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테스]쫀쫀한 디테일의 경쟁력

머니투데이 장경준 삼일회계법인 컨설팅부문 대표 2012.09.05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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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테스]쫀쫀한 디테일의 경쟁력


지난 7월인가에 반가운 소식이 하나 날아들었다. 한국인 발레리나 서희(26)가 한국인 최초로 미국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의 수석 무용수로 등극했다는 소식이었다.

마침 한국에서의 지젤공연을 위해 방한한 그녀에게 인터뷰 기자가 물었다. "한국인 최초로 세계 메이저 발레단 수석 무용수에 등극한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수석 무용수 강수진(44)에 버금간다고".



그녀는 답한다. "강수진 선배와 비교된다니…. 아니다. 난 아직 한참 멀었다. 선배는 정말 다르다. 가까이서 본 선배의 손동작, 눈 동작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다. 초보는 큰 그림만 보지만 대가는 작은 디테일로 승부를 건다는 걸 느낀다고". 디테일의 중요성을 자각하고 스스로 몸에 체화한 선배 대가 무용수와 이를 알아보고 인정하는 후배 대가의 흐뭇한 이야기다.

예술의 세계에서 이렇게 중요한 디테일의 힘이 경영의 세계에서는 덜 중요할까? 아니 그 이상일 것이다. 불확실한 경영 환경 아래서 기업이 보유한 자원을 알뜰하게 사용하고 최선의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조그만 디테일도 놓치지 않는 치밀함과 수집된 정확한 사실에 기반한 의사결정이 필요하다.



기업은 방대한 데이터의 생산자이자 소비자다. 기업에서 이루어지는 데이터의 수집, 가공, 전달, 활용 체계는 마치 사람의 신경계통과 같다. 모든 과정이 연결되어 있으며 작은 차이가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분석되고 가공되는 정보를 기업의 경쟁력으로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데이터를 정보로, 정보를 지식으로, 지식을 지혜 및 통찰력 수준으로 발전시키는 노력과 시스템이 필요하다.

역사상 최고의 리더이자 지략가로 알려진 이순신 장군과 제갈공명은 어찌 보면 디테일한 분석의 힘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이순신 장군은 꼼꼼한 관찰의 결과로 평소 울돌목의 거친 물줄기 아래 규칙적인 조류 변화가 있음을 알아내고, 명량대첩에서 이를 이용한 전략을 펼쳐 단 13척의 전함으로 133척의 적함대를 물리쳤다. 제갈공명 역시 적벽대전을 치르며 그 지역에 북서풍이 동남풍으로 바뀌는 주기가 있음을 알아차려 화공을 펼침으로써 대승을 거뒀다. 그가 바람마저 뜻대로 다스린다는 명성을 얻은 것도 이때부터다.

기업의 경영자는 전장에 나선 장수와 같다. 매순간 정세를 확인하고 상황을 점검해 이에 맞는 전략을 세우고 이를 바탕으로 생사를 건 실행에 나서야 한다. 실제로 2010년 MIT Sloan Management와 IBM Institute가 공동으로 연구한 자료에 의하면, 전 세계 108개 국가 30개 업종의 경영진 3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성과가 높은 글로벌 기업들의 경우 경영 전반에 관련 Data를 분석하고, 그것도 아주 지독하게 분석하고, 그 결과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과가 높은 기업들은 저성과 기업들에 비하여 의사결정시 직관(Intuition)보다 분석(Analysis)에 근거하는 비율이 5배 이상 높았다. 큰 그림의 총론이나 대범한 직관을 앞서는 디테일과 쫀쫀한 분석의 위력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금융위기의 와중에서도 견고한 수익률을 달성한 골드만삭스, 사양산업이라 불리는 패션업계에 돌풍을 일으키며 'Fast 패션'이라는 단어를 창조한 ZARA, 고객의 니즈 발견과 정확한 분석에 힘입어 토종 1등 브랜드로 자리 잡은 카페베네 등의 성공스토리는 결코 우연한 기적이나 환상이 아니다. 조각조각 구석의 데이터를 치밀하게 모아 모여진 데이터를 새로운 시각으로 분석하고 활용하기에 따라 새로운 시장이 열리는 것이다. 최근의 추세는 단순히 단위제품 레벨에서의 시장 점유율이나 매출 추이 분석을 넘어서 브랜드선호도와 기업 이미지, 그리고 나아가 인간의 생각이나 행동패턴에 대한 인문학적인 분석과 활용의 단계로 진화하고 있다.

최근 들어 전통적인 거래 정보 이외에도 소셜 네트워크나 모바일 커뮤니티 등의 다양한 채널에서 새로운 데이터들이 엄청난 속도로 생성되고 있다. 그 양(Volume)과 생성속도(Velocity), 다양성(Variety)면에서 과거와 비교가 되지 않는 빅 데이타(Big Data)가 매일매일 생겨난다. 이러한 Big Data를 어떻게 분석하여 이용할지가 고민인데 이제는 정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너무 많아서 문제인 것이다.

이렇게 많은 자료의 홍수 속에서 어떤 목적으로, 무엇을, 얼마나 빨리, 얼마나 자세하게 분석할지, 또 어떤 분석시스템을 사용할지의 결정은 각 경영주체의 몫이다. 기업의 신경계는 정보기반 영역(Information Infrastructure Layer)에서 경영정보 영역(Management Information Layer)으로, 다시 경영정보 영역에서 적시 의사결정 영역(Timely Decision Making Layer)으로 진화된다.

삼성전자는 지난 20여 년 동안 프로세스, 기준정보, 시스템의 세 가지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경영혁신을 수행하여 세계 최고 수준의 기업 신경계를 구축하여 활용하고 있다. 모든 기업이 단숨에 똑같은 수준에 도달할 수는 없겠지만 열심히 연구하여 나름대로 예민한 신경계를 구축하고 있어야 한다. 예민함은 생존에 있어 매우 중요한 감각이다.

기업은 때로는 대규모 투자 결정을 과감하게 내려야 하는데 계속 디테일을 이리저리 따지고 분석만 하고 있으면 어떡하느냐고 물어볼 수 있다. 그러나 꼼꼼하게 그것도 아주 쫀쫀하게 따져보고 사소한 위험까지도 확인한 후에야 과감한 베팅도 가능한 것 아닌가. 우리는 대규모 인수에 성공한 기업이 승자의 저주 상황에 빠지는 것을 왕왕 보게 된다. 대규모 사업일수록 디테일한 분석이 중요한 것인데 아주 사소한 작은 1%에서의 실패가 전체 100%를 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100-1=99가 아니라 100-1=0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쫀쫀하다'라는 말이 사람의 성격을 표현하는데 쓰이기 시작하면서 인색하고 작은 일까지 지나치게 세심한 사람을 일컫는 부정적인 느낌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원래 사전적 의미에는 옷감의 짜임새가 아주 고르게 잘 짜인 모양을 가리키는 뜻이 있다고 한다.

유명한 의류 브랜드 Polo의 업무 메뉴얼에는 '바느질할 때 1인치에 반드시 여덟 땀을 떠야 한다'는 아주 디테일한 규정이 있는데, 이 규정은 바느질을 아주 쫀쫀하게 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정치의 계절인 요즈음, 대범한 공약 발표에 열심이신 유력한 대선주자들께 대범한 공약발표 전에 그 공약의 기회비용이나 원가에 대해서도 쫀쫀하게 따져보시도록 부탁드린다면 너무 무리한 주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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