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호의 체인지업]박찬호 30년 야구인생을 바꾼 결단과 좌절

머니투데이 장윤호 스타뉴스 대표 2012.12.29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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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여행을 마쳤습니다. 감사합니다.’ 30년간 피땀 흘렸던 그라운드에 안녕을 고한 박찬호는 크리스마스와 2013년 신년 연하장에 이렇게 썼다. ⓒ 머니투데이 자료사진↑‘긴 여행을 마쳤습니다. 감사합니다.’ 30년간 피땀 흘렸던 그라운드에 안녕을 고한 박찬호는 크리스마스와 2013년 신년 연하장에 이렇게 썼다. ⓒ 머니투데이 자료사진


며칠 지나면 2013년 새해가 밝아온다. 이런 저런 모임에 망년회를 하면서 느낀 것이 있다. 물론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많은 분들에게 ‘새해’가 희망과 설레임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니라는 현실이다. 일각에서는 ‘또 해가 바뀌는구나’하는 생각으로 때로는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감에 빠지기도 한다고 했다.

야구팬들에게 2013년 새해의 많은 변화 중 하나가 더 이상 마운드에 서 있는 박찬호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1994년 LA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그는 2011년 일본 프로야구 오릭스, 그리고 올해 고향팀 한화를 마지막으로 현역 은퇴라는 결단을 내렸다.



프로에서만 미국 일본 한국을 거치며 무려 19시즌, 아마를 포함하면 30년을 뛰는 긴 여정이었다. 박찬호는 은퇴 발표 후에도 ‘아직도 선수라고 착각할 정도로 정신적으로 혼란을 겪고 있다’고 밝혀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박찬호의 일본행과 한국프로야구 한화 입단은 메이저리그에서 전성기를 보낸 뒤 선수 생활을 마무리 하는 과정에서의 선택이었다. 따라서 그의 야구 인생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고 볼 수는 없다.



박찬호는 마이너리그를 포함해 모두 17시즌에 걸친 메이저리그 활동 기간 중 필자의 판단으로 볼 때 자신의 야구 인생을 흔들 두 번의 결정적인 선택을 했다. 1994년 LA 다저스 입단은 본인의 뜻과 상관없이 천운(天運)으로 이뤄졌다.

지난 2002년의 일이다. 박찬호가 LA 다저스를 떠나 아메리칸리그 텍사스 레인저스로 이적한 후 첫 시즌이었다. 당시 ESPN 방송이 특집을 통해 평균 자책점이 7점 대인 투수가 5년간 6,500만달러를 보장 받고 있다고 비난해 팬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텍사스 알링턴에 머물며 박찬호를 취재하고 있던 필자는 그런 혹독한 평가를 보면서 박찬호가 승승장구하던 시절인 1999년 5월을 떠올렸다.


당시 에이전트였던 스티브 김은 박찬호가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1998년 12월 방콕 아시안게임에 참가해 금메달을 따내 병역특례혜택을 받게 되자 1999시즌을 앞두고 서둘러 장기계약을 추진했다.

스티브 김은 투수는 야수보다 더 부상의 위험에 노출돼 있기 때문에 기회가 있을 때 확실한 보장을 받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었다. 그 때 LA 다저스로부터 얼마 만큼의 액수를 보장 받았는지에 대한 이견이 있으나 5년째와 6년째를 옵션으로 해서 최대 4,000만달러 수준이었다고 알려졌다.

한편에서는 실제 보장액은 그 보다 낮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박찬호 본인이 최종안을 거절했다. 만약 당시 박찬호가 그 계약을 받아들였다면 텍사스 레인저스행은 없었다. LA 다저스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이름을 남겼을 것이다.
↑ 박찬호가 2001년 12월 텍사스 레인저스 입단식을 마친 뒤 메이저리그 최고 몸값인 알렉스 로드리게스(현 뉴욕 양키스, 왼쪽부터) 그리고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와 나란히 했다. ⓒ 머니투데이 자료사진↑ 박찬호가 2001년 12월 텍사스 레인저스 입단식을 마친 뒤 메이저리그 최고 몸값인 알렉스 로드리게스(현 뉴욕 양키스, 왼쪽부터) 그리고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와 나란히 했다. ⓒ 머니투데이 자료사진
1999시즌 후 박찬호는 에이전트를 스캇 보라스로 교체했다. 그리고 2001시즌을 마친 뒤 자유계약선수(FA) 자격으로 LA 다저스와 결별하고 텍사스 유니폼을 입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텍사스 행은 실패로 끝났다. 부(富)를 얻었지만 최고 투수의 명예(名譽)를 잃었다. 박찬호의 야구 인생을 바꾼 첫번째 선택이었다.

박찬호는 텍사스와의 5년 계약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샌디에이고로 트레이드돼 2006시즌 후 다시 FA가 됐다. 그런데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의 관심은 박찬호로부터 멀어져 있었다. 박찬호는 에이전트를 제프 보리스로 교체한 뒤 뉴욕 메츠 행을 결정했다.

현지에서 필자는 새로운 팀 계약을 취재하면서 박찬호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로 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샌디에이고 시절 함께 했던 브루스 보치 감독이 샌프란시스코로 옮겨 박찬호에게 불펜을 맡아 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를 보장해주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박찬호는 선발 자리를 노릴 수 있고 월드시리즈 도전이 가능한 팀이라는 점과 뉴욕이 주는 도시적 매력에 뉴욕 메츠를 선택했다. 박찬호는 결국 스프링캠프에서 선발 자리 확보에 실패하고 뉴올리언스 제퍼스(Zephyrs)라는 뉴욕 메츠 트리플A 팀에서 2007 시즌을 시작했다.

박찬호는 뉴욕 메츠행을 결정한 후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무심지도(無心之道)’를 얘기했다. ‘마음을 비우니 길이 보인다’는 것이었는데 결과적으로 박찬호에게 뉴욕 메츠는 가야 할 길이 아니었다.

메이저리그 1경기 선발 등판이 끝이었고 5월4일 방출 당했다. 이후 박찬호는 휴스턴 애스트로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하는 등 자신의 야구 인생에서 최악의 암흑기를 거치게 됐다.

뉴욕 메츠와의 계약이 기본 연봉 60만달러에 옵션으로 최대 300만달러까지 받을 수 있는 스플릿 계약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만약 그가 메이저리그 계약을 약속한 샌프란시스코로 갔다면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지금까지도 의문으로 남아 있는 것은 LA 다저스가 2001시즌 후 왜 FA 박찬호에게 재계약 제안을 한번도 하지 않았느냐이다.

두번의 기로(岐路)에서 박찬호는 한결 같이 소신을 다해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다. 그러나 모두 좌절을 맛보고 불굴의 의지로 재기했다. 이제 그는 ‘선수가 아닌 박찬호’에 도전하고 나섰다. ‘무심지도’를 생각하며 2012년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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