 방침이다.

삼성은 또 ‘환경안전 전문가’를 별도로 채용키로 했다. 삼성전자에서 일어난 사고에 대한 반성인 동시에 재발을 막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인 셈이다.

삼성전자와 삼성SDI 등 그룹 16개 계열사가 위험물질 관리, 공정 및 설비 안전관리 등 환경안전 전 분야에 걸쳐 150명을 선발한다. 경력공채 외에도 현재 진행하고 있는 3급 신입사원 채용에서도 환경안전 분야를 따로 150명 뽑기로 했다. 환경안전 전문가를 별도로 공채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삼성은 지난해 처음 실시했던 고졸 공채도 실험을 지속하고 있다. 올해는 지원 분야를 연구직과 영업직으로 채용 분야를 확대했다. 전체 700명 중에 소프트웨어직 150명, 연구개발직 110명, 영업직 10명을 선발, 고졸자들이 다양한 직무에 진출할 수 있도록 했다.

◇ 채용 혁명, ‘희망 사다리’ 놓는다
삼성의 채용 혁명은 '인재 제일주의'를 경영철학으로 삼았던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 시절부터 시작됐다. 삼성은 1957년 국내 처음으로 대졸공채를 도입했다. 1993년 7월에는 여성 전문인력 500명을 별도로 채용하는 파격을 단행했다. 이어 1995년에는 학력제한을 철폐한 '열린 채용'을 도입했다. 지난해에는 대졸공채 인원의 5%를 저소득층으로, 35%를 지방대생으로 뽑는 '함께 가는 열린 채용'으로 또 한 단계 진화했다.

삼성의 지방대 채용 비율은 2007년 28%를 기록한 이후 2009년 26%까지 낮아졌다. 하지만 2010년과 2011년에는 다시 27%까지 높아졌고 지난해에는 당초 계획보다 1%포인트 높은 36%를 기록했다.

여성 인력 비중도 과거 20%대에 그쳤지만 최근에는 32%까지 높아졌다. 삼성의 경우 이공계 채용 인력이 전체의 80%를 차지하는 점을 감안하면 여성 비중은 국내 대기업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런 채용 혁명이 오늘날 삼성을 만든 밑거름이 됐다는 점은 모두가 인정하는 부분이다. 덕분에 학력에 따른 차별 없이 성과에 따른 공정한 보상이 이뤄지는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었다. 특히 회사 내 파벌로 작용하는 동문 모임이나 지역 출신 모임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실제로 삼성그룹 최고경영자 가운데는 지방대 출신들이 상당히 많다. 박근희 삼성생명 부회장을 비롯해 이상훈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사장), 전동수 메모리사업부장(사장), 윤진혁 에스원 사장 등이 모두 지방대 출신이다.

삼성이 채용 혁명에 적극적인 이유는 삼성 내부 고위층 사이에 '삼성의 성장에는 삼성 내부의 힘뿐만 아니라 국민과 우리 사회의 지원과 기여가 매우 컸다'는 인식이 밑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성적표와 입사 이후의 성과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지만 그 이면에는 우리 사회에 대한 보답의 성격이 강하다.

채용 혁명을 통해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도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 가난이 대물림되는 것을 막아야만 우리 사회의 역동성이 유지된다는 생각에서다. 삼성이 영유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생, 대학생, 취업준비생 등 각 단계별로 교육 지원 사업에 앞장서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이런 면에서 채용 혁명은 삼성이 한 단계 더 나은 삶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하는 ‘희망 사다리’ 놓기 캠페인의 완결판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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