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잔' 피하고 '단술'만 나눈 10년…곳간 비었다

머니투데이 아테네(그리스)=최종일 기자 2012.04.0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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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존 극과극' 그리스·독일을 가다①-2]포퓰리즘 경쟁에 침몰한 그리스

편집자주 독일과 그리스의 운명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2000년대 초 승승장구했던 그리스경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차례 구제금융을 받는 처지로 몰락한 반면 통일 후유증으로 '유럽의 병자'로 불렸던 독일은 지난해 실질 성장률이 유로존 평균의 2배를 넘어서는 등 유럽의 맹주로 재부상했다. 결국 정치가 문제였다. 정치인들의 리더십이 국가 운명을 갈랐다. 머니투데이는 부설 미래연구소M과 함께 그리스경제 붕괴와 독일 성공의 원인을 두 나라 현지에서 집중 점검했다.


●2000년대초 '아 엣날이여'
- 유로존 가입·유로 2004 우승
- 아테네 올림픽까지 승승장구
- 국민소득 3만弗 유럽의 새별

●2008년이후 '닥쳐온 불황'
- 폐업속출…4~5곳중 한집 '임대'
- "네번 먹던 고기 한번으로 줄여"
- 과격시위에 관광객도 크게 감소



●10년전부터 '문제는 정치'
- 좌우없이 포폴리즘 영합행위 만연
- 공무원늘리고 연금·임금상승 지속
- 개혁 무조건반대 국민도 절반책임


'쓴잔' 피하고 '단술'만 나눈 10년…곳간 비었다


 지난달 28일 유럽 남동부 발칸반도에 위치한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 이곳에서 가장 번화한 중심지인 신타그마광장과 국회의사당이 내려다보이는 패스트푸드 체인점 매장 2층에는 아침부터 강한 햇빛이 실내에 가득했다. 달력은 3월을 가리키고 있지만 한국의 5월 날씨가 떠오를 정도의 화창한 날씨였다.



 하지만 찬란한 봄햇살이 모든 아테네 시민들의 얼굴을 환하게 비추지는 못하고 있었다. 패스트푸드 매장 한편에 혼자 앉아 있는 한 그리스 청년은 2유로(약 3000원)쯤 돼 보이는 동전을 몇 번이나 움켜쥐었다 놨다를 반복하며 한참이나 창밖만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테이블엔 음료수컵조차 보이지 않았다.

자신을 30세의 건설노동자라고 밝힌 파파도폴로스는 "지난해엔 하루 몇시간이라도 일을 할 수 있었는데 올해 들어선 전혀 일을 못했다"며 일자리를 찾기 위해 시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것이 하루 일과라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 역시 무직이다보니 어머니가 가사 도우미 일을 해서 세식구가 먹고 산다"고 말했다.

↑경제가 지난해까지 4년째 마이너스성장을 기록하면서 은행과 명품상점들이 밀집돼 있는 아테네 중심 스타디우거리엔 폐업하는 곳이 속출하고 있다. ⓒ사진=아테네 홍봉진 기자↑경제가 지난해까지 4년째 마이너스성장을 기록하면서 은행과 명품상점들이 밀집돼 있는 아테네 중심 스타디우거리엔 폐업하는 곳이 속출하고 있다. ⓒ사진=아테네 홍봉진 기자
파파도폴로스씨의 머리속엔 8년전 환호성이 생생하다. 지난 2004년 7월 4일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04)에서 강호 포르투갈을 꺾고 사상 처음으로 우승했을 때 아테네 시민들은 오모니아 광장으로 쏟아져 나와 국기를 힘차게 흔들었다.


2001년 유로존 가입과 2004년 아테네올림픽 개최, 2005년 유럽 최대 음악경연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우승 등 꿈 같은 세월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 앞엔 실업의 고통만이 남아있다.

 그는 "그리스는 부유한 국가지만 정치인들과 관료들의 부패로 인해 경제가 좋지 않다. 계속 이 상태로 있을 순 없어 미국이나 호주 등으로 들어갈까도 고민하고 있다. 친구 중엔 몇명이 이미 외국으로 나갔다"고 말했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를 자랑하던 그리스는 사실상 국가부도 사태를 맞으며 청년 두 명 중 한 명이 일을 못하는 지경이다.

◇4년 간의 불황으로 폐업 속출
파파도폴로스씨는 "정치가 문제였다. 정치인들에게 속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정치인들은 비전없는 무책임한 정책을 남발했고 국민들은 표로 화답했다. 포퓰리즘 정책엔 제동 장치가 없었다. 임금은 중단없이 올랐고, 생산성은 약화됐다. 환호로 맞았던 유로존 가입은 위기를 증폭시켰다.

