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딩블루스]5000만원 날린 B 과장, '이유있는(?)' 쪽박

머니투데이 구경민 기자 2013.04.13 0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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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급으로 집사고 부자" 뻔한 거짓말에 반기, 역전 노렸지만

그래픽=임종철그래픽=임종철


"어! 미국 증시 올랐네. 그럼 오늘 한국 증시도 좀 괜찮겠군."

국내 한 중견기업에 다니는 7년차 B 과장(33). 그의 하루는 미국 증시 마감 체크로 시작된다. 아침부터 반가운 뉴스에 회사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콧노래를 부르면서 책상에 놓인 컴퓨터를 켠다. 회사 홈페이지나 이메일을 체크하기 전에 HTS(홈트레이닝시스템)창을 먼저 띄운다. 네이트 메신저는 물론 증권가에서 쓰는 FN, 야후, 미쓰리 메신저도 동시 접속한다.

누군가 지나가면서 컴퓨터 화면을 볼 수도 있는 일. 주식 매매하는 현장을 들킬 순 없다. 직원들이 다가오는 발소리에 귀를 세우고 주식 매매 화면을 잽싸게 덮을 수 있도록 회사 홈페이지와 각종 업무 관련 사이트를 열어 놓는다. 이제 서야 일을 시작하기 위한 준비가 끝났다. 일은 주식시장이 열리는 오전 9시에 맞춰 시작된다.



"B 과장. 어제 말한 프리젠테이션 다 끝냈어? 가지고 와봐." 중요한 타이밍에 여전히 팀장은 B 과장을 찾는다. 야속하기만 하다. "저 인간은 꼭 중요할 때 나를 찾더라."

매매를 끝내놓고 팀장에게 달려간다. "이것도 한 거라고 내놔? 다시 해 와."
"그럼 그렇지. 한 번에 넘어가면 팀장이 아니지." 머리 위로 스팀이 슬금슬금 올라온다.



직장에서의 이 모든 스트레스는 수익률이 올라가면, 봄에 쌓인 녹듯 자연스럽게 해소된다. 그가 처음 주식시장에 발을 들여 놓은 건 8년 전.

삼성전자 같은 굴지의 대기업 임원이라면 모를까, 대한민국에서 월급만 갖고 부자됐다는 건 '교과서만 공부해 일류대학에 수석 합격했다'는 것과 같은 '뻔한 거짓말'라고 생각하는 B 과장. 서울에 전셋집이라도 마련하려면 저축은 커녕 마이너스 통장은 불 보듯 훤한 일이다.

직장 생활을 막 시작한 사회 초년생 B 과장은 '인생 한방'이라는 마음에 주식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삼성전자, LG전자 같은 우량주는 재미없었다. 짧은 시간 안에 고수익을 노릴 수 있는 코스닥 '잡주'가 구미를 당겨왔다.


친구가 알려준 정보에 종자돈을 긁어모아 2000만 원을 투자했다. 신기하게도 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주식 계좌 잔고는 하루가 다르게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5000원에 팔아야지 했던 마음은 5500원, 6000원으로 높아졌다. 욕심에 눈이 멀어 매도시기가 점점 늦춰졌다.

쉽게 번 돈은 쉽게 쓰게 되는 법. 주식을 팔아 수중에 돈이 생긴 것도 아닌데 수익률만 올랐다고 신이 났다. 과감하게 회사에 휴가를 신청했다. "500만 원이나 수익이 났는데 해외여행 정도는 가줘야지." 열심히 일한 자 떠나라!!

하지만 괌으로 여행을 가는 순간 B 과장의 악몽은 시작됐다. 한국에서 전화한통이 걸려온다. "야, 너 XXX됐어. 니가 산 종목 주가 조작이라고 금감원에서 발표해 계속 하한가야." 아뿔싸. 달콤한 휴가를 뒤로하고 서둘러 서울에 도착했지만 늦었다. 연일 계속되는 하한가 행진을 두 손 놓고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며칠 만에 원금을 모두 날렸다.

이쯤이면 그만 둘만도 한데 B 과장은 주식시장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물타기(손실이 났을 때 거꾸로 더 주식을 사들여 매입단가를 낮추는 방식)에 들어갔다. 결국 3000만 원까지 총 5000만 원을 날렸다. '묻지마 투자'는 '대박'이 아닌 '쪽박'으로 가는 길이란 것을 깨달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버스는 이미 떠난 뒤였다.

하지만 B 과장은 8년이 지난 지금도 주식시장에서 발을 빼지 못하고 있다. '인생 한방'을 위한 꿈을 안고 오늘도 팀장과 회사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주식시장을 기웃거린다. 마치 담배 끊겠다는 사람이 한 가치를 구걸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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