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는 좋은데… 임대주택 산다고하면"

머니투데이 송학주 기자 2013.02.12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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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 영구임대 '번동주공' 통해 본 임대주택 현실]살기 불편하고 사회적 편견 여전

↑우리나라 1호 영구임대아파트 '번동주공'의 최근 모습. 군데군데 칠이 벗겨져 있다.ⓒ송학주 기자↑우리나라 1호 영구임대아파트 '번동주공'의 최근 모습. 군데군데 칠이 벗겨져 있다.ⓒ송학주 기자


 "하루하루 벌어먹고 살면서 공장에 가려면 멀었는데 공장도 가깝고 탁아소도 생긴다고 하니 너무 기쁩니다. 저번 집은 오두막집 같다고 큰딸이 질색을 했어요. 그런데 여기서는 이제 누가 와도 걱정이 없겠다며 좋아서 어쩔 줄 모르네요."

 1990년 11월 국내 최초 영구임대아파트인 서울 '번동주공아파트' 입주를 앞두고 한 입주민의 눈물 젖은 소감이다. 4181가구 규모의 첫 영구임대아파트 입주자는 대부분 철거민촌 비닐하우스에 거주해 왔거나 대낮에도 불을 켜야 하는 지하 단칸방에서 온 식구가 모여 살던 이들이었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과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민주거안정을 위한 임대주택 늘리기에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박 당선인은 철도부지 등을 활용한 공공임대주택인 '행복주택'을 연 4만가구(총 20만가구) 수준으로 공급할 계획이다. 여기에 연간 보금자리주택 15만가구 중 12만가구를 임대주택으로 공급하기로 했다.

 박 시장도 '임대주택 8만호+α' 계획을 내놓고 올해 2만4982가구를 추가 공급하기로 했다. 예정대로 진행되면 박 시장이 공약으로 내걸었던 임대주택 8만가구 목표치의 90% 수준(7만1764가구)을 달성하게 된다. 각자 방식은 다르지만 서울시내 임대주택이 대폭 늘어날 것은 자명하다.



 임대주택 확대의 필요성에 대해선 이견이 없지만 문제는 '누가 어떻게' 임대주택을 공급할 것인가에 있다. 재원마련과 관련, 한국토지주택공사(LH)나 서울시 산하 SH공사의 부채 증가 역시 우려되는 상황이다. 공공이 모두 떠안기엔 재정 부담을 무시할 수 없고 민간 임대주택을 늘리는 것은 사업성이 관건이다.

 여기에 임대주택에 대한 편견도 실효성 논란에 한 몫 거들고 있다. 이에 따라 예산 부담을 줄일 수 있으면서도 양질의 임대주택 공급을 늘리는 묘수 찾기가 박 당선인과 박 시장의 숙제로 남았다.

↑같은 날 찍은 두 아파트의 모습. 위쪽 사진은 눈 덮힌 '번동주공' 아파트. 아래쪽 사진은 말끔하게 치워진 인근 민간 S아파트. ⓒ송학주 기자↑같은 날 찍은 두 아파트의 모습. 위쪽 사진은 눈 덮힌 '번동주공' 아파트. 아래쪽 사진은 말끔하게 치워진 인근 민간 S아파트. ⓒ송학주 기자
 ◇1호 영구임대아파트 '번동주공'···사회적 편견 여전
 지난 4일 찾은 '번동주공'은 온통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차도는 주차된 차들로 빼곡했다. 인근의 다른 단지와는 달리 지하주차장이 없다 보니 도로 위에 눈 덮인 차들이 많았고 단지 안에도 눈이 치워지지 않고 있었다.


 번동주공아파트는 입주 당시만 해도 이제껏 없었던 '영구임대'라는 새로운 개념의 주택으로 입주자 만족도는 상당히 높았다. 이사 걱정없이 안정적으로 살 수 있고 주거환경도 양호했다. 하지만 지금의 번동주공은 영구임대아파트가 주는 안정감과 함께 그림자도 함께 드리워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도 오래돼 낡은 아파트 벽면과 일반아파트와 달리 판상형의 편복도 구조는 '저소득계층의 집'이란 편견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안에는 소형 위주로 건설되다 보니 짐을 쌓아 둘 공간이 부족해 살기에 불편했다.



 단지에서 만난 한 주민은 "처음 이 곳에 들어올 때만 해도 부엌과 화장실을 가구마다 따로 쓰게 돼 얼마나 기뻤는지 몰랐다"며 "하지만 지금은 주변에서 '사회적으로 열악한 계층이 모여 사는 곳'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에 살기에 창피하다"고 하소연했다.

"살기는 좋은데… 임대주택 산다고하면"
 ◇임대주택 필요하지만 해결해야 할 문제 많아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2011년 말 기준 전체 임대주택 재고량은 145만9513가구. 전체 주택수가 1770만가구인 점을 감안하면 8%만이 임대주택이다. 선진국에 비하면 임대주택 비율은 아직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임대주택 총량이 선진국에 비해 적은 것은 사실이지만 번동주공 사례에서 보듯 새정부의 임대주택 정책은 '짓고 보자'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동안 주거복지정책은 공공임대 공급에 치중한 나머지 물량 확충에만 치중해왔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앞으론 연령대별, 소득계층별 수준에 맞는 임대주택을 제공할 수 있도록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빈곤층을 수용한 이후 삶의 질을 고민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임대주택의 슬럼화 방지와 입주민들의 삶을 윤택하게 할 수 있는 지원, 임대기간이 끝나 임대주택을 떠날 경우 주거대안 찾기 등이 이에 해당한다. 최근 공급되는 임대아파트의 '소셜믹스'도 한 가지 방법이다. 분양주택 안에 임대주택을 넣어 짓거나(장기전세주택 시프트) 중대형 임대아파트도 공급하는 등 사회통합을 위해 다양한 방법이 시도돼야 한다.

 일부 인근 주민들의 반발도 해결해야할 선결과제다. 자산가치 하락에 따른 우려때문에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임대주택 정책을 효과적으로 개선하고 다양한 주거복지를 실현해야 하는 이유다.



↑우리나라 1호 영구임대아파트 '번동주공'의 최근 모습. 눈 덮힌 차량들이 그대로 주차돼 있다.ⓒ송학주 기자↑우리나라 1호 영구임대아파트 '번동주공'의 최근 모습. 눈 덮힌 차량들이 그대로 주차돼 있다.ⓒ송학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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