 그리스의 비극은 사회주의 정부가 처음으로 집권한 198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스 사회주의 운동의 대부인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 총리는 사회당(PASOK)을 이끌고 1981년 집권, 보편적 연금과 건강보험을 도입, 사회보장제도 강화 등을 내세워 복지국가 건설을 주창했다. 공공부문 인력을 늘리고 각종 복지 혜택을 도입했으며 임금을 올렸다.

↑혹독한 긴축정책에 내몰린 그리스에선 반독일 감정이 고조돼 있다. 아테네 인근 피레우스항 주변 거리에 붙은 포스터의 모습. ⓒ사진=아테네 홍봉진 기자↑혹독한 긴축정책에 내몰린 그리스에선 반독일 감정이 고조돼 있다. 아테네 인근 피레우스항 주변 거리에 붙은 포스터의 모습. ⓒ사진=아테네 홍봉진 기자
 파판드레우 총리가 한차례 연임에 성공, 10년 동안 집권하면서 그리스의 공공부채는 1981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34%에서 1990년에는 80%를 웃돌았다. 당시 보수 정권에선 정부 지출이 과도하다고 주장했지만 여당은 그리스인 대부분의 임금이 인상돼 구매력이 증가했다고 맞섰다.

 파판드레우 총리도 임금 동결과 긴축을 시도하기도 했다. 1985년 46%의 득표로 재신임을 받으면서 재정 규율을 강화하려고 했지만 즉각적인 임금 인상을 요구한 노조에 의해 계획을 백지화했다. 파판드레우 정부의 최대 지지층인 노조의 요구를 묵살할 수 없었다.

 파판드레우 정부가 비리 혐의로 물러난 뒤 1990년 집권한 우파 신민주당(ND) 소속의 콘스탄틴 미트소타키스 총리는 공무원 감원 등을 포함해 긴축 프로그램을 시도하려고 했다. 하지만 개혁은 수포로 돌아갔고 3년 뒤 정권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미트소타키스 정부는 1980년대 이후 처음으로 재집권에 실패한 정부였다.

◇포퓰리즘에 좌우가 없었다
1990년대 이후 정권이 몇차례 바뀌었지만 개혁은 요원했다. 특히 1996년 이후 이념의 대결이 사실상 끝나면서 극우에서 극좌까지 자신의 정당이 국민들의 새로운 요구를 대변한다며 중도적 신자유주의를 주창했다. 이를 통해 규제완화, 세금감면 등 포퓰리즘 정책은 더욱 만연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가장 주목할만한 개혁 조치는 그리스가 유로존에 가입하는 요건을 갖추기 위해 1990년대 후반 진행된 경제개혁 프로그램(Convergence Program)이었다. 하지만 유로존 가입 후 공무원 숫자는 급속히 다시 증가했고 연금과 인금도 상승했다. 통화공동체(EMU) 가입을 앞두고 수년간 진행된 긴축에 대한 보상으로 민간 부문 임금도 가파르게 올랐다.

↑그리스 아테네 에르무 거리에 있는 한 상점이 70% 염가판매를 실시하고 있다. 긴축과 관광객 감소로 상점들은 극심한 불황에 시달리고 있다. ⓒ사진=아테네 홍봉진 기자↑그리스 아테네 에르무 거리에 있는 한 상점이 70% 염가판매를 실시하고 있다. 긴축과 관광객 감소로 상점들은 극심한 불황에 시달리고 있다. ⓒ사진=아테네 홍봉진 기자
 그리스 공공부채는 90년대 100%에서 오르락내리락했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에 다시 가파르게 올라 지난해엔 160%까지 치솟았다. 유로존 가입 이후 낮아진 저금리로 해외에서 무분별하게 돈을 끌여다 쓰고 수입이 증가한 것이 이유였다.

개혁의 칼이 닿지 않은 탈세와 비효률적인 탈세 시스템도 공공부채 상승에 일조했다. 1980년대 초 30만명에 불과했던 공무원 숫자는 지난해엔 80만명 이상으로 급증했다. 일각에선 공무원 숫자가 100만명이 넘는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근로가능인구 다섯명 중 한명이 공무원인 셈이다.

 파국을 맞기전에 마지막 기회마저 놓쳤다. 지난 2009년 여름 누적 공공부채가 120%를 넘어서자 코스타스 카라만리스 총리는 개혁안을 놓고 총선을 치렀다. 공공부문 채용 중단과 공무원 임금 및 연금 동결 등 쓴잔을 마시자는 안이었다. 그러나 파판드레우가 반대했고 유권자들은 그의 손을 들어줬다. 그후 1년도 채 안돼 국제통화기금(IMF)에 손을 내밀어야 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직전인 2007년까지도 현지 여론 조사에서 48%가 파판드레우를 "가장 중요한 그리스 총리"로 꼽았다. 1981년에서 1985년까지 파판드레우 총리 1기를 최고의 그리스 정부로 선정했다. 그리스의 몰락은 "정치인과 국민들이 공범"이라고 그리스 국민들이 뒤늦게 한탄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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