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는 인생의 아침, 하루 다간듯 좌절하지 마라

머니투데이 이현수 기자, 최우영 기자 2011.09.29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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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표선배가 ’88만원 세대’에게 <4> 김난도 서울대 교수

김난도 교수가 인터뷰 내내 청년들에게 던진 메시지는 조급해 하지 말 것, 많은 경험을 쌓을 것이었다. 그는 “일찍 꽃을 피웠다고 가장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초봄에 꽃을 못 피웠다고 청년들이 안달할 필요가 없다. 당장은 힘들어도 얼마든지 화려한 주연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이기범 기자 leekb@김난도 교수가 인터뷰 내내 청년들에게 던진 메시지는 조급해 하지 말 것, 많은 경험을 쌓을 것이었다. 그는 “일찍 꽃을 피웠다고 가장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초봄에 꽃을 못 피웠다고 청년들이 안달할 필요가 없다. 당장은 힘들어도 얼마든지 화려한 주연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대담=유병률 기획취재부장

지난 7일 기자가 찾은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48) 연구실 책상 위에는 1백통은 되는 듯한 편지가 수북이 쌓여있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읽은 독자들로부터 온 편지이다. 이메일을 일일이 출력해놓은 종이도 그 옆에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이메일은 대학생과 학부모들로부터, 편지는 군대와 교도소에서 주로 온 것이었다.

김 교수는 교도소에서 온 편지를 하나 집어 들어 기자에게 보여주었다. 편지를 쓴 재소자는 “20대에 큰 죄를 지어 10여년째 수감중”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나가면(출소하면) 나이가 마흔인데 인생 끝났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김 교수의) 책을 읽고, 나가도 낮 12시밖에 안 된다는 것을, 아직도 내 인생이 반이나 남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준비할 것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교도소에서)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교수님 정말 감사합니다.”



김 교수는 책에서 인생 80년을 24시간에 비유하면서 서른 살은 오전 9시, 마흔 살은 낮 12시, 쉰 살은 오후 3시에 불과하다고 적었다. 이 재소자가 출소할 마흔은 아직 점심식사도 하지 않은 시간인 셈이다. “포기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시간이 남은 거죠. 인생에 ‘너무 늦은 시간’이라고는 없어요.” 하물며 마흔 살이 다 되가는 재소자도 새로 시작한다는데, 이제 갓 아침시간에 불과한 20대들이 하루가 다 간 것처럼 절망하고 있지 마라는 얘기였다.

“유럽여행보다 커피믹스에서 진짜 경험이 나온다”
김 교수도 젊은 시절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대학(서울대 법대) 동기들은 한번 만에 붙는 행정고시를 3번씩이나 낙방했을 때이다. “영혼을 팔아서라도 고시에 붙고 싶었죠. 그러나 계속 떨어지고 좌절하면서 다음해에는 합격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그렇다고 포기하겠다는 용기도 갖지 못한 채 어둡고 긴 시간을 그냥 보냈다”고 말했다.



그때 즈음 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니가 1년 사이 잇따라 세상을 떠났다. “‘내 인생이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고, 죽을까도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고개 들어 주위를 보니 또 다른 인생이 있는 거에요. 아무리 아프고 힘들어도 조급해 하면 안됩니다. 살기 힘들수록 집에서 뒹굴게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지는 작은 기회마다 경험하고 배워야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구청 청년인턴으로 들어간 대학생 얘기를 들려주었다. “아무 일도 안하고 게임만 했다는 거에요. 물론 학생들 뽑아서 복사나 시키는 제도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그 학생도 문제라고 봐요. 아무것도 안 시킨다고 게임만 하고 오는 게 문제라는 거죠. 가서 어떻게 돌아가는지, 결제는 누가 하는지, 어떤 서류가 구청에서 승낙이 나는지 열심히 쫓아다녀야 합니다. 아침마다 커피믹스 타서 과장님 갖다 드리면서 ‘좋은 하루 보내세요’하고 친해지면, 적어도 구청이 어떤 조직인지는 알 것 아닙니까. 나중에 시험 봐서 공무원이 돼야겠다든지, 음식점 하는 부모 대신 구청에 위생신고를 할 때 어떻게 하면 될지 뭔가 깨달음이 있을 것 아닙니까. 경험을 많이 쌓으라는 것은 돈 많은 집 자식들처럼 해외여행 가고, 돈 싸 들고 어학연수 가라는 게 아닙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작은 기회에서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김 교수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서울대에서 학생들의 아픔을 가장 잘 들어주고 어루만져 준다는 ‘란도샘’도 이 대목에서는 다소 흥분하며 20대를 타일렀다. “스피치 강사로 유명한 김미경씨가 한번은 자기가 부잣집에서 태어났으면 이렇게 성공하진 못했을 거라고, 자기는 지지리 가난한 집에 태어난 게 너무 고맙다고 하시는 거에요. 힘들수록 더더욱 내 인생의 주연이 돼야 하는데, 원망만 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는 겁니다.” 그의 말처럼 지금 청춘들은 곧잘 잊어버리고 사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나라는 사실을. 지금 이 시간의 경험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새끼 독수리는 오리가 되려고 하지 마라”
하지만 등록금 대기도 힘든데, 스펙 쌓기도 바쁜데. 취업 걱정 때문에 잠도 못 이루는데 ‘조급해 하지 마라’고, ‘많은 경험을 쌓아라’고 하는 것은 너무 한가한 얘기가 아닐까. 그러자 김 교수는 오리가 되고 싶은 새끼 독수리 비유를 들었다.

