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 직원들은 회사 내에서 서로 영어 이름을 부른다. 물론 김 의장도 포함해서. 지나가다 마주쳐도, 회의시간에도 “브라이언”이다. 그래야 하고 싶은 말 제대로 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카카오는 예외일 뿐. 우리나라 대부분 회사에서 사용되는 호칭법에는 권력관계가 녹아있다. 누가 위고, 누가 아래인지 확실히 보여준다. 아니 이런 권력관계를 보여주기 위해 그런 호칭법을 사용한다.
이런 호칭을 쓰면서 창의성을 얘기하는 것은 어쩌면 창의성을 높이기 위해 6시그마 운동을 벌이는 것과 다를 것 같지 않다. ‘창의적으로 일 안 해?’ ‘창의적인 아이디어 안낼 거야?’ ‘창조적 회사를 위해 돌격 앞으로!’ 이런 식은 기술제일주의 시대에는 통했을 것이다. 그러나 진짜 ‘창의’를 위해서는 안 된다.
이번에는 한국어 특유의 경어체·반말체. 누구는 깍듯하게 경어체 쓰고, 누구는 반말을 쓰는데, 두 사람 사이의 대화가 창조적 결과를 가져오기란 쉽지 않다. 차라리 몽땅 다 경어체를 쓰든지, 아니면 모조리 반말을 하면 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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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IT 대기업의 한국법인에서 근무하다 실리콘밸리 본사로 옮긴, 어떤 인사가 해준 말이 재미있다. “한국법인에서는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서 썼는데, 영어를 쓸 때가 기가 막히게 편할 때가 있어요. 윗사람들에게 좀 반항하거나 부탁을 할 게 있을 때, 혹은 내 아이디어를 설득할 때이죠. 이런 경우, 한국어로 말하거나 이메일을 쓰면 몇 바퀴는 돌리고 돌려야 합니다. 그런데 영어로 쓰면 훨씬 심플하게 전달할 수 있거든요.”
더 근본적으로는 한국 특유의 유교문화이다. ‘위아래에는 순서가 있고’(장유유서·長幼有序), ‘겸손과 사양이 제일’(겸양위상·謙讓爲上)이라는데, 어떻게 아랫사람이 함부로 반박하고, 내 주장 펼칠 수 있겠는가.
물론 미덕일 수도 있지만, 정도가 지나친 경우가 많다. 한국의 창의성을 갉아먹을 정도라는 것이다. 중국에서 몇 년 유학을 한 한국학생에게 들은 경험담. 중국인 선배와 술자리를 할 때 술잔을 받아 들고 몸을 옆으로 돌려 마셨더니 그 선배가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 오래된 관습을 아직 가지고 있냐’면서. 한국은 유교 종주국인 중국보다 유교문화가 우리 의식 곳곳에 더 배어있는 것 같다.
실리콘밸리의 작은 스타트업(초기기업)에서 일하다가, 실리콘밸리의 한국 대기업 현지법인으로 옮긴 한 인사는 “출근해서 첫날, 딱 1분만에 위아래가 훤히 들어오더라”고 말했다. “오가는 대화를 안 들어봐도, 몸이 숙여지는 각도와 주춤거리는 태도만 봐도, 누가 높고 낮은지 알겠더라”고 말이다.
실리콘밸리에서도 유독 한국회사가 이렇게 위아래가 엄격하고 깍듯하다. 미국회사에서도 전 직원들이 상하 없이 이름만 부를 때, 이곳에 근무하는 한국직원끼리 만나면, 없는 직책 지어내 호칭을 부를 때가 많다. 한국식으로 '부장님' '과장님'이다.
세상에는 발휘되지 못한 수많은 창의성이 있다. 억눌려있는 수많은 창의성이 있다. 특히 한국에는 더 그렇다. ‘(성)+직책+님’ 호칭과 이런 호칭에 뒤이은 깍듯한 경어체 때문에 말이다. 권력관계를 대놓고, 혹은 은연중에 강요하는 유교문화 때문에 말이다.
싸이를 보시라. 작년 말 인터뷰했던 싸이는 선생님 앞에서 말대꾸 또박또박 하는, 유교적인 정서와는 거리가 먼 학생이었다. “선생님이 ‘너 한마디만 더해봐’ 야단치면 ‘한.마.디.’라고 했다가 죽도록 맞았죠. 그런데 재미있잖아요. 제가 늘 듣던 말이 ‘산만하다. 잡생각 하지마’ 였어요. 이골이 날 정도로 혼나고 맞았죠. 그런데 그 재미가 제 음악의 모든 것이 된 거에요. “ (참조: '대한민국 대표선배가 '88만원 세대'에게 <10> 싱어송라이터 싸이')
유교스타일로는 죽었다 깨나도 ‘강남스타일’이 나오지는 못했을 것이다. ‘모방’까지는 권력과 지시를 통해 나올 수 있을지 몰라도, ‘창조’와 ‘아우라’까지 지시를 통해 나올 수는 없다. 자유에서만 나올 수 있다.
한국에는 억눌린 채 발휘되지 못하는 수많은 창의성이 있다. 그 창의성을 어떻게 끌어내 줄 것인가? 부장님, 과장님이 스스로 ‘님’이길 먼저 포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