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최고명당' 어쩌다… 용머리서 뱀꼬리로?

머니투데이 민동훈 기자 2013.03.16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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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후']龍의 형상을 닮은 지세 서울 최고 명당 '용산'

↑서울 용산구 일대 개발 예상도 ⓒ서울시 제공↑서울 용산구 일대 개발 예상도 ⓒ서울시 제공


 지난 13일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시행사인 '드림허브'가 ABCP(자산유동화어음) 이자를 내지 못해 디폴트(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져들면서 서울 한복판, 최고 금싸라기 땅 '용산'이 휘청이고 있다.

 뒤로는 남산, 앞으로는 한강을 바라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세를 갖춘 최고 명당으로, 뉴타운과 한강르네상스 등 각종 개발호재에 힘입어 '용틀임'을 준비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와 이에 따른 부동산 경기위축에 발목이 잡히며 '이무기'는커녕 '미꾸라지'만도 못한 신세가 됐다는 푸념까지 나오고 있다.



 ◇용이 꿈틀거리는 형세 '용산'(龍山)의 어제
 용산이란 지명은 인왕산 줄기가 만리재길을 거쳐 청파동을 지나 한강으로 뻗어내린 형태가 용(龍)의 형상과 닮아 붙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양화나루 동쪽 언덕의 산형이 용이 있는 형국이라 생긴 이름"이라고 적혀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다른 유래로는 '증보문헌비고'에서 "백제 기루왕 21년(서기 97년) 용이 나타났고 해서 용산이라 했다는 설"이 있다.

 타고난 명당터인 용산은 조선시대부터 한강을 끼고 있다는 지리학적 이점으로 배를 타고 오가는 대규모 상인들의 본거지였다. 혹자는 우리나라 자본주의의 시발지이자 최초 위성도시로 평가하기도 한다. 이런 지정학적 이점은 근대에 이르러 일본과 러시아 등 열강들의 집결지로 이용됐다.



 일제시대 일본군 주둔지에서 해방 후 미군기지가 자리잡는 등 빼어난 입지는 되레 용산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가 됐다.

 100년 넘게 외국군의 주둔지라는 이미지를 덮어썼던 용산이 잠에서 깨어날 기미를 보인 건 21세기 들어서다. 뉴타운 등 개발사업 등이 본격화되더니 오세훈 전 서울시장 시절 한강르네상스의 핵심지역으로 떠올랐던 것이다.

 용산구에 따르면 용산 일대에 개발 청사진이 마련된 곳만 따져봐도 한남재정비촉진구역(뉴타운), 동자동·한강로·용산역 전면 등 도시환경정비구역, 용산국제업무지구 등 굵직한 사업뿐만 아니라 소규모 재개발·재건축까지 포함해 760만㎡에 달한다.


ⓒ강기영 디자이너ⓒ강기영 디자이너
 정점은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이었다. 단군 이래 최대 규모로 추진된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은 철도정비창 부지와 서부이촌동 지역 등 총 51만5483㎡에 총 31조원의 사업비를 투입, 초고층빌딩 23개를 지어 동북아 비즈니스 허브로 키우겠다는 게 당초 목표였다.

 이를 정점으로 용산은 강남을 넘어 부동산 투기1번지가 됐다. 현지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개발호재를 틈타 지분쪼개기 등이 기승을 부렸고 일부 지역은 지분가격이 3.3㎡당 2억원을 넘기도 했다.

 KB국민은행 시세에 따르면 2003년 9월부터 리먼브러더스 파산 직전인 2008년 8월까지 약 5년간 용산 집값은 75.8% 급등했다. 같은 기간 송파(47.3%) 서초(45.6%) 강남(43.1%) 등 강남3구의 상승률을 훌쩍 뛰어넘는 것으로, 전국에서 가장 집값이 많이 뛴 지역이다.

 당시 주민들은 자고 일어나면 뛰는 집값에 환호했다. 이촌2동 A부동산중개사무소 관계자는 "부동산 투기를 막기 위해 서울시가 이주대책기준일을 지정할 정도로 과열양상을 보였다"며 "집값이 상상 이상으로 뛰다보니 '용산로또'라고도 했다"고 말했다.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부지 전경 ⓒ뉴스1 허경 기자↑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부지 전경 ⓒ뉴스1 허경 기자
 ◇'용틀임' 준비하다 '삐끗' 다시 겨울잠?
 장밋빛 미래가 곧 다가올 것으로 여겨지던 용산도 2008년 하반기 리먼브러더스 파산과 이에 따른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피해가지 못했다. 유럽발 재정위기까지 겹치면서 부동산시장은 빠르게 냉각됐고 용산 전역 개발사업에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박원순 서울시장 취임 이후 한강르네상스 백지화와 뉴타운 출구전략 등이 이어지면서 한남뉴타운을 비롯, 용산 일대 재개발·재건축사업이 타격을 받았다. 최근 서울시가 한강변경관관리 계획을 마련해 35층 내외로 층고를 제한키로 한 것도 정상적인 사업추진에 악재가 될 수 있다는 게 현지 부동산업계의 우려다.

 용산참사로 알려진 '용산4구역 남일당 화재사건'도 용산 재개발 발목을 잡았다. 전면철거 방식의 기존 재개발·재건축에 대한 비판여론이 거세지면서 사업시행자들의 부담이 커진 것이다.

 난관을 뚫고 완공한 사업장의 경우에도 대규모 미분양으로 자금압박에 시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각지와 서울역을 잇는 한강로 일대 도시환경정비구역에 들어선 고층 주상복합들이 대표적이다.

 결정타는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계획의 좌초다. 용산개발 사업시행자인 '드림허브'는 지난 13일 52억원의 ABCP 이자를 내지 못해 사실상 1차 부도를 맞았다. 이로 인해 지금까지 용산역세권 개발사업에 투자한 자금 총 4조208억원 중 코레일에 지급한 토지대금 3조471억원을 제외한 9737억원이 회수 불가능할 전망이다.

 코레일이 자체개발에 나선다고 해도 서부이촌동 주민들과 출자사들의 줄소송이 예고돼 있어 사업추진 자체가 불투명한 상황이라는 게 건설업계의 전망이다. 때문에 이번 사태가 부동산시장에 미칠 파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가뜩이나 거래가 위축된 상황에서 투자심리가 급격히 얼어붙으면 국내 부동산시장 전체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용산이 힘없이 무너지진 않을 것이라는 게 관련업계의 관측이다. 용산개발이 좌초하긴 했지만 다시 사업추진 속도를 내고 있는 한남뉴타운이 건재하고 미군기지 이전부지에 들어설 용산민족공원도 착착 진행중이어서다.

 여전히 물류와 교통의 중심이 되는 용산의 탁월한 입지를 대체할 만한 곳이 마땅히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도 용산의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는 이유 중 하나다.

 한남동 B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용산개발이 좌초한 것은 아쉽지만 용산이 알짜배기 땅이라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며 "당장 시장의 위축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중장기적으로 용산의 가치를 충분히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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