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커피 심부름에'...터키, 심슨만화에 벌금 논란

머니투데이 이호기 국제경제부 인턴기자 2012.12.04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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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키 민영방송이 방영한 미국 만화 '심슨가족'의 한 에피소드 내용이 종교적인 이유로 문제가 되어 터키 방송규제 당국이 벌금을 부과했다. 문제가 됐던 장면중 악마가 신(神)에게 커피 심부름을 시키는 장면 (ⓒFairfax NZ 캡쳐)▲ 터키 민영방송이 방영한 미국 만화 '심슨가족'의 한 에피소드 내용이 종교적인 이유로 문제가 되어 터키 방송규제 당국이 벌금을 부과했다. 문제가 됐던 장면중 악마가 신(神)에게 커피 심부름을 시키는 장면 (ⓒFairfax NZ 캡쳐)


터키 당국이 종교를 웃음 소재로 삼은 심슨만화가 신성모독을 저질렀다며 만화를 방영한 자국 방송국에 벌금을 부과해 논란이 일고 있다. 서방 언론은 물론이고 터키 국민들마저 당국의 이런 조치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터키 일간지 허리예트(Hurriyet)는 3일(현지시간) 현지 방송 규제 감독 기관인 '라디오·TV 방송위원회'(RTUK)가 민영 방송국 CNBC-e 채널에 종교를 모독하는 장면들이 담긴 '심슨가족' 에피소드를 방영했다는 이유로 약 5만2951리라(약 3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했다고 보도했다.



터키 당국은 이 만화가 신(神)을 조롱했을 뿐 아니라 일부 장면이 아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도록 부추겼다는 이유로 이와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RTUK의 심기를 거슬리게 한 만화 내용은 크게 두 장면이다.



할로윈 특집에 나온 에피소드에서 종교적으로 독실한 캐릭터로 묘사된 네드 플랜더스란 등장인물이 광란의 살인을 하도록 주문하는 신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 이를 직접 실행하는 내용이 문제가 됐다.

당국은 그 뒤에 나온 악마가 신에게 커피를 가져오라고 심부름 시키자 신이 (상관에게 대답하듯이) "네, 알겠습니다(Yes sir)"고 대답하는 장면도 지적했다. 이런 장면들이 마치 실제로는 신 대신 악마가 세상을 지배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는 이유에서다.

이외에도 '성서'(The Holy Bible)라고 적힌 책이 불에 태워지고 신과 악마가 사람의 몸처럼 그려진 점도 논란을 일으켰다.


만화가 코란과 알라신 등 이슬람교를 연상시킬 수 있는 표현을 구체적으로 나타내지는 않았지만 종교적으로 신성함을 중요시하는 터키에서 위와 같은 노골적인 장면들이 당국의 눈에 거슬렸던 것으로 보인다.

RTUK 측은 공식 성명에서 "악마 캐릭터에게 커피 심부름을 하는 신의 모습이 종교적 신념을 모독한 것으로 여겨지는 대목이다"라고 평가했다.

벌금을 부과 받은 CNBC-e방송은 벌금이 공식적으로 발표된 후에 입장을 내놓겠다며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만화 심슨가족은 터키의 젊은 중산층 사이에서 특히 인기를 끌고 있는 미국 만화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CNBC-e방송은 지난 10년 간 심슨을 꾸준히 방영해왔다.

터키는 표면상으로는 세속적인 국가이지만 전체 인구의 99%가 이슬람교도여서 사실상 이슬람국가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실제로 예술작품이나 방송에서 종교의 신성함에 위배될 소지가 있는 표현들은 논란의 소지가 있다.

터키 방송에서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논란이 처음은 아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는 지난 달 현지 인기 연속극을 대놓고 비난한 바 있다.

오스만제국의 최고 전성기를 이루었던 황제 술레이만 1세가 연속극에서 영토를 정복하는 장면보다 술을 마시고 여자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냈던 것으로 묘사돼 오스만제국 역사를 부정적으로 조명했다는 이유였다.

이런 논란이 가시기도 전에 미국 만화인 '심슨가족'에 대해서도 벌금을 부과하자 현지 언론과 국민들은 대부분 어이없고 과하다는 반응 일색이다.

허리예트 신문의 칼럼니스트 메흐메트 일마즈는 기고한 글에서 "터키라는 나라에서 만화에 나온 농담들이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고 벌금이 부과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앞으로 대본 작가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면서 "아마도 RTUK 방송 규제 전문가들을 만화 속에 추가 하겠죠"라고 비꼬았다.

터키 당국이 문제 삼은 심슨만화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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