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할 타자와 2할5푼 타자의 차이점을 아시나요?

머니투데이 이현수 기자, 최우영 기자 2011.09.14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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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표선배가 ‘88만원 세대’에게 <2> 양준혁 야구해설가

양준혁은 88만원 세대와 88억원 세대의 차이는 ‘한 끗’이라고 말했다. “하나마나한 짓이라 지레 포기하지 않고 1% 가능성이라도 있으면 끝까지 달리는 것, 그런 자세의 차이가 88억원 세대를 만든다”는 것이었다. 양준혁 역시 땅볼 치고 1루까지 가장 열심히 달린 선수였다. / 사진=홍봉진 기자 hongga@양준혁은 88만원 세대와 88억원 세대의 차이는 ‘한 끗’이라고 말했다. “하나마나한 짓이라 지레 포기하지 않고 1% 가능성이라도 있으면 끝까지 달리는 것, 그런 자세의 차이가 88억원 세대를 만든다”는 것이었다. 양준혁 역시 땅볼 치고 1루까지 가장 열심히 달린 선수였다. / 사진=홍봉진 기자 hongga@


"제 20대요? 어려움과 괴로움의 연속이었죠."
양신(梁神) 양준혁(42)도 처음부터 신은 아니었다. 고등학교(대구상고)를 졸업하고 삼성에 입단하려 했으나 "대학 가서 더 배우고 오라"는 핀잔만 들었다. 대학(영남대)을 졸업하고 다시 삼성을 찾았지만 "자리가 없다"고 해서 상무로 발길을 돌렸다. "야구만 생각하며 눈물 젖은 빵을 먹어온 지 그때가 딱 15년째였는데, 이대로 무너지는가 했죠. 단무지 팔고 파출부 나가던 엄마 얼굴이 어른거리더라구요." 양준혁의 20대는 지금 20대와 많이 닮은 듯했다. 수십 수백 번 원서를 써도 취업하기 힘들어 수없이 '이대로 무너지는가'를 되뇌어야 하는 지금 20대와 말이다.

양준혁은 이로부터 2년 뒤 꿈에 그리던 삼성에 입단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는 신의 경지에 오르기 시작했다. "난 야구만 했다. 지식은 없다. 하지만 야구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건 다 배웠다"는 양준혁을 지난달 초 서울 서초구 양재동 그가 이사장으로 있는 야구재단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가 야구를 통해 배웠다는 인생타법이 눈물 젖은 원서를 쓰고 있는 88만원 세대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였다.



"내야안타 아니었으면 나도 2할9푼대 타자"
인터뷰 취지를 설명하자 양준혁은 대뜸 "(88만원 세대와 88억원 세대는) 한 끗 차이"라고 말했다. 한 끗 차이라니? 지금 청년들이 겪고 있는 고통이 그렇게 아무것도 아니란 말인가. "1%의 가능성을 믿고 죽기 살기로 뛰다 보면 기회가 생긴다는 얘기입니다." 그러고 보니 양준혁은 야구 기자들 사이에서 땅볼치고 1루까지 가장 열심히 뛰는 선수로 유명했다.

"제 통산타율이 3할1푼6리인데 내야안타가 159개입니다. 아웃 될 것 같아도 1루까지 죽고 살기로 뛰는 거죠. 열심히 뛰면 상대 내야수도 다급해지기 때문에 에러가 나옵니다. 포수가 송구실책을 하면서 결승타가 되기도 합니다. 그게 없었으면 저도 2할9푼 타자에 불과했을 겁니다. 자세는 한 끗 차이지만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인 셈이죠. 단 1%의 가능성이라도 믿고 달려야 합니다."



99%의 불가능만 보는 사람과 1%의 가능성에 주목하는 사람의 차이는 그 결과가 엄청나다는 설명이다. 그는 "결과가 어차피 별거 아닐 거라 생각하고 대충 넘어가면 기회를 만들 수 없다"며 "하나마나 한 짓이라 치부하는 것이 가장 나쁜 자세"라고 힘주어 말했다. 자세의 차이가 삶의 차이를 만든다는 그의 메시지는 기자에게도 묵직하게 다가왔다.

