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경제권과의 첫 FTA라는 점에서 높았던 기대를 고려할 때 영 신통치 않은 실적이다. 한·EU FTA가 '우리나라 무역 전선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나오는 배경이다. 그렇다면 한·EU FTA 정말 우리 경제의 치명적 '독배'일까. 성적표의 속내를 살펴보면 얘기는 180도 달라진다.
실제 FTA로 관세인하 혜택을 본 품목군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FTA 발효가 경기침체와 재정위기 등 무역여건 악화 속에서도 수출 확대의 촉매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관세 즉시 철폐 품목군의 대EU 수출 증가율은 지난해 상반기에 전년 동기 대비 -1.3%로 감소했던 것이 FTA 발효 이후 5개월 간 8.1%의 증가세로 전환됐다. 3년 철폐 품목군의 수출 증가율도 지난해 상반기 전년 동기 대비 10.2%에서 FTA 발효 이후 27.0%로 2배 이상 증가했다. 5년 철폐 품목군의 경우 2010년과 지난해 상반기 연속해서 전년 대비 수출이 감소했으나 FTA 발효 이후에는 전년 동기 대비 103.6% 늘어나는 성과를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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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별로는 관세가 즉시 철폐된 자동차부품(기존 관세율 4.5%)의 수출이 22배, 금속절삭가공기계(2.7%)가 10배, 정밀 화학제품(6.5%)이 7배가량 증가했다. 제트유 등 석유제품의 경우 수출 물량이 약 12배 늘어났다.
이렇게 관세 혜택을 받은 품목군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의 대EU 수출은 오히려 전년 동기 대비 14.8% 증가하게 된다. 같은 기간 해당 품목에 대한 세계의 대EU 수출 증가율(8.0%)은 물론 중국(0.5%), 일본(2.6%) 등 경쟁국을 큰 폭으로 따돌리는 실적이다.
품목별로는 기존에 이미 무관세로 FTA 발효 효과를 받지 못하는 조선의 경우 수출액이 2010년 7월~2011년 1월 90억7000만 달러에서 2011년 7월~2012월 1월에는 42억2000만 달러로 '반토막' 났다. 무선통신기기(-54.1%), 반도체(-46.5%), 디스플레이(-26.4%) 등 우리의 주력수출 품목 다수가 마찬가지 상황이다.
한·EU FTA 발효 후 악화된 '무역 성적표'의 주요인이 양허안에서 제외돼 관세 혜택을 받지 못하는 품목 군에 있다는 것을 가늠케 하는 결과다.
명진호 국제무역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전체적인 수출 규모의 증감만으로 FTA 효과를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며 "석유제품, 자동차, 인조섬유, 기계류 등 관세 혜택을 받은 제품들의 대EU 수출이 강한 증가세를 보인 것을 고려할 때 EU과의 FTA가 한국의 수출 확대에 상당한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확인 된다"고 말했다.
전윤종 주EU 한국대사관 상무관도 "유럽의 경기침체로, 다자간 협정에 따라 이미 무관세 품목이던 선박 및 정보기술(IT)제품이 유럽수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이는 FTA 효과와는 사실상 무관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FTA의 본질이 '제로섬'이 아니라 '윈윈'이라는 것을 유럽통합의 역사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한·EU FTA도 우리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발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