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와 보수는 왜 서로 타협하지 못할까

머니투데이 뉴욕=권성희 특파원 2013.01.0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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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해외 석학 인터뷰]① 조너선 하이트 뉴욕대 교수

왜 농촌에서는 새누리당 지지율이 높고 도시에서는 민주당 지지율이 높을까. 왜 '강남 좌파'들은 경제적으로 풍족한데도 정치적으로 진보적일까. 왜 나이가 들면 보수적이 될까. 젊은데도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을 선택한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것일까.

지난해 18대 대통령 선거를 치르면서 누구나 한번쯤 이런 의문을 가졌을 것이다. 지지하는 대선 후보에 따라 부부가, 부모 자식이, 친구가 서로 얼굴을 붉히며 싸우기도 하고 아예 포기하고 외면해 버리기도 했을 것이다. 마치 진보와 보수는 건널 수 없는 강을 사이에 둔 것처럼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같은 정치적 분열 양상은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 역시 진보적인 민주당과 보수적인 공화당이 점점 더 사이가 멀어지며 타협하기 어려워 보인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질까. 왜 사람들은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로 갈라지는 것일까.

지난 2012년, 한국과 마찬가지로 대선을 겪었던 미국에서는 이같은 정치적 분열 양상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한 책이 큰 화제를 모았다. 조너선 하이트 뉴욕대 스턴 경영대학 교수가 지은 '도덕적으로 올바른 마음: 왜 선한 사람들이 정치와 종교로 갈라질까(The Righteous Mind: Why Good People Are Divided by Politics and Religion)'이란 책이다.



미국의 재정절벽에서부터 유럽의 채무위기에 이르기까지 모든 경제적인 문제들이 정치적 합의와 결단, 리더십의 부재로 악화되는 현 상황에서 왜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갈라져 서로 타협하기 어려워하는지 하이트 교수를 만나 들어왔다.

◆타고난 성격과 자라난 환경이 진보와 보수를 결정 짓는다
진보와 보수는 왜 서로 타협하지 못할까


-사람들은 왜 서로 다른 정치적 가치관을 갖게 되는가.
=정치가 추구하는 가치는 도덕률에서 출발하는데 도덕률이란 인간이 느끼는 맛과 같다. 모든 사람의 혀는 똑같이 5가지 맛을 느낀다. 이러한 미각은 진화에 의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하지만 혀가 느끼는 맛은 같아도 각 문화권마다 먹는 음식은 다르다. 도덕률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겐 크게 6가지의 도덕적 토대가 있다. 보살핌, 공정성, 자유, 충성, 권위, 신성함이다. 하지만 이러한 도덕적 토대는 환경에 따라 서로 다르게 형성돼 나타난다. 서구의 도시 문화는 보살핌과 공정성, 자유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전통적인 농촌 문화는 서로를 결합시키는 그룹이 중요하기 때문에 충성, 권위에 대한 존경, 종교적 신성함 같은 도덕적 가치를 높이 평가한다. 각 사람들이 중시하는 도덕적 가치는 혀의 감각처럼 타고 나는 동시에 그 사람이 자라나는 문화와 환경을 통해 습득된다.

-왜 사람들은 진보와 보수, 다시 말해 정치적으로 좌파와 우파로 나뉘는가.
=타고난 성격과 자라난 환경이 진보냐, 보수냐를 결정짓는다. 우선 성격적으로 다양성, 변화, 새로운 것, 혁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진보적 메시지에 더 끌린다. 반면 책임감, 예측 가능성, 조직에 대한 종속, 전통, 친밀함 등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보수적 메시지에 매력을 느낀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들은 유전자에 의해 기질적으로 진보주의자가, 어떤 사람들은 보수주의자가 되기 쉽도록 태어난다. 두 번째는 자라난 환경이 영향을 미친다. 대표적으로 미국이나 한국이나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시 사람들은 진보적인 성향이, 인구 밀도가 낮은 농촌 사람들은 보수적인 성향이 강하다. 도시에서는 각계각층의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 개인주의적으로 살아가지만 농촌에서는 서로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이웃의 도움에 의존해 살아가기 때문에 보수적인 조직적 가치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나이도 정치적 성향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젊은 사람들이 좀더 진보적인 것처럼 보이는데 나이가 들수록 보수적인 성향이 강해지는가.
=나이에 따라 조금 보수적으로 변해가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나이보다 중요한 것이 경험이다. 대표적으로 전쟁을 겪은 사람들은 국가 이익을 중심으로 잘 뭉치고 조직에 대한 충성, 권위에 대한 존경, 책임을 완수하는 것 등을 중시하는 보수적인 경향이 강하다. 반면 전쟁 후에 태어나 빠른 경제 성장기에 자라난 세대는 진보적이 되기 쉽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면 개인주의적이 되고 자신의 개성을 강하게 표현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이런 사람들에겐 국가의 이익이라든가 애국심 같은 것이 그리 중요한 가치로 여겨지지 않는다.