3할 타자와 2할5푼 타자의 차이점을 아시나요?
"우보천리의 진리는 야구나 인생이나 매 한가지"
한 끗 차이, 말이 쉽지 그 한 끗을 만들려면 엄청난 고통이 따를 것 같은데 양준혁 역시 그랬다.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는 말 있잖아요. 뜻을 이루기 위해서 일부러 불편한 자리에 누워 쓸개를 맛본다는 고사성어 말입니다. 삼성 입단을 거부당하고 상무에 갔을 때 제 심정이 그랬습니다. 그 때 결심한 게 몸부터 불리자는 것이었죠. 당시 상당히 마른 편이었는데, 야구선수로서 평생 핸디캡이 될 거라 생각했죠. 그런데 웨이트 트레이닝이란 거, 이게 장난이 아닙니다. 근육이 바로 붙는 게 아니거든요. 처음에는 파열이 되고 찢어집니다. 그래도 계속해야 근육이 박힙니다. 중단하면 원점이죠. 뭔가 얻으려면 고통을 외면하지 말고 받아들이면서 뚜벅뚜벅 나아가야 합니다."

손목 힘을 기르기 위해 20대 내내 손목 스냅을 이용해 파리를 잡던 양준혁이었다. 그의 얘기를 듣고 있으니 소처럼 우직하게 걷다 보면 천리를 간다는 우보천리(牛步千里)의 진리는 야구나 인생이나 매 한가지인 듯 했다.


"기뻐하는 건 딱 30분이면 족합니다"
하지만 양준혁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천리를 다 왔다고 멈춰서는 안 된다는 것.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친구들일수록 보상심리가 있어서 목표를 달성하면 딱 멈춰버립니다. 그것보다 더 큰 산이 있는데 말이죠. 그런데 멈추면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승엽이처럼 계속 더 높은 목표를 세워가면서 해나가야 되는데 말이죠. 저도 사람인데 왜 안 그랬겠습니까. 그래도 멈추고 싶을 때마다 마음으로 트레이닝 했습니다. '이러다간 곧 떨어진다'고 말이죠."

양준혁은 2000안타가 최고 목표였는데 그걸 치고 나서 '딱 한잔'만 먹고 다음날 안타 하나 더 때리고 싶어서 연습을 했다고 한다. 2002년 첫 우승을 했을 때도 하루 딱 놀고 다시 운동에 들어갔다고 했다. "기뻐하는 건 딱 30분, 1시간이면 떡을 칩니다. 더 넘어가면 안됩니다. 거기서 끝내야 합니다. 젖어버리면 끝입니다. 환희는 빨리 잊고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하는 거죠." 참 야박한 얘기이지만 구구절절 옳은 말이었다. 그래서 신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을까.

"학교에서 배우는 것만으로는 2할5푼대 타자"
하지만 신에게도 위기가 있었다. 2002년 팀은 우승했지만 자신은 9년간 지켜오던 3할 타율이 무너졌다. 양준혁은 자신의 인생타법에서 1%가 부족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변하지 않으면 도태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기장면을 비디오와 사진으로 계속 돌려봤죠. 어느날 답이 나오더군요. 신인시절 한창 잘 나갈 때 타격하고 나서 만세를 하는 듯한 사진을 발견했을 때입니다. '바로 이거다' 싶었죠. 한 팔을 투수쪽으로 던지며 체중을 실어 치는 거죠. 왜 검도에서도 끊어 친 뒤 재빨리 빠지지 않습니까." 바로 만세타법이었다.

그러나 당시 그의 나이는 이미 서른 넷. 야구선수치고는 전성기가 지난 나이였다. 섣불리 변화했다간 오히려 실패만 재촉할 수 있는 나이였다. 하지만 겨울 내내 이를 악물고 갈고 닦은 만세타법은 다시 그의 타율을 끌어올렸다. '똥폼'이라는 핀잔도 많았지만, 그가 불혹의 나이까지 현역으로 뛸 수 있도록 한 원동력이 됐다.

청년들에게 그의 만세타법은 어떤 의미일까. "대학교 강연을 다니며 청년들을 만나보면 변화를 두려워하는 것 같아요. 남과 다르게 새로운 시도를 했다가는 본전도 못 건질 수 있다는 심리 말입니다. 현재를 지키는 건 실은 본전이 아니고 퇴보인데도 말이죠. 청년들이 다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기 색깔이 없는 거에요. 뭔가 색깔이 있어야 수많은 무리에서도 쓰임새가 있는 겁니다. 교수들이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만으로는 야구로 치면 잘해야 2할5푼 타자밖에 안 되잖아요."

