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매도와 제이콥 리틀

머니투데이 박정태 경제칼럼니스트 2012.10.12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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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의 의미를 찾아서 <17>

공매도와 제이콥 리틀


주식시장이 좀처럼 약세를 벗어나지 못하면 늘 공매도를 향해 비난의 화살이 쏟아진다. 공매도가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다느니 공매도가 시장을 교란한다느니 하는 뉴스가 나오면 곧이어 공매도에 대한 규제 강화 소식이 들려온다.

그럴 때면 생각나는 인물이 있으니 제이콥 리틀이다. 1830년대부터 1850년대까지 월스트리트를 주름잡은 리틀은 공매도 전략을 창안한 인물이다.



요즘이야 증권회사에서 주식을 빌려 대주(貸株) 거래를 하면 되지만, 그때는 이런 제도가 없었으므로 리틀은 자신이 공매도할 주식을 사겠다는 사람에게 몇 달 뒤 주식을 인도하겠다는 이행증서를 써주었다. 그러고는 주식 인도 날짜가 되기 전에 주가가 떨어지면 헐값에 주식을 매수한 다음 매수자에게 넘겼다.

그는 고평가된 종목을 골라 공매도했고, 때로는 자신이 공매도한 종목에 대한 허위정보를 흘려 주가를 급락시키곤 했는데, 그래서 그의 적들은 리틀을 '파산의 예언자' '불신의 유포자'라고 불렀다.



리틀은 1837년 패닉 때 이 같은 공매도 거래로 거액을 벌었고, 평생 약세전략을 고수했다. 오죽했으면 '뉴욕타임스'가 그를 가리켜 "주식이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데만 승부를 거는 도박꾼"이라고 했겠는가. 그의 가장 유명한 공매도 거래는 1840년의 이리철도 주식 반란 사건이다.

당시 부실 철도주였던 이리철도가 이상급등하자 리틀은 공매도하기 시작했고, 매집세력은 그가 공매도한 사실을 알자 그를 굴복시킬 작정으로 계속 주가를 높였다. 하지만 리틀은 주식 인도일이 닥쳐도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지금 들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는 이때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수법을 선보였다. 이리철도가 몇 해 전 런던에서 발행한 전환사채가 있었는데, 처음 발행할 때는 주식 전환가격이 시세보다 훨씬 높아 아무도 전환권을 주목하지 않았다. 그런데 매집세력이 주가를 올리는 바람에 시세가 전환가격을 웃돌자 그가 사들여 주식으로 전환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그는 현란한 공매도 기법을 구사했고, 1845년 무렵에는 200만달러, 현재 가치로 5억달러 이상을 순전히 주식으로 벌어들였다. 그는 늘 증권거래소의 규정과 원칙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공부했고, 이를 철저히 활용했다. 사실 그가 고안한 독창적인 수법들은 전부 거래소 규정에 의해 만들어진 상황을 이용한 것이었다.

리틀은 평생 여덟 번이나 파산했고 곧바로 다시 일어섰지만 아홉 번째로 쓰러진 뒤에는 재기하지 못하고 최후를 맞았다.

그의 실패이유는 강세장에서도 약세 시각을 버리지 못한 것이었다. 맨 처음 거둔 놀라운 성공으로 인해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을 잃어버린 것이다. 말년의 리틀은 초라한 몰골로 객장에 죽치고 앉아 이 종목 저 종목 주식을 5주씩 주문하곤 했다. 한때 미국에서 손꼽히는 백만장자 가운데 한 명이었던 인물이 마지막으로 한 말은 "가난하게 죽는군!"이었다.

월스트리트에서 쓰는 용어로 주식을 집중 매수하는 것은 코너(corner), 공매도 세력을 압박하는 것은 스퀴즈(squeeze)라고 한다. 칼자루를 쥔 쪽은 아무래도 매수하는 쪽이라는 의미다.

주식은 발행물량이 한정돼 있으므로 매수세력이 몰아붙이면 공매도 세력은 당해낼 재간이 없다. 또한 공매도는 이론상 주가하락폭(수익)은 한정돼 있는 반면 상승폭(손실)은 무한대고, 언젠가 주식을 상환해야 하므로 시간이 제한돼 있다. 공매도는 그래서 칼날을 쥐고 휘두르는 것처럼 리스크가 클 수밖에 없다. 공매도를 프로들의 영역이라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1857년 당대의 공매도 투기자 제이콥 리틀을 굴복시킨 것은 월스트리트 역사상 가장 대담한 인물로 손꼽히는 젊은 강세 투기자 앤서니 모스였다. 하지만 그 역시 10년도 채 되지 않아 파산했고, 하숙집에서 담요 살 돈도 없이 지내다 폐렴으로 죽었다.

약세론자는 늘 약세 시각만 고집함으로써 파멸을 자초한다. 강세론자 역시 주가가 올라갈 것이라는 변치 않는 편견 때문에 무너진다. 중요한 것은 매수냐 공매도냐가 아니라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냉정한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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