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많던 그 레스토랑, 1년만에 '폐업' 왜?

머니투데이 배소진 기자 2012.08.24 0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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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한민국 자영업자다]영세사업체 이익 '01년 3200만원→'09년 3000만원

손님 많던 그 레스토랑, 1년만에 '폐업' 왜?


너도나도 자영업에 뛰어들고 있다. 직장에서 은퇴한 베이비부머 세대가 '생존'을 위해, 취업난에 시달리는 청년층이 '희망'을 안고 자영업을 시작한다.

자영업자 수는 작년 10월부터 10개월 연속 매달 10만 명 이상 증가하고 있다. 지난 7월에는 전년 동월대비 19만6000명 늘어 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정부는 매월 취업자가 40만 명 이상 증가한다며 고용호조세가 계속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들 중 30~40%는 자영업자들이다. 고용호조 속에서 고용의 질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자영업에 뛰어드는 사례는 다양하다. 퇴직금으로 넉넉한 노후를 꿈꾸며 자영업을 시작한 50대 명퇴자, 사업 실패 후 소자본으로 창업한 40대 부부, 취업 대신 창업을 선택한 20대 자영업 사장까지 전 연령대에서 자영업은 증가하고 있다.

◇퇴직금 투자해 1년 준비했지만… =최규진씨(가명·50)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광고회사에 다녔다. 하지만 수명이 짧은 광고사 특성상 조기에 명예퇴직을 결심했다. 재취업도 생각했지만 자신을 원하는 회사를 쉽게 찾을 수 없었다.



1년에 걸친 준비 끝에 최 씨는 파스타, 스테이크, 와인, 커피 등을 고루 파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창업했다. 퇴직금과 저축 등 비교적 넉넉한 자본으로 유동 인구가 많은 홍대에, 그것도 목 좋은 골목 1층에 66㎡(20평) 규모의 매장을 구했다. 권리금은 1억1000만 원, 인테리어 비용만 4000만 원을 썼다.

다행히 여성층이나 연인 등 찾는 손님은 많은 편이었고 하루 매출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매달 고정적으로 나가는 임대료만 500만 원. 종업원을 고용하려면 1명당 130~150만 원이 들다보니 사람 쓰는 만큼 적자였다. 식재료와 운영비를 빼고 나니 남는 게 없었다. 주방을 최 씨가 전담하고 온 가족이 레스토랑 운영에 매달렸지만 한계가 왔다.

지난해 여름 문을 연 최 씨의 레스토랑은 손님이 없지도, 준비가 부실하지도, 창업자본이 부족하지도 않았지만 결국 1년 만인 지난 8월 22일 문을 닫았다.


◇자본금 없인 프랜차이즈도 못해= 글로벌 금융위기 광풍이 불어 닥친 2008년, 김분이씨(가명·47)의 남편은 십여 년간 운영하던 유통업체를 접었다. 중소유통업체들이 줄 도산하던 때였다.

손님 많던 그 레스토랑, 1년만에 '폐업' 왜?
살 길을 찾던 김씨 내외는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내고 싶었다. 수익이 어느 정도 보장되고 안정감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들을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일정 규모 이상의 매장에, 억대에 가까운 인테리어 비용을 댈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부부는 지난 2009년 인천 서구 원당동 한 상업지구에 막걸리와 빈대떡을 파는 주점을 차렸다.

힘겹게 시작한 매장. 김씨 부부는 매일 오후 5시면 가게 문을 열고 새벽 3~4시에 문을 닫는다. 이제 4년차. 오후 6시~7시쯤 되면 손님이 몰려들어 앉을 틈도 없이 바쁘다. 편차는 있지만 하루 평균 30만 원 이상 꾸준히 매출도 나온다.

