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적 관람석과 21세기적 무대의 묘한 조화

머니투데이 글·사진= 송원진 바이올리니스트· 서울과학종합대학원교수 2013.02.03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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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원진의 클래식 포토에세이] 파리 샤틀레 극장... 스트라빈스키와 디아길레프를 만나다

편집자주 <송원진의 클래식 포토 에세이>는 러시아에서 17년간 수학한 바이올리니스트 송원진이 직접 찾아가 만난 세계 유수의 음악도시와 오페라 극장, 콘서트홀을 생생한 사진과 글로 들려주는 '포토 콘서트'입니다. 그 곳에서 만난 잊을 수 없는 공연과 연주자들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화려하고 강렬한 터치로 러시아의 광활한 음악세계를 들려주는 그가 만난 음악과 세상, 그 불멸의 순간을 함께 만나보세요

↑ 샤틀레극장의 전경모습.↑ 샤틀레극장의 전경모습.


↑샤틀레 극장 전경↑샤틀레 극장 전경

파리에 있는 극장들을 알게 되고 가게 된 계기가 있다. 이번에 이야기 할 샤틀레 극장은 필자가 제일 좋아하는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의 발레 '페트루쉬카(Petrouchka)'의 초연이 있었던 곳이다.

그래서 언젠가 한번은 꼭 가보고 싶었던 극장이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1911년 초연이후 딱 100년이 지난 2011년 이곳에 가게 되었다.



저녁인데 해가 지지 않아서 밝은 날에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엄마와 함께 조금 일찍 극장에 갔다.

샤틀레 극장과의 가슴 뛰는 첫 만남... 그런데 현장에 도착한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여기가 샤틀레야? 맞는 거 같긴 한데.... "



극장의 외관이 주는 느낌이 뭔가 오페라 가르니에와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물론 오페라 가르니에가 갖고 있는 극단의 화려함은 없었지만 보는 순간 오페라 가르니에를 현대식으로 표현한다면 이렇게 생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여기나 저기나 리허설 후는 수다가 최고. 연주자들이 공연 전 리허설을 마치고 샤틀레 극장 뒷문에 나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여기나 저기나 리허설 후는 수다가 최고. 연주자들이 공연 전 리허설을 마치고 샤틀레 극장 뒷문에 나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티켓은 언제나처럼 인터넷으로 예매를 해서 갔기 때문에 공연까지는 시간이 조금 남아 근처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주변 방랑(?)을 시작했다.

극장의 코너를 돌자마자 검정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수다를 떨며 담배를 피고 있었다. 어디선가 많이 본 광경이었다.


" 와우! 샤틀레 극장의 뒷문이다... 저들은 오늘 연주자들이잖아!’"

역시 같은 직업의 사람들은 서로를 알아볼 수 있다. 얼마 전 TV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출연자가 다른 식당에서 맛보러 온 주방장들은 다 알아볼 수 있다고 말하던 것이 생각난다. 그렇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끼리 알아보는 건 어쩌면 아주 당연한 일이다.



모스크바에서도 리허설 쉬는 시간이나 연주전엔 항상 저렇게 삼삼오오 모여서 수다를 떨고 담배를 피우고 커피를 마셨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선 실내에서 커피를 마신다는 점이 좀 다르긴 하지만 말이다.

↑ 발레뤼스의 창시자이자 러시아 기획자인 세르게이 디아길레프의 흉상이 샤틀레 극장 내부에 세워져있다.↑ 발레뤼스의 창시자이자 러시아 기획자인 세르게이 디아길레프의 흉상이 샤틀레 극장 내부에 세워져있다.

시계를 보니 콘서트 시작이 얼마 안 남았다. 이크, 이제 들어가야지!
극장을 들어서는 순간 난 내 눈을 의심했다. 정말?... 정말 디아길레프야?

