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과 함께]박지성, 베르바의 떠날 때 그리고...

머니투데이 김삼우 기자 2012.09.08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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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스포츠의 세계는 비정하다. 쓸모가 없다고 여겨지면, 가차없이 자르거나 팔아버린다. 과거의 활약과 명성, 끈끈했던 관계는 큰 의미가 없다. 현재, 그리고 앞으로 팀에 얼마나 유용할 지 볼 뿐이다. 물론 스스로 결별을 선택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시기를 제대로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그 때를 알고 훌훌 털어버리는 이도 있지만 한가닥 미련을 떨치지 못하다 쓴 맛을 보는 경우가 많다.

박지성과 디미타르 베르바토프. 지난 여름 이적 시장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 유니폼을 벗은 베테랑들이다. 2005년 맨유에 입단한 박지성은 퀸즈파크레인저스(이하 QPR)로 둥지를 옮겼고, 2008년 맨유로 이적한 베르바토프는 풀럼으로 갔다. 둘 다 31살이다. 유럽축구계에서 공격수나 미드필더는 30세가 넘으면 가치가 뚝 떨어진다. 아스널의 아르센 웽거 감독은 티에리 앙리도 29세에 팔았다. 박지성과 베르바토프 또한 맨유에서 입지가 줄어드는 추세였다. 둘 다 맨유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싶어 했으나 관계를 정리할 시기가 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를 인식하고 대처하는 방법은 달랐다. 이적 시장 종료 직전 풀럼행을 결정한 베르바토프는 지난 4일 맨유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을 향해 "존경심을 잃어버렸다"며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다른 이들에게는 굿바이를 했지만 퍼거슨 감독에게는 할 수 없었다"고도 했다. 그리고 "감독이 나를 이렇게 대접할 수는 없었다"며 "1년 전에 맨유를 떠났어야 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해할 수도 있겠다. 맨유가 당시 구단 사상 최고 이적료인 3075만 파운드(약620억원)를 지불하고 영입했던 세계적인 스트라이커로서 '제 2의 에릭 칸토나'로 기대를 모았던 그였다.(프랑스 출신의 에릭 칸토나는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가 '영국인이 사랑했던 유일한 프랑스'인이라는 찬사를 보냈던 맨유의 레전드다) 맨유에서 108경기에 출전, 48골을 터뜨려 현상적으로는 성적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퍼거슨 감독을 제대로 몰랐다. '승리'를 위해서라면, 이름값 몸값 등을 일일이 따지지 않는 '무서운' 퍼거슨 감독을 말이다. 무엇보다 그는 최근 퍼거슨 감독이 구상하는 맨유의 진화 프로젝트와 맞지 않았다. 스피드와 역습을 더욱 강조하는. 퍼거슨 감독이 2011년 바르셀로나와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 엔트리에서 베르바토프를 아예 뺀 게 상징적이었다.(당시 박지성은 풀타임 출전, 맨유 1-3패) 퍼거슨 감독의 머리 속에 그는 없다는 의미였다. 베르바토프가 떠날 때는 그때였다.

이름값에선 밀리지만 박지성의 맨유에서의 활약도는 베르바토프에 못지 않았다. 7시즌 동안 205경기에 출전, 27골 27도움을 기록하면서 프리미어리그 우승 4회, 리그컵 3회, 챔피언스리그 1회 정상에 오르는 기쁨을 팀과 함께 누렸다. 특히 UEFA 챔피언스리그를 비롯, 아스널 첼시 등 강호들과의 빅매치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비록 고정적인 '베스트 11'은 아니었으나 '소리없는 영웅(unsung hero)'으로 퍼거슨 감독의 신임을 받았다. 그러나 지난 시즌 후반부터 출전 기회가 급격하게 줄었다. 나니, 발렌시아, 애슐리 영 등과의 주전 경쟁에서 밀린 탓이었다.

박지성은 직감했다. 그리고 지난 7월, 일찌감치 맨유 생활을 정리했다. 구단 홈페이지에는 "맨유에서 보낸 시절을 평생 가슴에 간직할 것"이라며 "위대한 팀의 일원이 된 것, 그렇게 많이 이긴 것, 특별한 동료 선수들, 가장 위대한 감독과 함께 경기한 것은 엄청난 특권이었다"는 내용의 작별 편지를 남겼다.


아직은 올드 트래퍼드가 아닌 로프터스 로드 스타디움에서 QPR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에 나서는 박지성이 낯설다. QPR에서 그의 존재에 대한 현지 언론의 평가도 아직 박하다. 하지만 떠나야 할 때 떠나, 새로운 곳에서 또 다른 도전에 나선 박지성은 듬직하면서도 돋보인다.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 연연해, 떠나야 할 때를 알지 못하고 추태를 부리는 이들을 보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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