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민·서범석·홍광호, 누구의 돈키호테로 볼까?

머니투데이 이언주 기자 2012.07.27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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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주 기자의 공연 박스오피스]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의 빛나는 주연들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에서 돈키호테 역을 맡은 홍광호는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며 가창력과 연기력을 동시에 인정받았다. ⓒ오디뮤지컬컴퍼니↑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에서 돈키호테 역을 맡은 홍광호는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며 가창력과 연기력을 동시에 인정받았다. ⓒ오디뮤지컬컴퍼니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의 주인공 '돈키호테' 역은 배우 홍광호에게 잘 어울리는 맞춤옷 같다. 올 초에 5개월 남짓 공연한 '닥터지바고'에서 탁월한 가창력을 뽐냈으나 최고의 찬사는 조승우에게 양보해야 했던 그가 칼을 갈았나 싶었다. 그는 캐릭터를 완벽하게 이해했고 극의 맥을 정확하게 짚어가며 다른 배우들, 관객들과 호흡했다. 여유로움 속에 묻어나오는 노련함은 돈키호테는 물론, '홍광호'라는 이름도 다시금 빛나게 했다.

소위 '미친 가창력'이라 불리는 그에게 더 이상 노래를 잘한다고 하면 무엇 하랴. 특유의 깊고 안정적인 음색은 감동 포인트의 기본요소일 뿐, 이번 작품에서 그는 연기력에 있어서도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며 연기파 배우로서의 방점을 찍었다.



돈을 뜯어내기 위해 관능적인 춤을 추며 자신을 유혹하는 여인에게 고개를 갸우뚱, 눈을 껌벅거리며 "아가씨, 뭘 허시오?"라고 할 때는 영락없는 정신 나간 70대 노인이었다. 거울의 기사가 현실을 직시하라며 거울 속 돈키호테의 늙고 초라한 모습을 보여줄 때 쉰 목소리를 내며 울부짖는 장면은 고뇌하는 인간의 고통과 번민이 느껴져 객석의 가슴마저 찌릿하게 했다.

'그 꿈 이룰 수 없어도, 싸움 이길 수 없어도, 정의 위해 싸우리라, 사랑을 믿고 따르리라, 멈추지 않고 돌아보지 않고 오직 나에게 주어진 이 길을 걸으리라.' 절절한 가사를 담은 '맨 오브 라만차'의 대표적인 넘버 '이룰 수 없는 꿈'을 부를 때는 소름이 끼칠 듯한 전율이 객석을 휘감았고, 다시 한 번 확인한 '미친 가창력'에 가슴이 뻥 뚫리는 것만 같았다.



사실 이 작품은 2005년 국내초연 이후 세 차례 앙코르공연을 했고, 이번이 다섯 번째 무대라 '또 돈키호테야?'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워낙 작품성을 인정받은 데다 돈키호테 역에 황정민, 서범석, 홍광호의 트리플캐스팅이 확정되면서 개막 전부터 누구의 공연을 봐야할까 관심이 쏠렸다. 특히 이제 갓 서른인 홍광호가 삶의 무게가 실린 노인 역을 어떻게 소화해낼지도 궁금했다.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에서 돈키호테 역을 맡은 황정민, 홍광호, 서범석(왼쪽부터).↑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에서 돈키호테 역을 맡은 황정민, 홍광호, 서범석(왼쪽부터).
'너는 내 운명' '댄싱퀸' 등 TV드라마와 영화로 뛰어난 연기를 보이고 있는 황정민(42)에 뮤지컬계에서 안정적인 연기력과 가창력으로 탄탄한 내공을 자랑하는 서범석(42),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여심을 사로잡는 홍광호(30)까지 서로 다른 세 명의 매력남들이 무대에 오른 지 이제 한 달 남짓 됐다.

자, 그렇다면 이제 누구의 돈키호테를 볼 것인가. 뮤지컬 마니아라면 세 명 배우의 공연을 모두 봐도 좋다. 아마 세 번째 보게 된다면 주요 장면의 대사와 노래는 속으로 함께 흥얼거릴 수도 있을 테다. 그만큼 대본과 노랫말이 인상적이고 귀에 쏙쏙 들어온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같은 작품을 두 번 이상 보기란 쉽지 않다.


1년에 50편 이상 공연을 보는 30대 초반의 여자 관객 입장에서, 남자 주인공에 좀 더 주목하는 스타일이라면 홍광호의 돈키호테를 강력 추천한다. 또 작품 '맨 오브 라만차'의 메시지와 구성, 원작소설 '돈키호테'에 꽂혔다면 서범석의 패기 넘치는 돈키호테를 만나보면 어떨까.

황정민의 진솔한 연기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스크린이 아닌 무대 위에 그의 모습을 보는 것도 좋겠다. 하지만 그의 탁월한 연기력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노래실력에 묻혀 영화 속 황정민의 카리스마가 한껏 발휘되진 못했다. 10월7일까지 서울 잠실 샤롯데씨어터, 6만~13만원. 1588-5212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의 무대는 지하감옥에서 여관, 성당, 해바라기 밭으로 바뀌는 등 다양한 전환으로 관객의 눈을 즐겁게 한다. ⓒ오디뮤지컬컴퍼니↑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의 무대는 지하감옥에서 여관, 성당, 해바라기 밭으로 바뀌는 등 다양한 전환으로 관객의 눈을 즐겁게 한다. ⓒ오디뮤지컬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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