바로 극장 문에서 들어오는 관객 모두를 맞이하는 디아길레프의 흉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불어이지만 그가 누구이고 왜 여기에 서있는지 자세하게 써있었다. "오! 정말 디아길레프는 대단한 일을 한 사람이구나! "



↑왠지 어느 귀족의 방이었을 것 같은 분위기의 샤틀레 극장 회랑이다. ↑왠지 어느 귀족의 방이었을 것 같은 분위기의 샤틀레 극장 회랑이다.
↑1909년 러시안 시즌(Saison Russe)의 포스터아래 프랑스인 관객이 이번시즌 프로그램을 보고 있다.↑1909년 러시안 시즌(Saison Russe)의 포스터아래 프랑스인 관객이 이번시즌 프로그램을 보고 있다.

콘서트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홀 앞에 있는 거실 같은 분위기의 회랑에서 샴페인도 마시고 오늘 볼 공연에 대한 이야기 꽃을 피운다.

이 회랑을 둘러보다 나를 반긴 또 하나의 선물이 있다. 바로 1909년 러시안 시즌(Saison Russe)의 포스터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벽돌 수준의 무게를 자랑하는 러시안 시즌 책의 표지여서 더욱 더 잘 기억하는 그 포스터였다. 뭔가 보물을 찾아낸 거 같았다.

그래서 한참을 포스터를 바라보며 포스터 속의 발레리나가 누구일까? 라는 생각을 했다. 혹시 그 때의 발레리나중 하나를 그린 것이라면 혹시 안나 파블로바일 거라고 혼자 심심한 결론을 내버렸다.



↑ 샤틀레의 샹들리에는 화려하면서도 침착하다. ↑ 샤틀레의 샹들리에는 화려하면서도 침착하다.
↑ 샤틀레 극장 메인 공연장 내 관람석 모습.↑ 샤틀레 극장 메인 공연장 내 관람석 모습.

어느 극장에 들어가든 홀에 들어가면 생긴 버릇이 있다. 바로 천장을 먼저 바라보는 것이다. 사실 무대는 콘서트일 경우 바로 세팅을 해놓아서 볼 수 있고 발레나 오페라의 경우는 무대 커튼이 처져있어서 유럽의 극장들을 가면 자리확인을 하고 의자에 가방을 놓자 마다 극장의 천장부터 본다.

그런데 이번 공연은 참 특이한 무대를 구성하고 있었다. 분명 홀 분위기는 유럽의 고전적인 귀족들이 앉아있었을 것 같은 모습인데 무대는 21세기 광선이 뿜어져 나왔다. 샤틀레 극장은 나에게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클래식 콘서트의 무대라는 하나의 특이함을 선물해주었다.

↑샤틀레 극장 콘서트홀 내부는 매우 고전적이다. 하지만 정작 공연 무대는 매우 모던했다. 어울리않을 것 같은 클래식과 모던의 믹스매치 라고나 할까.↑샤틀레 극장 콘서트홀 내부는 매우 고전적이다. 하지만 정작 공연 무대는 매우 모던했다. 어울리않을 것 같은 클래식과 모던의 믹스매치 라고나 할까.
↑샤틀레 극장 이날 공연 안내서.  특이한 점은 콘서트의 공연 시간이 자세히 써있다는 것이다. 총 1시간 45분 -1부 35분 - 인터미션 20분 - 2부 45분.↑샤틀레 극장 이날 공연 안내서. 특이한 점은 콘서트의 공연 시간이 자세히 써있다는 것이다. 총 1시간 45분 -1부 35분 - 인터미션 20분 - 2부 45분.
↑샤틀레 극장에서 만난 1990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우승자인 일본 바이올리니스트 아키코 스와나이와 나바레 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협연 모습.↑샤틀레 극장에서 만난 1990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우승자인 일본 바이올리니스트 아키코 스와나이와 나바레 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협연 모습.

내가 본 콘서트는 1990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우승자인 일본 바이올리니스트 아키코 스와나이(Akiko Suwanai,1972-)와 나바레 심포니 오케스트라(Orchestre Symphonique de Navarre)와의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Tchaikovsky Violin Concerto Op.35) 협연이었다.



