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던 도시형주택, "우린 '불나방'이었다"

머니투데이 전병윤 기자 2013.04.14 13:12
글자크기

[부동산'후']과잉공급 폐단 사업자·분양자 휘청

편집자주 서울 구로구 대림역 부근. 꽃샘추위에도 도시형생활주택 건설현장이 분주히 움직였다. 도시형생활주택(141가구)과 오피스텔(231실)이 들어설 지상 20층짜리 복합빌딩 신축공사가 한창이다. 바로 그 옆에도 도시형생활주택이 들어선다. 이곳은 '하나세인스톤4차' 공사 현장으로 건설업자가 중간에 바뀌었다. 인근 공인중개 관계자는 "하나세인스톤1차에서 4차까지 분양한 건설업자가 갈수록 분양률이 떨어져 어려움을 겪자 4차는 짓다가 중간에 중단됐다"며 "이후 다른 업체가 인수해 최근 공사를 재개했다"고 귀띔했다. 주변에 신축중인 도시형생활주택과 오피스텔 등만 어림잡아 4곳 된다. 우후죽순처럼 생기던 도시형생활주택의 과잉공급 후유증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서울 구로동 주택 밀집가에 도시형생활주택이 들어서기 위한 공사가 한창이다. 주차장 설치 기준의 완화로 인해 주변의 주차난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사진=전병윤 기자↑서울 구로동 주택 밀집가에 도시형생활주택이 들어서기 위한 공사가 한창이다. 주차장 설치 기준의 완화로 인해 주변의 주차난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사진=전병윤 기자


 ◇각종 건축기준 완화에 봇물 터져
 정부는 전월세난이 기승을 부리던 2009년 '도시형생활주택' 정책 도입을 밝혔다. 1~2인가구 증가에 맞춰 도심 속 소형 주택공급을 늘려 전·월세난 악화를 막겠다는 취지였다.

 정부는 민간시장의 도시형생활주택 공급을 유도하기 위해 각종 인센티브를 제시했다. 국민주택기금을 통해 연 2% 금리로 건설자금을 빌려줬다. 분양가상한제 적용 면제, 소음기준 적용 배제, 주차장 건설 기준 및 부대시설 설치 기준 완화 등의 당근도 줬다.



 건설업자로선 정부가 저리로 건설자금을 융자해주고 각종 건설기준까지 풀어줬기 때문에 너도나도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도시형생활주택 인허가 건수 추이를 보면 명확히 드러난다. 도시형생활주택 인허가 건수는 △2009년 1688건 △2010년 2만529건 △2011년 8만3859건 △2012년 12만3949건으로 봇물 터지듯 급증했다.

↑서울 구로동에 있는 도시형생활주택 공사 현장. ⓒ사진=전병윤 기자↑서울 구로동에 있는 도시형생활주택 공사 현장. ⓒ사진=전병윤 기자
 ◇과유불급, 부작용 속출
 과유불급이라 했던가. 도시형생활주택이 단기간 지나치게 많이 공급되다보니 부작용이 커졌다. 도시형생활주택은 가구당 1대인 아파트의 주차장 확보 기준과 비교해 절반 수준인 가구당 0.5대꼴로 완화된 적용을 받다보니 인근 지역의 주차난을 가중시키는 주범이란 오명을 받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에서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 조례에 따라 강화된 설치기준을 적용하려는 움직임도 일었지만 정부의 늑장 대응에 실기했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는 비판여론이 일 때마다 "역세권에 짓기 때문에 자차 보유 가구가 많지 않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넘어갔다. 당시 도시형생활주택의 주차 현실을 파악한 결과 심각하지 않다는 조사 결과를 근거로 삼기도 했다.

