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속으로]열린 문과 닫힌 문

머니투데이 안홍철 전 인베스트코리아 커미셔너 2012.09.11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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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속으로]열린 문과 닫힌 문


해마다 봄이 오면 미국 동부 애틀란타에 있는 오거스타내셔널 골프장에서는 메이저 골프 대회 중 하나인 마스터스가 개나리, 진달래, 목련이 흐드러지게 핀 가운데 열려 관중의 눈을 황홀하게 한다. 그러나 오거스타는 여성에게는 회원의 문을 열지 않는 금녀의 땅이다. 그런 오거스타가 지난달 말 80년의 전통을 깨고 조지 부시의 대통령 2기 흑인 국무장관인 콘돌리자 라이스와 58세 동갑내기 금융인 달라 무어 두 여성에게 그 동안 잠가뒀던 회원의 문을 열었다.

5년전 성공한 기업인의 신화를 가지고 국민의 마음을 흔들었던 MB는 성공한 대통령이 되지 못한 채 이제 무대 뒤로 사라지게 되었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많은 사람이 많은 말을 하지만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으로 불리는 편향적 인사 때문으로 본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99% 국민의 삶은 팍팍해졌지만 1%도 안 되는 고소영 그룹은 행복했다는 말이 설득력을 가지고 거듭된 편향적 인사는 국민의 마음을 멀어지게 했다.



어차피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국민은 입시든, 취직이든, 고위직 취임이든 경쟁을 피할 수 없이 지나쳐야 할 문인 줄 알았지만 고소영 그룹에 속하는 사람들과 그 주변 인사들에게 문은 활짝 열렸으나 그 그룹에 속하지 못한 사람들에겐 문이 닫혔다는 게 다수 국민의 인식이다.

인간이 커다란 그룹을 지어 살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혈연적 관계가 없더라도 종교적·정치적·경제적·사회적 이해가 공통될 경우에 서로 연합할 필요성을 인식하여 클럽을 만든 것은 고대 희랍시대부터다. 그러나 산업혁명이 시작된 18세기에 들어 영국 상류층을 중심으로 오늘 날 형태의 클럽이 모습을 갖추다 차츰 중상류층으로 그 범위가 확대됐고 19세기 말에 들어서며 인종적·성별적·사회지위적 차별이 엷어지며 일반에 개방됐다가 마침내 오거스타의 꽁꽁 닫힌 문까지 열리게 됐다.



한국 클럽의 문제는 정치, 문학, 스포츠, 미술, 자동차 여행 등 공통적 이해에 따른 모임이 아니라 혈연, 지연, 학연에 바탕을 둔 그룹이 지배한다는 점으로 이러한 그룹은 자연히 폐쇄적이다.

얼마 전 방한한 파멜라 콕스 세계은행 백인 여성 부총재는 지금은 은퇴한 칼리스토 마다보 흑인 부총재가 과장일 때 직원이었고 그가 국장이 되자 그 밑에서 과장을, 그가 부총재가 되자 그 밑에서 국장을 지냈으며 인도인 국장은 파멜라 부총재가 과장일 때 직원이었으나 그녀가 국장이 되자 그녀 밑에서 과장을 지내다 이제 국장이 되었다. 이런 일은 세계은행이나 글로벌 기업에서 흔한 일이고 학연, 지연, 혈연이 아니라 능력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닫힌 문의 예가 아니다.

세계인에게 웃음을 선사하고 있는 싸이의 '강남 스타일' 등 K-팝이나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김기덕감독의 '피에타'의 성공은 닫힌 문에서 오지 않았고 활짝 열린 문에서 탄생했음에 주목해야 한다. 경쟁은 그것이 공정하고 문이 열려 있을 때는 패자로 하여금 다시 일어서게 하지만 혈연, 지연, 학연이란 끈으로 묶이지 않으면 열리지 않는 닫힌 문 앞에서는 좌절에서 헤어나지 못 하게 한다. 닫힌 문은 늘 새로운 사람들이 쉽게 들어오지 못하도록 진입의 장벽을 높이 쌓아두고 아는 사람만 입장을 시키며 독점의 단맛을 즐긴다.


뜻밖의 수상으로 인기를 얻은 영화 '피에타'와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조기상영 앞에 상영극장이 필요한 중소영화 관계사는 불의의 일격을 맞게 되었으니 재벌계열 메이저 3사가 투자에서 배급, 상영까지 수직계열화하고 있는 영화산업의 닫힌 문에 기인하는 좌절의 예다.

요즈음 유력 대선주자가 국민통합의 광폭행보를 해 국민의 지지를 얻고 있는 것도 그 이면에는 닫힌 문이 열린 문으로 바뀌려나 하는 국민의 기대에 기인한다. 패자부활전을 마련하는 것은 경쟁에 낙오된 사람들이 자살이란 막다른 길을 택하지 않도록 정부가 당연히 갖추어야 할 사후적 시스템이나 그보다 중요한 사전적 대책은 경쟁사회의 문이 닫혀 있지 않고 열려 있도록 시스템화하는 것이다.

아직 혈연, 학연, 지연의 틀을 못 벗어나고 있는 우리사회에서 졸업 때까지 3년간 수입도 없이 엄청난 학비를 지출하며 공부한 뒤 인터뷰로 법관이나 로펌 취업의 문을 통과해야 하는 로스쿨 제도나 졸업생 가운데 인터뷰로 외교관을 선발하는 외교아카데미 제도는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 앞에 신음하는 중소기업의 좌절과 더불어 전형적인 닫힌 문의 다른 예다. 열려라 참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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