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성폭행' 고종석 PC뒤졌더니, '토렌트'가…

머니투데이 최우영 기자 2012.09.07 08:36
글자크기

[이슈추적]또또또…대한민국 '이웃사이더' 쇼크

# 지난달 31일 전남 나주에서 초등학생을 납치한 뒤 성폭행한 고종석(23)은 아동이 출연하는 음란물(로리물) 마니아였다. 그는 경찰에서 "어린 아이가 나오는 음란물을 자주 봤으며 볼 때마다 성충동을 느끼다 실행에 옮겼다"고 진술했다. 그는 경찰청 프로파일러와의 면담에서 "그 아이가 운이 없어 당한 것"이라며 자신을 합리화했다.

# 지난달 20일 서울 광진구에서 유치원생 자녀를 배웅하고 돌아온 주부를 성폭행하려다 살해한 서진환(42)은 범행에 나서기 직전 2시간 40분 동안 자신의 방에서 음란물을 감상했다. 그의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조사한 경찰은 "방대한 양의 음란물이 서진환의 방에서 발견돼 놀랐다"며 "서진환은 경찰에 잡혀와서도 여경에게 '교도소에서 밤마다 네 얼굴이 떠오를 것'이라며 성희롱했다"고 전했다.



성폭행범의 배후에는 음란물이 있다. 경찰은 음란물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검거에 주력하고 있지만 '근절'이 쉽지 않다. 경찰 관계자들은 쫒고 쫒기는 만화영화 '톰과제리'의 게임이 연상된다고 토로한다.

음란물은 왜 근절되기 힘든 것일까. 잡으려는 경찰과 피하려는 유포자 간의 '창과 방패'의 대결 속에 음란물 유포 방식도 진화하기 때문에 힘든 싸움이 이어지고 있다.



◇야동 주 출처 웹사이트→P2P→토렌트
음란물의 형태와 공급처가 바뀌면서 경찰의 단속도 지속됐지만 단속을 피한 음란물 배포 경로도 진화중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 활개 치던 주요 음란물 포털사이트는 경찰에 단속됐다. 하지만 음란물사이트 운영자는 단속 당할 때마다 주소를 옮겨가며 새로 등장한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킹(SNS)의 힘을 빌어 새 주소를 공지하는 방식을 택했다. 개인과 개인이 웹 서버를 통하지 않고 직접 연결돼 파일을 공유하는 방식인 P2P 서비스도 모습을 드러냈다.

난립하는 P2P업체들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일부 P2P 서비스가 유료화를 시도해 프리미엄 회원에게만 빠른 전송속도를 제공하자 그 틈을 파고든 새로운 방식은 '토렌트'다. 토렌트는 수많은 이용자들의 컴퓨터에 동일한 음란물이 존재할 경우 파일을 부분적으로 여러명에게 전송 받을 수 있다. 특정 파일의 코드는 '마그넷 주소'라 불리며 이 주소를 확보하면 원하는 음란물에 접근한다.


토렌트는 원래 빠른 속도로 원하는 파일을 확보하기 위해 만들어진 방식이다. 하지만 현재 토렌트를 지배하는 콘텐츠는 음란물이다.

6일 기준으로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마그넷 주소 공유사이트 bits****.com의 Top100 목록 중 1위는 한국어 파일명 '원정녀 17,19,20'이라는 음란물이다.

토렌트를 통해 유통되는 음란물의 규모는 파악되지 않을 만큼 '무한대'다. 6일 한 토렌트 사이트에서 검색어 '야동'으로 추출되는 마그넷 주소는 4200여개에 달했다.

가학 성향 음란물도 상당수다. 키워드 '강간'으로 검색되는 음란물 마그넷은 2400여개, '성폭행' 300여개, '강제' 1200여개 등이다. 미성년 음란물도 검색어 '초딩' 270여개, '중딩' 1400여개, '고딩' 3000여개였다.

◇쏟아지는 음란물··· 대책은 없나
토렌트는 별도의 성인인증 및 결제절차 없이 누구나 손쉽게 음란물을 접할 수 있는 통로다. 하지만 경찰 등 감시당국의 단속은 난항을 겪고 있다.

유해사이트를 관리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원천적으로 사이트 자체를 폐쇄시킬 수 없다. 국내에서 인터넷 회선을 제공하는 9개 전산망 사업자에게 요청해 국내 접속을 차단할 뿐이다.

방통위 관계자는 "2~3주 동안 증거를 채집한 뒤 심사회의를 거쳐 사이트 자체가 불법성 목적으로 만들어진 경우에는 접속을 차단하지만 일부 불법 음란물이 올라와있는 경우라면 파일을 삭제하라는 시정 요구만 할 뿐"이라며 "토렌트는 개인들이 정상적으로 파일을 주고 받는 공간의 성격이 강해 음란물 마그넷 주소가 공유되는 사이트 자체를 차단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음란물은 제작만이 아닌 배포하는 행위도 모두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아직 그같은 인식이 부족해 너도나도 음란물을 공유하고 있다"면서 "P2P로 음란물을 전송하는 것뿐만 아니라 음란물 마그넷 주소를 다른 이에게 알려주는 행위 역시 처벌의 대상이 된다"고 강조했다.

◇범람하는 야동, 왜곡된 성관념 심어 범행 부추긴다
전문가들은 가학적 성향에 기초해 제작된 음란물이 남성들에게 잘못된 성관념을 심어줘 성폭력을 부추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권해수 조선대 심리학과 교수는 "음란물 속 남자 주인공이 여성을 강제로 겁탈해도 여배우는 나중에 결국 만족한다는 식의 연기를 보여주면 그게 현실에서도 똑같을 것이라고 착각하는 경우 성범죄가 일어난다"면서 "범행이 끝난 뒤 피해여성이 고통스러워하더라도 성범죄자들은 포르노에서 자신이 배운 게 옳다고 생각해 '겉으로만 아픈 척하고 속으로는 좋아하겠지'라고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권 교수는 "음란물을 통해 잘못된 성의식을 갖게 된 성폭력 범죄자들은 대상이 아동이든 일반 여성이든 결국 나중에는 자신을 더 원할 것이라고 착각한다"면서 "그래서 실제로 1차 범행 이후에 자기만의 생각에 빠져 피해여성을 다시 찾아가는 경우도 발생한다"고 덧붙였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현실에서 힘든 상황을 겪는 사람일수록 가상세계와의 구분을 잘 짓지 못한다"면서 "그들에게 인터넷 음란물은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고 도피할 수 있는 안식처이자 남자 주인공이 상대여성에게 힘을 발휘하는 걸 보고 대리만족을 느끼는 장소"라고 진단했다.

이 교수가 지적하는 음란물의 가장 큰 문제는 중독성. 마약 등과 같이 음란물도 내성이 생기면서 점점 자극적인 대상을 찾게 된다는 것. 이 교수는 "성폭력은 한번 선을 넘기 어려울 뿐이지 그 다음부터는 둑이 무너져 물살이 거세지듯이 수월하게 반복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