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조 거함 용산역세권號 '침몰비용 1조' 감수하나

머니투데이 전병윤 기자 2013.02.21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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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조 거함 용산역세권號 '침몰비용 1조' 감수하나


총 사업비 31조원에 달하는 거함 '서울 용산역세권개발호(號)'가 글로벌 금융위기란 예상치 못한 파도를 만나 좌표를 잃은 후 출자회사간 얽히고설킨 이해관계로 난항을 거듭, 끝내 침몰 위기에 몰렸다.

 좌초를 막기 위한 긴급자금인 ABCP(자산유동화기업어음) 발행을 추진했으나 선장격인 코레일(한국철도공사)은 임시방편일 뿐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라고 판단, 이를 거부했다.



 앞으로 위기에 빠진 용산역세권 개발사업을 구하려면 CB(전환사채) 발행을 추진해야 하지만, 코레일을 제외한 다른 출자회사들의 자금 여력이 충분치 않아 이마저도 장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용산역세권 개발사업은 파산 이후 코레일 주도의 사업구조로 새판을 짜든, 아니면 민간출자사와 대타협을 이뤄 정상화를 추진하든 중대 결단을 내릴 분수령을 맞게 됐다.



 ◇ABCP 3000억 무산…마지막 카드 CB발행 가능할까
 코레일은 21일 이사회를 열고 용산역세권개발 시행사인 '드림허브'의 ABCP 3073억원 발행을 위한 반환확약 요청 안건을 부결했다. ABCP 발행은 드림허브가 사업무산 시 코레일로부터 돌려받을 토지대금과 기간이자 3073억원을 담보로 자금을 조달하는 구조다.

 내달 드림허브는 ABCP와 ABS 이자 300억원을 갚아야 하는데 현재 통장에 남은 돈은 9억원에 불과하다. 이대로라면 파산이 불가피하다. 이 때문에 드림허브는 사업 무산을 전제로 돌려받을 돈까지 끌어 담보로 잡히고 ABCP를 발행하는 수단을 추진한 것이다.

 이를 위해선 땅주인인 코레일이 토지대금과 이자를 돌려주겠다는 약속인 반환확약서를 써줘야 한다. 하지만 코레일은 사업 무산을 전제로 시행사인 드림허브에게 돌려줄 토지대금과 기간이자를 담보로 한 ABCP 발행을 승인해 줄 경우, 코레일에게 손실을 입히는 배임에 해당될 수 있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코레일은 사업무산 시 드림허브에게 반환해야 할 토지대금과 기간이자를 포함한 3073억원보다 랜드마크빌딩 계약금 4342억원 등 받아야 할 금액이 더 많아 ABCP 발행을 동의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한마디로 돌려받을 돈이 더 많은 상황에서 줄 돈에 대해 미리 보증을 설 수 없다는 얘기다.

 ABCP 발행이 물 건너가면서 드림허브의 부도 가능성은 한층 커졌다. 드림허브는 부도를 피하려면 다른 자금조달 수단을 찾아야 한다. 남아 있는 마지막 카드는 CB(전환사채)발행이다.

 문제는 이마저도 쉽지 않다는 데 있다. CB 발행에 참여할 출자회사들이 많지 않아서다. 코레일은 드림허브 지분율(25%) 만큼인 625억원 규모의 CB를 인수하겠다는 입장인데, 조건으로 나머지 1875억원을 민간출자회사들의 참여를 요구하고 있다.

 민간출자회사들이 사업 정상화를 위한 자금 조달에 나서지 않은 상태에서 코레일 혼자 책임을 떠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코레일은 만약 민간출자회사들이 본인들 몫의 CB 인수자금을 마련하면 협약에 따라 사업을 추진할 방침이다.

 현재로선 추가 투자가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펀드와 투자 여력이 없는 민간출자회사들이 대부분이므로 CB발행도 무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용산역세권 개발사업은 2007년 말 사업자를 선정한 후 5년여 만에 백지화되고 코레일과 민간출자회사간 책임 소재를 가리는 대규모 소송전 등 후폭풍이 불가피해진다.

31조 거함 용산역세권號 '침몰비용 1조' 감수하나
 ◇매몰비용 1조원 감수…원점서 재검토?
 용산역세권개발은 사업성 악화로 손실을 보는데도 지금껏 쏟아 부은 자금이 아까워 밀고나갈 수밖에 없는 '매몰비용의 오류'에 빠진 건 아닐까. 그렇다면 매몰비용은 얼마나 될까.

 드림허브에 따르면 현재까지 용산역세권개발에 투입된 자금은 4조208억원. 여기서 사업이 무산될 경우 허공에 날리는 돈은 코레일에게 지급한 토지대금 3조471억원을 제외한 9737억원으로 추정된다.

 매몰비용 9737억원 가운데 △토지매입 세금, 취득세 등 부대비용 3037억원 △자본시장 금융조달비용 3409억원 △기본설계비 1060억원 △자산관리위탁회사(AMC)인 용산역세권개발㈜ 5년 간 경비 1195억원이 포함돼 있다.

 몰론 여기서 설계비용은 다른 구도로 사업을 재추진할 경우 일종의 상가 권리금으로 볼 수 있어 완전히 사라지는 매몰비용에서 제외될 수 있다. 우정사업본부를 상대로 한 사업 대상지 토지 무단 사용에 대한 소송 결과도 영향을 준다.

 변수가 있긴 하지만 코레일은 최악의 경우 1조원에 가까운 매몰비용을 감수하더라도 현재의 사업 구조를 엎고 다시 짜야 한다는 입장이다. 코레일이 우려하는 건 분양 등을 진행하다 사업성 악화로 대규모 미분양이 발생했을 때 그 피해를 가늠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코레일 관계자는 "이대로 밀고가다 분양률이 저조하면 운영 자금은 또 바닥나 사업이 중도에 멈출 수밖에 없다"며 "뿐만 아니라 준공을 하더라도 분양된 건물은 토지 소유권이 넘어가 코레일이 땅을 회수할 수도 없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매몰비용 1조원을 아끼려다 사업 실패로 인한 분양자들의 불만과 피해보상 등 뒷수습 때문에 몇 배 더 큰 사회적 손실을 입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사업 중단에 따른 후폭풍은 예단하기조차 어렵다. 코레일과 민간출자회사 사이 사업 무산의 법적책임을 묻는 난타전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최근 민간출자회사에서 코레일을 상대로 검토했던 소송금액만 7094억원에 달한다.

 만약 새로운 사업을 진행하더라도 소송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추진할 수 없다는 것도 개발사업의 장기 표류가 불가피해진다.

 부동산업계 한 관계자는 "개발 기대감을 가졌던 서부이촌동 주민들의 반발은 더욱 거세질 수밖에 없다"며 "지금의 구조대로라면 정상적인 사업 추진이 어려워진 만큼 판을 다시 짜는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용산역세권개발사업은 서울시 용산구 한강로3가 일대 51만 5483㎡ 부지에 31조원의 사업비를 투입해 국제업무·상업·문화·주거시설 등을 짓는 복합개발 프로젝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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