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vs 독일, 10년전 정치가 운명 갈랐다

머니투데이 아테네(그리스)=최종일 기자 프랑크푸르트(독일)=정진우 기자 2012.04.0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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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존 극과 극' 그리스·독일을 가다①-1]쓴잔을 마신 정치 vs 쓴잔을 피한 정치


그리스 vs 독일, 10년전 정치가 운명 갈랐다


- "국가부강 보증수표" 조건속여 가입
- 부패·포퓰리즘 방치 국가 파산 위기



그리스 vs 독일, 10년전 정치가 운명 갈랐다
- 국민의 반대 무릅쓰고 유로화 동참
- '안정적 성장' 전후 최대호황 이끌어


 유럽 위기에도 독일은 최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반면 그리스는 침몰하고 있다. 그들의 운명은 10년전에 갈렸다. 그때 독일 정치인들은 국민들에게 쓴잔을 권했다. 그리스 정치인들은 단술을 퍼날랐다.



쓴잔을 권한 독일 정당은 10년전 집권에 실패했다. 그러나 나라는 부강해졌다. 단술을 권한 그리스의 정치인들은 여전히 권력을 누리고 있다. 나라는 파산 직전이다. 정치와 리더십이 얼마나 중요한지 두 나라의 엇갈린 운명이 극명히 보여준다.

↑지난달 23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중앙역(Hauptbahnhof). 3월21일부터 24일까지 프랑크푸르트 전시관에서 열린 음악박람회에 참석하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지난달 23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중앙역(Hauptbahnhof). 3월21일부터 24일까지 프랑크푸르트 전시관에서 열린 음악박람회에 참석하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지난달 23일 오후 유럽 최대 경제대국 독일 프랑크푸르트 유럽중앙은행(ECB) 인근 한 레스토랑엔 빈 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가게를 운영하는 쿤트 씨는 세계 각지에서 업무 차 출장 온 은행원들과 관광객들이 독일로 몰려들어 요즘처럼 장사가 잘 된 적이 없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며칠 뒤인 지난달 28일 오전 그리스 수도 아테네엔 깊은 상실감이 감돌고 있었다. 경제가 지난해까지 4년째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면서 은행과 명품 상점들이 아테네 중심가엔 폐업하는 곳이 속출하고 있었다. 시위가 빈번하게 일어나면서 화창한 날씨에도 관광객들의 발길은 크게 줄었다.

 그러나 유로화가 공식 출범한 10년 전만 해도 두 나라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강한' 마르크화를 버리고 '약한' 유로화를 택한 독일 정부 결정에 많은 독일 국민이 실의에 빠졌던 반면, 그리스 국민은 '유로존' 편입을 '부강한 그리스'의 보증수표라며 환호성을 터트렸다.

 하지만 지금은 독일이 전후 최대의 호황을 맞고 있는 반면 그리스는 한달전 2번째 구제자금을 받아 간신히 국가파산을 모면한 난파선이 되었다. 이처럼 두 나라의 운명이 극명하게 갈린 배경은 다름 아닌 정치였다. 정치인의 리더십과 비전, 그리고 정치생명을 건 개혁 추진의 유무가 두 나라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독일 정치권은 국민의 반대를 무릎 쓰고 유로화에 동참했다. 그게 약이 되었다. '약한' 유로화 채택은 독일경제의 중심인 제조업의 수출 경쟁력을 크게 끌어올렸고, 독일은 이후 안정적인 성장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다.

↑그리스는 혹독한 긴축으로 빈곤이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한 걸인이 아테네 신타그마광장 인근에서 동냥을 하고 있다. ⓒ사진=아테네 홍봉진 기자↑그리스는 혹독한 긴축으로 빈곤이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한 걸인이 아테네 신타그마광장 인근에서 동냥을 하고 있다. ⓒ사진=아테네 홍봉진 기자
이에 비해 그리스는 유로존 가입이 독이 되었다. 가입조건을 속여서까지 유로존 회원국이 됐지만 결과적으로 그리스 경제 붕괴의 시발점이었다.

유로존 가입 후 낮아진 금리를 만끽하며 해외 차입을 마구잡이로 늘려 가뜩이나 불안하던 재정 상황이 더욱 악화됐기 때문이다. 유로존 가입 당시 국내총생산(GDP) 대비 100% 수준이었던 누적 공공부채는 지난해 160%까지 치솟았다.

 유로존 가입 이전부터 곪아있던 환부가 단일통화 도입 후 썩어들어간 것이다. 전인구의 7%가 공무원인 비효율적 공공부문과, 각종 규제가 만들어낸 민간 부문의 경쟁력 저하가 이를 말해준다. 특히 1980년대 이후 정권이 바뀌어도 수십년간 지속된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 정책엔 제동 장치가 없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전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에 달했던 그리스는 구제금융의 굴욕 속에서 청년 2명 중 1명이 실업상태로 전락하고, 중산층은 빈곤층으로 내몰리는 유럽의 천덕꾸러기로 신음하고 있다.

 반면, 독일은 그리스와 달랐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저 성장률을 기록한 독일은 한때 실업률이 10%를 웃돌았지만, 국민적 저항을 무릎쓴 과감한 개혁으로 환골탈태에 성공했다.

 좌파 사민당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는 재집권 직후인 2003년 3월 "어느 누구도 사회의 희생 위에서 일하지 않으며 쉬도록 해선 안 된다"며 독일 경제의 개혁 청사진인 '어젠다 2010'을 발표했다. 포괄적인 사회·노동 개혁 정책이 담긴 이 정책은 바로 '하르츠 법'이었다.

 사측과 노측, 정치인 등으로 구성된 하르츠 위원회는 "공공 고용서비스를 재조직하고 실업자가 정부 지원을 받으려면 구직을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파견 근로와 해고 보호 등 계약직에 관한 규제를 대폭 축소했다.

 이 때문에 지지도가 떨어진 슈뢰더 총리는 2005년 총선에서 결국 낙선했다. 하지만 우파 기민당의 앙겔라 메르켈 신임 총리는 여론의 반대에도 슈뢰더 총리의 개혁 정책을 적극 계승했다. 지난 2007년에는 단축 노동안을 도입하는 등 고용 유연화 정책을 확대했다.

 강성기 독일외환은행 사장은 "하르츠 개혁 덕분에 오늘날 독일이 이렇게 잘 나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 경제위기에서 효과를 발휘해 노동시간의 유연화와 구조적 실업의 억제에 기여했다"며 "어려운 선택이었지만 개혁이란 쓴 잔을 마셔 EU국가 중에서 경쟁력이 가장 강한 나라가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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