◆전쟁, 양육, 사업을 경험하면 보수화하기 쉽다
진보와 보수는 왜 서로 타협하지 못할까
-보수적인 사람들은 외교적으로도 강경책을 선호하는 것처럼 보인다.
=보수적인 사람들은 위협 요인을 더 민감하게 생각한다. 따라서 정부가 대외 위협 요인에 대응할 수 있는 강력한 체제를 갖춰야 한다고 믿는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표현을 빌자면 평화란 힘을 통해 실현된다고 믿는 것이다. 반면 진보적인 사람들은 군사력을 키우는데 반대하고 대외적으로 유화적인 태도, 대화를 통한 협상을 선호한다.

-전쟁 외에도 사람을 보수적으로 만드는 경험이 있는가.
=부모가 되거나 자기 사업을 하면 보수적이 되기 쉽다. 부모가 되면 권위에 신경을 쓰게 되고 자기 사업을 하면 열심히 일하면 보상하고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대가를 치르는 공정성을 평등보다 더 중시하게 된다. 이 때문에 미국의 중소기업 사업가들은 대부분 공화당을 지지한다. 반면 대학 교수들은 대다수가 민주당 지지자들이다. 나이가 들어도 결혼을 안 하고 아이를 낳지 않으면 보수적이 되는 경향이 낮아지는데 한국은 출산율이 떨어지니 진보적인 성향이 강해질 수 있다.

-책에서 진보와 보수로 갈리더라도 정치적 다양성은 체제의 건강을 위해 긍정적이라고 밝혔는데 지금의 정치구도는 어떤가.
=정치적 견해의 다양성과 타협하기 어려운 정치구도는 다른 문제다. 지금 미국의 정치 시스템은 최악이다. 민주주의는 서로 다른 정당이 비전을 두고 경쟁할 때 효과가 있다. 마치 음양이 경쟁하며 조화를 이루듯 민주주의도 서로 다른 당이 서로 다른 아이디어로 기여하면서 통합할 수 있을 때 생산적이 된다. 한 당이 다른 당을 전적으로 이기려고만 한다면 그야말로 재앙이다. 미국 의회는 앞으로 수조달러가 달린 엄청난 정책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런데 지금 양당은 국가를 위한 최선이 무엇인지 고민하면서 경제학자들의 자문을 얻어 협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당의 계산, 당의 관점에서 무엇을 내세울 것인가에만 초점을 맞춰 자신의 입장을 주장하고 고수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건 정말 무모한 일이다.

-보수주의자든, 진보주의자든 각자 자신이 믿는 가치가 옳다고 생각하고 주장한다. 토론을 통해서도 서로에게 설득되지 않는 것 같다.
=보수와 진보의 정치적 성향은 타고난 성격과 자라온 환경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논리를 가지고 상대방을 설득하기는 극히 어렵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의견 일치를 이루기 위한 제도가 아니며 완벽한 합의에 도달하는 것이 목표도 아니다. 민주주의는 서로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함께 사는 방식이다.

