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한국인들은 ‘테마’에 열광하는가?

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장·KBS 1라디오 <성공예감, 김방희입니다> 진행자 2012.10.15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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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청계광장

20여년 가까이 된 얘기다. 건설주가 테마주로 떠오를 당시 건설화학이라는 회사 주가마저 급등한 적이 있다. 건설이라는 말이 들어가긴 했지만, 이 회사는 엄연히 화학 업종에 속했다. 더 희한한 일도 벌어졌다. 정유주가 뛸 때는 동방유량이라는 회사도 덩달아 뛰었다. 이 회사가 다루는 기름은 원유가 아니라 식용유였음에도 불구하고. 주식시장에서 테마주가 극성을 부릴 때 우리가 얼마나 이성을 잃는가를 잘 보여주는 예가 아닐 수 없다.

증시에서 일시에 관심이 쏠리는 종목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현상은 사실 특별한 일은 아니다. 어느 나라 증시에서나 있는 일이고 주식시장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다만 우리의 경우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테마주에 대한 쏠림 현상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지난 1년여간 주식 투자자들의 관심을 독차지해온 대선 후보 관련주만 해도 그렇다. 이 종목들은 특정 대선 후보와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주가가 뛰었다. 그런데 이런 테마주의 전제라는 것은 비이성적이기 그지 없다. 만일 그 후보가 대선에서 이긴다고 해서 관련 회사가 잘 나간다면 그것이 정상적인 경제일까? 아마 정실 자본주의가 판치는 후진국 경제에서나 가능한 일일 것이다. 대선 후보와의 관련성이라는 것만 해도 그렇다. 나중에 문제가 되긴 했지만, 한 기업은 대표가 특정 대선후보와 같이 앉아 있는 사진 한 장이 공개돼 주가 급등락을 경험했다. 정치 테마주가 떠오르던 1년 전에 비해 관련 종목들 주가가 가라앉는 바람에 주로 개인 투자자들만 손해를 봤다, 그 손실 규모가 1조5000억원에 이른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이런 일들이 정상적인 주식시장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일까?

우리 증시에서 테마주 광풍이 끊이지 않는 데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많은 투자자들이 테마주 붐을 절호의 투자 기회로 보기 때문이다. 만일 자신이 피해자로 전락하지만 않는다면 개인 투자자들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사람과 가스, 진귀한 보물로 가득찬 방 안에서 불이 난다고 해보자. 잘 만 하면 보물을 챙기고 목숨도 부지할 수 있다. 상당수 개인 투자자들은 자신만은 영악하게도 최악의 순간이 닥치기 전에 발을 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들은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 할 근거도 잘 찾아낸다. 모든 종류의 금융 투기가 그렇듯, 그들은 위험은 과소평가하고 이익은 과대평가한다. 그들이 화재 발생 가능성 자체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가능성 때문에 반긴다.



하지만 이 게임은 본질적으로 많은 피해자를 양산할 수밖에 없다. 방 안의 사람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보물을 챙기려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피해를 입고 나면 세상 탓을 하는 것이 실제 상황과 다를 뿐이다. 피해자들은 타인의 탐욕이나 방 안 환경, 소방수들의 대응 시간에 화살을 돌릴 것이다. 물론 자기 과신이 없다 하더라도 그런 게임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부류가 있기는 하다. 우리 증시에서 이미 적잖게 손해를 본 투자자들이다. 이들은 무조건 더 큰, 그 결과 더 위험한 투기 게임에 참여해야만 한다.

◆언제나 위험은 과소평가하고 수익성은 과대평가하는 투자자들

최근 들어서는 고의적으로 이 테마주와 관련한 쏠림 현상을 조장하고 이득을 취하려는 세력들이 늘고 있다. 보물을 노리고 고의적으로 불을 지피는 부류들이다. 은밀하게 움직이는 작전 세력만이 아니다. 증권사마저도 공공연하게 테마를 발굴하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 그들은 전세계적으로 태양광 산업의 한계가 명백해지는 최근까지도 투자를 권유하기에 바빴다.

최근에는 세계 시장을 뒤흔든 가수 싸이 관련주라는 테마주도 떠오르고 있다. 그 면면을 살펴보니 ‘사돈의 팔촌과 아는 사이’라는 정도의 관련성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물론 고의적으로 테마주를 제기해서 이익을 취하려는 세력은 발본색원해야 한다. 하지만 테마주에 투자했다 손해 본다고 누굴 탓할 수 있겠는가? 투자자들 마음 속에 도사린 한탕주의를 탓하는 수밖에.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5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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