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타의 '저스트인타임' 결점이 드러났지만‥

머니투데이 송선옥 기자 2012.03.07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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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본 대지진 1년]②日제조업, 설비분산투자·재고관리 노력 강화

편집자주 지난해 3월 11일 일본 동북부를 강타한 규모 9.0의 강진과 쓰나미, 그리고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2만명에 가까운 희생자를 냈을 뿐 아니라 경제와 산업 구조, 일반인들의 삶까지 송두리째 흔들어놓았다. 대지진 1년을 맞아 일본 경제의 진로와 산업계의 재해 대응 방식, 원전 사태에 따른 생활양식의 변화를 3회에 걸쳐 점검해 보고 우리에게 던져진 교훈을 살펴본다.

저스트인타임(Just-in-time)은 자동화와 함께 토요타의 획기적인 생산성 제고 방식인 이른바 '토요타생산방식'(TPS)의 양대 기둥이다.

토요타는 1950년대 생산성이 미국 업계의 1/8에 불과한 상황에서 감내하지 못할 정도의 차량 재고로 파산에 내몰렸다. 이 때 토요타는 '필요한 것을, 필요한 때에, 필요한 만큼'만 생산하고 운반하는 구조, 즉 '저스트인타임(JIT)' 생산기법을 도입해 위기를 극복했다. JIT를 통해 재고를 줄이고, 생산성을 올릴 수 있었고 생존의 위기에서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글로벌 선도 메이커로 우뚝 서게 되었다.



토요타 창업자 토요타 기이치로가 이미 1938년에 처음 언급했던 '저스트인타임'의 옳바른 영어 표기는 '저스트온타임'(Just-on-Time)이지만, 지금은 미국은 물론 전 세계가 'JIT'란 용어를 사용할 만큼 JIT는 일본 제조업계를 상징하는 생산 기법이 되었다.

그러나 지난해 3월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하면서 일본 제조업계가 '전가의 보도'처럼 여겨온 JIT 생산기법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됐다. 몇몇 공장이 쓰나미 피해로 가동을 중단하자 핵심 부품의 재고가 순식간에 바닥을 드러내, 글로벌 자동차산업 서플라이체인(부품공급망)이 일순간 붕괴되었기 때문이다.



◇결점 드러낸 토요타 'JIT' =지난해 3월11일 일본 동북부에 위치한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작은 마을들이 쓰나미에 잠길 때만 해도 사람들은 글로벌 자동차 산업에 어떤 위기가 닥칠지 아무도 몰랐다.

토요타 공장은 당시 일본 남동부 지역에 몰려있어 큰 화를 면했다. 3개 공장만이 피해를 입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토요타의 글로벌 생산은 곧 전면 마비됐다. 토호쿠(동북부) 키나칸토(북관동) 지역 등에 위치한 600개 부품 공급업체가 생산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자동차 한대당 2만~3만개의 부품이 필요한데 2~3%의 부품 부족이 발목을 잡은 셈이다. 물론 재고가 충분했다면 타격을 크게 줄일 수 있었지만, JIT 생산기법으로 핵심 부품의 재고는 눈깜짝할 사이에 바닥을 드러냈고, 토요타와 같은 완성차업체는 차량 생산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마이크로콘트롤러(MCU: 특정 시스템을 제어하기 위한 전용 프로세서) 세계 시장 점유율 40%를 차지하고 있는 일본 르네사스 일렉트로닉스는 일본 대지진이 초래한 글로벌 부품공급망 붕괴의 가장 상징적인 회사이다.

이 회사는 휴대폰 부품인 시스템 대규모집적회로(LSI) 공급비중도 일본 내에서 가장 높았다. 특히 MCU는 자동차에서부터 백색가전 휴대폰 주요 산업기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사용됐는데 르네사스 주력공장인 이바라기현 나카 공장이 큰 피해를 입으면서 파장은 산업계 전반으로 확대됐다.

대지진 이후 토요타와 르네사스는 JIT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결국 수용했다. 토요타는 자동차 내비게이션용 집적회로(IC) 재고를 2개월분으로 늘렸으며 반도체 업체인 르네사스 일렉트로닉스는 차량용 마이크로콘트롤러 재고를 최대 4개월분으로 늘렸다.

실제로 지난해 11월말 현재 일본 기업의 재고는 전년 동월대비 8% 증가했다. 이는 1998년3월 이후 최대 증가폭이었다.

BNP파리바증권의 고노 료타로 이코노미스트는 “재고를 많이 늘리면 관리 비용이 늘어나면서 기업 부담이 커질 수 있지만 대지진 이후 보험 차원에서 재고를 늘리려는 움직임이 증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日 기업, 설비분산·재고관리 노력 강화 '주목' =일본 기업들은 엔고 부담으로 생산 공장의 해외 이전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대지진이 터지자 일본 기업들은 해외 이전과 해외 부품업체로의 공급망 다변화 노력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토요타 혼다 닛산 등 일본 자동차 빅3는 향후 2년내 전체 생산량의 70%를 해외에서 생산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르네사스 역시 일본 생산 원칙이라는 고집을 꺾고 해외 생산을 늘렸으며 대만기업의 위탁생산을 확대했다. 미쓰이 금속은 해외 조달을 늘렸으며 토요타와 닛산 등은 자존심을 버리고 한국산 핵심부품 구매를 논의하기도 했다.

해외 공장 이전과 외국산 부품 사용확대는 일본내 일자리를 줄이고, 핵심 기술을 해외로 유출시킬 위험이 있지만, 일본 기업들의 자국 이탈은 향후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일부 업체들은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대지진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공장간 거리도 크게 늘리고 있다. 동북부 대지진 영향력을 피하기 위해 서남부에 공장을 건설하는 식이다.

반도체업체 무라타의 대변인은 "다양한 공급선을 확보하고 있으며 생산 공장의 지리학적 간격도 크게 늘리고 있다"며 "또 일본외 다른 국가의 업체들과도 관계를 맺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일본 제조업체들의 자국 이탈 현상으로 '제조업 왕국'이라는 일본의 명성도 크게 약화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니가타대의 이반 체라츠체프 경제학 교수는 AFP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은 다시 동일본 대지진 이전의 상태가 되지 못할 것"이라며 "새로운 대규모 지진 가능성이 강하게 대두되는 것이 가장 큰 리스크 요인이며 이는 기업 입지로서 일본의 매력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일본 대지진과 태국 홍수 사태를 겪으면서 일본 제조업체의 내성도 그 만큼 강화됐다는 평가다. 대지진 사태로 'JIT'의 단점이 부각됐지만, 생산시설의 국내외 분산 및 재고관리 강화 등을 통해 일본 기업의 생산성과 경쟁력은 오히려 더욱 강화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슈뢰더투자운용의 마에다 쇼고 일본증시 대표는 "대지진과 태국 홍수로 JIT 개념이 용도폐기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다만, 업체들은 과거보다 재고를 늘리고 부품공급사와 생산기지를 지역별로 다변화시킬 것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효율성이 높아져 초기 비용상승분을 상쇄할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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