2할5푼대 청년이 3할대가 될 수 있는 비결은 바로 '자기만의 색깔'이라는 조언이다. 똑같은 스펙으로 똑같이 취업에 목매다는 것이 정답이 될 수는 없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자기만의 색깔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양준혁은 "스스로 의사가 돼서 처방전을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의 장점은 왼손타자에다 장타력이 있다는 것이죠. 이를 바탕으로 나름의 타법을 개발했습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기 보다 내 자신을 연구한 것이죠. 누군가에게 기대서는 안됩니다. '내 자신이 스승이다'고 생각하고 나에게 묻고 해답을 내려야 합니다. 나 스스로가 병원 의사가 돼서 처방전을 내려야 합니다." 스스로 환자가 되고, 의사도 될 수 있어야 자기만의 색깔도 처방해낼 수 있다는, 바로 자기 객관화 훈련을 그는 역설했다.

3할 타자와 2할5푼 타자의 차이점을 아시나요?
"가장 자랑스러운 기록은 최다사사구 1280개"
그래도 이승엽에 가려서 만년 2인자로 지내야 했던 게 기분 좋지는 않았을 터. '질투심 같은 건 없었냐'고 묻자 "밥상도 네 다리가 있어야 선다"는 답이 돌아왔다. "야구가 왜 좋은 운동인지 아십니까. 팀워크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번트치고 희생도 해야 합니다. 팀플레이가 안되면 아무리 능력 뛰어나도 소용없습니다. 야구가 학교에서 가르칠 수 없는 것을 가르칠 수 있다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는 "요즘 청년들이 자기밖에 너무 모른다"고 에둘러 표현했지만, 청년들의 공동체의식 결핍을 자신과 이승엽과의 관계에 빗대어 지적했다.

"승엽이가 크기 전엔 제가 최고연봉인 1억5천만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승엽이가 아시아 기록을 깨면서 3억원을 받았죠. 그러니깐 저도 2억5천만원으로 오르더군요. 승엽이가 더 받을수록 저도 더 받게 되는 겁니다. 그게 팀플레이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기록이 뭔지 아냐'고 기자에게 반문했다. 그에게 '최다'자가 붙은 기록만 최다경기(2135경기), 최다홈런(351개), 최다안타(2318개), 최다타점(1389개), 최다득점(1299개), 최다타수(7332타수), 최다루타(3879루타), 최다사사구(1280개) 등 8개. 그는 이런 최고 프로필중에서도 가장 나중에 언급되는 최다 사사구(四死球)가 가장 자랑스럽다고 했다. 볼 넷으로 나가고, 또 투수가 던진 볼에 맞아서 나간 횟수가 가장 많았던 것. "뒤의 타자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야구를 했습니다. 특히 승엽이에게 말이죠. 그래서 만연 2인자라는 소리를 들어왔는지 모르죠. 그런데 막상 은퇴경기를 하고 나서보니 제가 조연이 아니라 주연이 돼있더라고요."

"꼭 취업만이 길은 아니지 않습니까"
야구재단 이사장에, 경기 해설자, 방송출연, 프랜차이즈 음식점 창업 등으로 눈코 뜰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대학교 강연을 나가고 있는 양준혁에게 청년들에 위한 한마디를 부탁했다. "제가 은퇴하고 방송출연을 하니깐, '강호동 따라 하는 거냐''는 핀잔도 많았죠. 뭐라도 해도 상관없습니다. 야구할 때 그랬던 것처럼 늘 새롭게 만들어 가려고 합니다. 그래야 더 길게 갈 수 있습니다. 지금 청년들은 다들 비슷비슷한 스펙입니다. 그런데 꼭 취업만이 길은 아니지 않습니까. 새로운 길을 개척해서 깊이 파고 들어가서 새로운 아이디어 내고 새롭게 창업하는 것도 길입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그리고 1%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믿고 한번 해보세요."

양준혁은 확실히 신의 경지였다. 잘 나가고 잘 해서가 아니라, 끊임없이 스스로를 객관화하며 그 한 끗의 차이를 지금도 만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왜 88만원 세대와 88억원 세대가 한 끗 차이에 불과할 뿐이라고 했는지 이해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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