문제는 역시 하루 종일 일해도 돈이 벌리지 않는다는 점. 몇 년 전만 해도 총매출의 35~40%는 순이익으로 가져갈 수 있었다. 하지만 요새는 15~20% 건지기도 어렵다. 가게를 시작할 때에 비해 재료비가 2배 가까이 뛰었지만 메뉴판 가격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카드사용이 보편화되면서 가게에 현금이 들어오지 않는 것도 큰 어려움 중 하나다. 하루에 20만 원 어치를 팔아도 손에 쥐는 현금은 1~2만 원에 불과하고, 도매시장에서는 카드를 받지 않는다. 매일 10~20만원어치의 식재료를 현금으로 사야하는 김씨는 늘 한 푼 한 푼에 전전긍긍하게 된다.

◇취업 대신 창업한 20대 사장= 지난해 10월부터 인천 원당동서 ㅎ파스타 전문점을 운영하는 조지훈씨(가명·29). 첫 6개월, 조씨는 "죽도록 고생했다"고 회상했다. 종업원을 쓰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1명만 써도 최소 월140만 원. 큰 부담이었다. 인건비를 가격에 반영하면 되지만 프랜차이즈 매장에 비해 저렴함을 승부수로 띄운 만큼 가격인상은 불가능했다.

결국 사람을 쓰는 대신 손님이 직접 접시와 식기, 물 등을 챙기는 셀프시스템으로 돌렸다. 그리고도 남는 일은 모두 조 씨의 몫. 매일 식재료 구입에서부터 매장 청소와 재고관리, 음식 서빙까지 한다. 바쁠 때는 직접 주방에도 들어간다.

월 100만 원이 넘는 임대료와 도시가스, 수도 등 공과금에 이어 재료비도 지출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소규모로 하다 보니 식재료를 도매시장에서 한꺼번에 살 수도 없다. 근처 마트에서 최저가를 찾아다니며 매일 구매하는 터라 물가상승에 직격탄을 맞는다.

"연어샐러드를 8900원에 파는데 연어(200g) 원가가 5000원이에요. 거기에 양상추의 경우 예전엔 양손으로 들 만한 한 덩이가 2500원이었는데 요샌 어른 주먹만 한 것에 6000원씩 하니까 남는 게 없어요."

손님 많던 그 레스토랑, 1년만에 '폐업' 왜?
조씨는 하루 평균 30만 원 후반대의 매출을 올린다. 이 중 인건비와 운영비, 카드수수료 등을 떼고 나면 30% 정도가 순이익으로 남는다. 그나마 주방장과 둘이서 꾸려가는 덕분이지, 아르바이트생을 한 명만 고용하면 바로 적자가 될 지경이다.

◇월 1000만 원씩 팔아도 남는 건…= 취재결과 만나본 이들은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다. 하루 평균 30만 원 가량, 한 달이면 단순계산만으로도 월매출이 900만 원이 나오는 셈.

하지만 매달 빠져나가는 임대료와 공과금 등 기본지출의 비중이 컸다. 지금보다 재료비가 더 들거나, 인건비가 들면 당장 균형이 무너져 버리는 취약한 상태다. 홀로 또는 가족경영의 형태로 일해야 겨우 한 달에 200만 원 남짓 흑자를 낼 수 있는 구조다.

손님 많던 그 레스토랑, 1년만에 '폐업' 왜?
지난해 중소기업청이 발표한 소상공인통계집에 따르면 5인 미만 자영업체 중 월평균 매출이 400만 원 이하인 곳은 58.3%나 된다. 순이익은 평균 월 149만 원. 200만 원 이상을 남길 수 있는 곳은 20%가 채 안 된다. 심지어 4곳 중 1곳이 적자를 보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영세사업자 실태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09년 5인 미만 영세사업체의 연평균 영업이익은 3000만 원으로 조사됐다. 2001년 3200만 원에 비해 오히려 줄었다. 매년 2~4%씩 오른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자영업자들의 생활수준은 10년 전보다 크게 악화됐다.

"하루 종일 정말 열심히 하는데 왜 이렇게 살기 힘든지 모르겠어요." 막걸리 주점 주인 김 씨의 하소연은 갈수록 오르는 물가와 지갑을 닫은 소비자에 치인 대한민국 자영업자들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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