 하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다르다. 서울 신촌의 B공인중개 관계자는 "주중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더라도 주말에는 차를 쓰기 때문에 역세권에 있다고 해도 차량을 갖고 있는 세입자가 많다"며 "도시형생활주택과 오피스, 상업시설을 섞은 빌딩들은 상가 방문객 차량까지 겹쳐 주차난이 심각한 상황인데 (정부의 발언은)현실을 모르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서민 주거안정이란 정책목표를 달성했는지도 의문이다. 도시형생활주택 공급물량 중 방 1개인 원룸이 전체의 80%를 넘는다. 전세난으로 몸살을 앓는 2~3명 중심의 가구엔 무용지물인 셈이다.

 김현아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건설경제연구실장은 "고분양가에 임대료가 높은 고급 원룸 형태의 도시형생활주택은 전세난 원인과 연관성이 떨어지는 주거형태였다"고 지적했다.

ⓒ그래픽=강기영.ⓒ그래픽=강기영.
 ◇집값 떨어지는데 땅값 왜 오를까
 과잉공급에 따른 폐단이 수면으로 부상하자 국토부도 도시형생활주택의 공급량을 죄기로 했다. 국토부는 오는 6월 관련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지자체가 주변 주거환경 등을 고려해 도시형생활주택 인허가를 내주지 않을 수 있는 '특별구역'을 지정할 근거를 마련키로 했다. 사실상 인허가를 내주지 않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국토부 관계자는 "과잉공급으로 인한 주거환경 악화가 우려돼 도시형생활주택의 공급 조절이 필요하다고 판단, 오는 6월까지 개정안을 마련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뒤늦은 단속에도 폐단은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우선 고분양가로 인한 임대료 상승의 악순환이다. 고분양가는 땅값 상승이 1차적 원인이다. 실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아파트를 비롯한 집값은 하락세를 보이는 가운데 땅값만 상승세를 타고 있다.

 국토부에 따르면 올 2월 전국의 땅값은 0.07% 올라 금융위기 발생 전 고점이던 2008년 10월에 비해 0.01%포인트 낮은 수준까지 회복됐다. 세종시와 평창 등 지방의 개발호재 등이 지가 상승에 영향을 줬지만 여기에는 다른 요소도 자리잡았다.

 이와 관련, 한 임대주택 사업자 대표는 도시형생활주택이 지가 상승을 견인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도시형생활주택 사업자들이 토지를 확보하려고 과열경쟁을 벌이자 토지주들이 우위에 있는 시장구조가 지속돼 도심 내 땅값 상승을 부추겼다"며 "건설비용 증가로 분양가가 오르고 임대료를 높일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발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분양가에 임대수익 '뚝'
 이런 구조 탓에 분양가가 오르다보니 임대수익률은 저조할 수밖에 없다. 구로동에 있는 H도시형생활주택 47㎡(계약면적)의 매매가격은 현재 1억4000만원. 임대료는 보증금 1000만원에 월 60만원 수준에 형성됐다. 이를 고려한 임대수익률은 연 4.98%(공실에 따른 임대소득 10% 감소 포함)에 그친다.

 주변 다른 도시형생활주택의 경우도 당시 분양가격 1억3000만~1억4500만원에 현재 보증금 1000만원, 월 60만~70만원 수준을 감안하면 임대수익률은 연 5% 남짓하다.

 인근 공인중개 관계자는 "구로디지털단지에 종사하거나 여의도에 직장을 둔 사람들이 주 세입자로 월세 수요는 꾸준한 편"이라며 "다만 주변에 도시형생활주택과 소형 오피스텔이 들어서고 있어 임대료 수준이 지금보다 조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분양에 나선 신촌의 P도시형생활주택과 X도시형생활주택의 경우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P도시형생활주택의 분양가는 1억9000만~2억4000만원으로 월세 100만원을 받아도 임대수익률은 5%를 넘기 어렵다. 내년쯤 준공될 예정인데 공급물량 증가에 따른 임대수익률 하락이 우려된다.

 신촌의 오피스텔 전문 중개업소 사장은 "월세의 잠재적 수요는 충분하지만 매달 100만원을 내고 살 수 있는 유효수요가 뒷받침될지는 회의적"이라며 "투자자들은 주변의 원룸과 비교해 임대료, 주차시설, 관리비를 고려해 경쟁력을 갖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