◆진보가 보수를 이해하는 것이 더 어렵다
진보와 보수는 왜 서로 타협하지 못할까
-각 사람의 진보성과 보수성이라는 정치적 성향이 바뀌기 어려운 것이라면 왜 어떤 때는 선거에서 진보적인 정당이 이기고 어떤 때는 보수적인 정당이 이기는가.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보수와 진보로 나뉘지만 대부분은 중간 어딘가에 위치해 있다. 이 사람들은 각 시대의 이슈에 따라 어떤 때는 진보적 메시지에, 또 어떤 때는 보수적 메시지에 더 끌리게 된다. 다시 말해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의 심리적인 성향 차이는 고정된 것이지만 시대마다 쟁점이 되는 이슈에 따라 조금씩 정치적 선택이 바뀔 수 있다. 미국의 경우를 보면 1960년대에 흑인의 지위 향상과 전쟁 반대와 같은 좌파적 메시지가 더 설득력이 있었다. 하지만 진보적인 이슈들이 너무 많이 나가자 1980년대에는 정부가 축소돼야 하고 기업의 활동 여지가 넓어져야 하며 경제적 자유가 필요하다는 레이건 전 대통령의 주장이 사회적으로 더 많은 지지를 받게 됐다. 어느 한 쪽이 한 방향으로 너무 나가면 다른 쪽이 중간 지대에 포진해 있는 사람들을 설득해 자기 쪽으로 움직이게 만든다. 이것이 정치 역학이다.

-책에 보면 보수가 진보를 이해하는 것보다 진보가 보수를 이해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내용이 있다. 흔히 진보주의자들이 더 개방적이라고 생각되는데 왜 그런가.
=연구 결과 최소한 6가지의 도덕적 기반이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진보주의자들은 이 가운데 충성이나 권위, 신성함 같은 도덕적 가치를 부인하는 경향이 있다. 보수주의자들은 진보주의자들이 중시하는 순결이나 애국심, 순종 같은 덕목이 왜 덕목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반면 내가 아는 한 진보주의자들이 중시하는 가치 중에 보수주의자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없다. 예를 들어 진보주의자들은 다른 사람에 대한 연민이나 동정심이 보수주의자보다 더 강하다. 하지만 보수주의자들도 연민이나 동정심이 무엇인지는 안다. 진보주의자들이 보수주의자들보다 약한 사람들을 돌보는데 더 관심이 많고 다른 세상과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는데 더 열린 마음을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자신과 다른 도덕적 가치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이해력은 더 떨어진다.

-민주당 지지자였다가 이 책을 쓰면서 중도주의자로 바뀌었다고 고백했다.
=연구를 진행하는 동안 보수주의자들의 글과 영상 자료를 많이 봤다. 그 과정에서 보수적인 가치에도 옳은 것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보수와 진보는 각각 하나의 팀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한 팀으로는 똘똘 뭉치지만 상대방 팀에 대해선 전혀 무지하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진보와 보수 양쪽의 이념과 가치를 모두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나는 중도주의자다. 다만 지금 상황에서 민주당과 공화당이 둘 다 똑같이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시기에 따라 한 정당이 한쪽 방향으로 너무 나갈 수가 있는데 지금은 공화당이 오른쪽으로 많이 치우쳤다고 생각한다. 기후변화를 인정하지 않고 부자들의 세금 인상을 반대하는 점에서 그렇다.

-진보와 보수가 서로를 설득하기 어렵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논리적으로 상대방을 설득할 수는 없다. 논리란 우리가 본능적으로, 직관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이지 진리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겸손한 마음으로 나와 다른 도덕적 가치 체계를 가진 사람을 존중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진보와 보수는 음양처럼 서로 같아질 수는 없지만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조화를 이룰 수는 있다.

◆조너선 하이트 교수
하이트 교수는 사회 심리학자로 뉴욕대 스턴 경영대학의 조직 윤리학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1985년에 예일대학에서 철학으로 학사 학위를 받고 1992년에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심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1995년부터 2001년까지 16년간 버지니아 대학에서 심리학 교수로 일했다. 윤리 심리학이 전공이며 도덕적으로 부정적인 감정과 긍정적인 감정을 연구하다 긍정 심리학으로 영역을 넓혔다.

국내에는 행복이란 개인의 내면이 아니라 나와 타인, 나와 나의 일 등의 관계에서 나온다는 내용을 담은 '행복의 가설'이란 책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에 번역된 책에는 조너선 헤이트로 소개됐지만 '하이트'가 정확한 발음이라고 교정해줬다. 뉴욕대 스턴 경영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는 조직 윤리학에 대해 그는 "윤리가 무엇인지 가르치지 않고도 조직을 효율적이면서 윤리적으로 강하게 만드는 방법을 강의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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