빨간 드레스를 입고 나온 아키코는 역시 연륜이 넘치는 연주로 행복함을 선사해주었다. 하지만 나바레 오케스트라는 뭔가 엇나가는 느낌의 연주를 했다. 연륜있는 바이올리니스트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삐그덕 거리는 연주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 1911년 스트라빈스키의 “페트루쉬카”초연 당시의 무대와 무대의상. ↑ 1911년 스트라빈스키의 “페트루쉬카”초연 당시의 무대와 무대의상.

샤틀레 극장 곳곳에는 발레뤼스의 추억이 많이 묻어 있었다. 바츨라프 니진스키, 안나 파블로바, 세르게이 디아길레프... 발레 뤼스의 첫 멤버이자 러시아 예술을 전세계에 알리는데 큰 몫을 한 세계적인 예술가들!

그들의 발자취를 하나하나 그곳에서 찾을 때마다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백년전 이곳에서 그들은 땀방울을 흘렸고 청중들은 그 땀방울에 기립박수를 쳤으리라!



타임머신이 있다면, 정말 타임머신이 존재한다면, 그 곳에서 그들과 함께 호흡해보고 싶다.

샤틀레 극장은...

오늘날의 오페라-오페레타-발레 전용 극장인 샤틀레 극장은 나폴레옹 3세 시절인 1862년 문을 열었다. 오프닝에는 오페라 애호가인 유제느 왕비가 직접 참석했다. 이 극장은 한 때 제국 샤틀레 극장(Theatre Immperial de Chatlet)이라고 불리기도 했으며 20세기에 들어서서는 교향악 연주도 빈번히 열렸다.



샤틀레 극장은 1904년부터 외국의 유명 발레단의 초청 공연을 가졌는데 특히 오늘날의 디아길레프가 이끌었던 발레 뤼스( Ballet Russe)의 공연은 러시아 발레의 진수를 프랑스에 소개한 첫 케이스였다.

1908년 에릭 사티(Erik Satie)와 장 콕토(Jean Cocteau)의 Parade(퍼레이드)가 초연되었으며 1911년에는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의 페트루쉬카(Petrouchka)가 초연되었다.

이와 함께 차이코프스키, 말러, 슈트라우스등 세계적 작곡가와 지휘자들도 이 극장에 모습을 보였다. 특히 구스타프 말러가 1900년 비엔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인솔하여 이 극장에서 연주회를 가진 것은 역사적인 일이었다.



1979년부터 샤틀레 극장은 파리시가 운영하게 되었는데 대대적인 보수를 거친 후 1980년 파리 음악극장(Theatre Musical de Paris)라는 이름으로 재출범하였다. 하지만 옛것이 더 좋다는 생각에 1989년 원래의 이름인 샤틀레 극장으로 다시 되돌아왔다.

현재 샤틀레극장은 오페라에도 많은 비중을 두어 기획상품을 개발하고 있다. ‘모차르트 시즌’, ‘베르디 시즌’등이다. 최근 샤틀레 극장은 파리 오케스트라, 라디오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본부가 되었다.

다리 하나 건너로 생루이 섬이고 에스메랄다가 생각나는 노트르담 성당이 근처에 있다. (주소: 1 pl. du Chatelet | 1st, Paris, France, www.chatelet-theatre.com)




◇ 클래식도 즐기고 기부도 하는 <착한 콘서트>
귀족적 관람석과 21세기적 무대의 묘한 조화
<송원진·송세진의 소리선물>콘서트가 매월 세번째 일요일 오후 1시 서울 KT 광화문지사 1층 올레스퀘어 드림홀에서 열립니다. 이 콘서트는 일반인들이 쉽게 접하기 힘든 클래식 콘서트의 티켓 가격을 5천원으로 책정하고, 입장료 수익금 전액을 어려운 가정의 청각장애 어린이 보청기 지원을 위해 기부합니다. 2월 공연은 이17일 일요일입니다. 예매는 인터넷으로 가능합니다. ( ☞ 바로가기 nanum.mt.co.kr 문의 02-724-7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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