“오리는 물에서 헤엄칠 수도 있고, 땅에서 달릴 수도 있고, 하늘을 날 수도 있죠. 헤엄치고, 달리고, 거기에다 날기까지 합니다. 최고의 스펙입니다. 하지만 오리는 돌고래처럼 헤엄칠 수가 없고, 독수리처럼 날 수도, 말처럼 달릴 수도 없지요. 많은 청년들이 두루뭉술하게 어디 하나 빠지는 게 없는 인간이 되려고 합니다. 나중에 독수리가 될지도 모를 청년들이 오리가 되려는 연습만 하고 있습니다. 적당히 헤엄치고, 적당히 달리고, 적당히 날아다니는 연습 말입니다. 사회도 그걸 요구하고 있죠. 기업들이 서류 스펙만 보고 있으니까 다들 오리가 되는 연습만 하고 있는 거에요.”

김 교수의 말처럼 사회가 그렇게 요구하고 있으니 사회가 바뀌어야지, 청년들이 바꿀 수는 없는 것이 아닐까. “아니죠. 청년들 역시 ‘나는 오리가 아니라 새끼 독수리이다’는 확고한 자기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청년들이 조급하니깐, 빨리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깐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한쪽으로 몰려다니는 겁니다. 잘 날지 못하는 새끼독수리는 지금 당장은 오리보다 못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오리 따위는 꿈도 꿀 수 없는 비상을 할 수 있습니다. 자신감을 가져야 합니다. 주위와 비교하면서 스스로를 비하하고, 훨씬 크게 될 수 있는 사람이 초조해 하면서 쉽게 좌절하고,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김 교수는 서울대 법대에서도 잘 나간다는 82학번이다.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 원희룡 나경원 조해진 한나라당 의원, 한승 대법원 선임재판연구관, 김상헌 NHN 대표 등이 동기이다. 많은 동기들이 사시에 합격해 판검사하고, 유학을 가는 동안 그는 행시에 3번이나 떨어졌다. 그가 만일 오리처럼 살고자 했다면 한국을 대표하는 소비 트렌드 학자가 될 수 있었을까,. 아니 대한민국 청년들을 위로하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과연 쓸 수나 있었을까.

“수술도 중요하지만 당장의 위로가 되는 진통제도 필요하다”
김 교수에게 보다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봤다. ‘아프니까 청춘’인데 청춘이 왜 아픈지, 청춘들이 안고 있는 상처의 실체는 무엇인지. 김 교수는 격화된 경쟁과 세대 갈등을 꼽았다.

“우리 세대만 해도 군사독재에 맞서면서 만들어진 동료애가 있었습니다. 가수들이 나와서 노래를 불러도 옛날에는 무대 마지막에는 다 모여서 같이 불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무조건 한 명을 떨어뜨려야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살아 남아야 합니다. 생존경쟁, 이것이 바로 청년들이 아픈 이유입니다. 또 하나는 사회적 분배가 기성세대 위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기성세대는 2008년 금융위기 때 신입 임금 깎아서 구조조정을 피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아직 세상에 나오지도 못한 태아에게 무슨 죄가 있습니까. 이건 사회적인 낙태 행위입니다. 이 두 가지의 본질은 결국 하나입니다. 사회가 기성세대 위주로 재편돼 있는 상황에서, 거기에서라도 살아 남으려고 청년들끼리 발버둥을 쳐야 한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이 상처는 어떻게 치료할 수 있을까. “청년들에겐 방법이 없습니다. 청년들에게 ‘짱돌’을 들라는 건 올바른 해법이 아닙니다. 좌절만 줄 뿐이죠. 기득권의 철옹성을 쌓고 있는 기성세대가 청년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는 답안을 만들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전 빌 게이츠 같은 사람 참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빌 게이츠가 마이크로소프트를 독점기업으로 만들기 위해 수많은 회사의 특허를 침해하고 사들이는 등의 반경쟁적인 정책을 폈지 않습니까. 오히려 돈을 많이 못 벌어서 기부를 많이 못하더라도, 좋은 소프트웨어 만드는 회사들과 공생 발전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청년들이 창업해서 될만하면 싹을 잘라버리고, 한번 실패하면 재기의 기회도 주지않는 구조를 바꾸어야 합니다. 청년들에게 소프트웨어 하나로 큰 기업을 만들 수가 있다는 믿음을 줘야 합니다.”

하지만 김 교수는 기성세대가 답안을 만들기 전에 먼저 해야 할 것이 있다고 강조했다. 바로 그들의 아픔을 들어주는 것. “청년문제는 결국 수술을 해야 고칠 수 있는 병입니다. 하지만 완치까지 오래 걸릴 수 있고, 어쩌면 완치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진통제가 필요합니다. 기성세대가 ‘많이 아프지’라면서 따뜻하게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얼마 전 김 교수의 친한 친구이기도 한 조국 교수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기술대학원장 열풍을 설명하면서 “(안 교수 열풍은)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김난도 교수의 책이 성공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가르치려는 태도가 아닌 들어주려는 태도로 청년들에게 다가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김 교수의 이런 어법은 이날 인터뷰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청년들에게 어려운 말로 해법을 제시하는 대신 그는 다정한 선배가 바로 옆에 앉아 얘기하듯 조언했다. “너희들은 새끼독수리야. 오리가 되려고 조급해하지마. 이제 아침시간에 불과한데 뭐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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