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의 복수

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장 2012.05.21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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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청계광장]

개인적으로 요즘 영감을 가장 많이 주는 경제전문가가 한명 있다. 경제전문가라고는 하지만 경제학자는 아니다. 마이클 루이스라는 경제 관련 논픽션 작가다. 그는 다수의 세계적 베스트셀러를 썼다. 그 이유로 국내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경제 작가로서 그의 장기는 경제 현장에 대한 생생하고 흥미로운 묘사다. 1989년 출간된 <라이어스 포커>(liars' Poker)는 당대 최고의 투자은행이었던 살로먼브라더스 채권팀 내부를 들여다본 책이다. 2003년 나온 <머니볼>(Money Ball)은 미국 프로야구에서 발상의 전환을 통해 기적 같은 성적을 거둔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구단 이야기다. 그는 요즘 재정과 금융 위기를 자초한 나라들과 그 위기 속에서 기회를 잡은 사람들 이야기에 힘을 쏟고 있다(<부메랑>, <눈먼 자들의 경제> 등).

그가 쓴 베스트셀러들은 공통점이 하나 있다. 출간 당시 경제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경제 현장을 골라 정면으로 달려든다는 사실이다. <라이어스 포커>는 블랙먼데이와 살로먼브라더스의 몰락 이후 월가의 탐욕을 꼬집은 역작이었다. 돌이켜보면 훗날 월가의 이상비대와 타락에 대한 예고편 격이었다. 이 책에는 이 회사 채권팀장 존 메리웨더가 회장인 존 굿프렌드와 벌이는 라이어스 포커게임이 등장한다. 이는 영화 <월스트리트>에서 증권업계의 큰 손 고든 게코가 한 ‘탐욕은 좋은 것’이라는 연설과 함께 1980년대를 상징하는 장면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머니볼>은 야구를 다룬 책이지만 실은 경제에 관한 우화이기도 하다. 2000년대 미국경제는 경쟁력을 잃은 제조업을 대신해 금융산업을 키웠다. 그 방식도 단순해서 그저 더 많은 돈을 투자자와 외부로부터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마치 프로야구 구단 뉴욕 양키스가 천문학적 금액을 주고 유명한 선수를 영입해 최고의 성적을 거두는 식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뉴욕 양키스의 10분의 1 정도의 돈으로 똑같은 성적을 거두는 한구단의 경쟁력 비결을 해부했다. 이 우화를 좀 확대 해석하자면 훗날 세계 정보기술(IT) 업계를 호령할 애플 같은 회사의 등장을 야구에 빗대서 설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경제적으로 예민한 촉수를 가진 마이클 루이스의 최근 관심사는 어떤 것일까? 보기에 따라서는 섬뜩할 수도 있다. 그는 <부메랑>이라는 책에서 묻는다. ‘당신은 2008년에 터진 서브프라임 사태가 위기의 원인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위기의 한 징후에 불과하다고 판단하는가?’ 만일 전자라면 위기는 조만간 해소된다. 비록 더디기는 하지만 현재는 위기에서 벗어나는 과정이다.



하지만 후자라면?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들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마이클 루이스가 월가에 이어 유럽 각국으로 이어지는 연쇄부도 사태의 주범으로 꼽는 것은 바로 빚(Debt)이다. 금융사든 나라든 빚을 너무 많이 졌다. 사실 이런 분석은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그런데 그는 빚이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는 수준까지 누적되는 데 주역이었던 금융산업과 국가의 역할에 주목한다. 이 둘은 빚을 진 사람과 갚을 사람을 달리 만듦으로써 문제를 훨씬 복잡하게 만들었다. 월가는 파생금융상품을 통해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을 전 세계 금융기관으로 전파했다. 위기 국가 정부들은 당장의 고통을 피하려 미래 세대의 부담을 키우는 방법으로 재정위기를 자초했다. 당장 디폴트 상황까지 내몰린 그리스만 하더라도 지난 10여년 재정낭비로 인한 부담을 현 세대가 지지 않으려 하고 있다. 모두 당장 빚을 얻어 쓰는 데만 골몰해서 벌어진 일이었다. 이제 그 대가를 갚아야 한다. 그 대가로 금융사뿐만 아니라 국가까지 연쇄부도를 맞는 일은 불가피하다.

그의 묵시록에 가까운 경고에서는 우리나라 역시 예외가 아니다. 가깝게는 가계부채, 10여년 이후라면 국가부채 문제가 우리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물론 세계적인 연쇄부도와 금융불안 속에서도 우리 경제가 좋은 것처럼 보이는 착시효과는 여전할 것이다. 시시때때로 환율이 뛰고 수출이 괜찮을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계든 정부든 과다한 빚으로 지출을 제대로 하지 못해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는 상황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마이클 루이스가 들여다 본 나라들처럼 폭발적이지는 않겠지만 우리의 경우도 그가 예고하는 빚의 복수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3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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