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과 싸구려

머니투데이 노엘라 바이올리니스트 2012.02.12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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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엘라의 초콜릿박스]

명품과 싸구려


얼마 전 프랑스 파리대학 연구팀은 미국 인디애나폴리스 국제 경연대회에 참가한 전문 바이올리니스트들을 상대로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했다. 총 21명에게 6대의 바이올린을 연주하도록 하고 좋은 소리를 내는 악기 순으로 고르도록 한 것이다. 이들은 악기를 제대로 알아볼 수 없도록 용접용 고글을 쓰고 실험에 응했다.

6대의 악기는 1700년대에 제작된 2대의 스트라디바리우스와 1대의 과르네리, 그리고 제작 된지 얼마 되지 않은 3대의 현대 바이올린들로 구성되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연주자들은 오래된 바이올린과 현대바이올린을 구별해내지 못했을 뿐 아니라 2대의 스트라디바리우스 중 1대는 선호도에서 꼴찌를 차지한 것이다. 심지어 대부분의 연주자들은 현대 악기를 가장 선호한 것으로 조사됐다.



바이올리니스트라면 누구나 연주하고 싶어 하는 스트라디바리우스가 아니던가? 그런데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는 이 악기가 100분의 1도 안되는 가격의 현대 악기를 이기지 못한 것이다. 만약 이 테스트가 블라인드 테스트가 아니었더라면, 연주자들이 악기가 무엇인지 알고 연주했더라면 선호도 결과가 달라졌을까?

약 5년 전 워싱턴 포스트 선데이 매거진 취재팀의 요청으로 워싱턴의 랑팡플라자에서 일어났던 한 퍼포먼스가 생각난다. 이 실험은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가 길거리 악사로 변신해 클래식 곡을 연주했을 때의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기 위한 실험이었다. 연주는 45분간 진행되었고 이를 본 시민 1000여명 중 가던 길을 멈춰 서서들은 사람은 7명뿐이었으며 연주자는 약 32달러를 벌었다. 물론 시민들은 출근길이어서 많이 바빴겠지만 만약 연주자가 조슈아 벨이었고 악기가 350만달러짜리 1713년 산 스트라디바리어스였으며 그의 티켓 값이 100달러를 웃도는 가격임을 알았더라도 과연 같은 결과가 나왔을까?



세상에서 가장 권위 있는 악기인 스트라디바리우스를 듣기 위해 모여든 청중들에게 경종을 울린 또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 바로 18세기 작곡가이자 유명 바이올리니스트였던 비발디의 우화이다. 어느 날 비발디가 스트라디바리우스로 연주한다는 소식에 연주장은 만원을 이뤘다. 연주가 시작되자 청중들은 비발디의 연주에 매료되었고 저마다 스트라디바리우스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비발디가 갑자기 연주를 멈추더니 악기를 바닥에 내동댕이쳐 버리는 것이 아닌가? 바이올린은 산산조각이 났고 관객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그 악기가 스트라디바리우스가 아닌 비발디가 미리 정해놓은 값싼 바이올린이었던 것을 안 관객들은 이내 가슴을 쓸어내리고 박수를 쏟아냈다. 비발디는 '명품'이 아닌 '싸구려' 악기로 관객을 감동시킨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권위의 법칙'에 따르기라도 하듯 '권위' 앞에 쉽게 무너지곤 한다. 또 권위가 사라졌을 때 쉽게 방향성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권위에 앞이 가려져 진정 가치 있는 것을 보지 못하거나 권위에 의해 필요이상의 가치를 부여하는 경우 역시 종종 본다. 세상을 보는 보편적인 잣대는 필요하다. 하지만 그 잣대를 아우르는 나만의 컴퍼스 역시 늘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중심은 분명 나에게 있어야 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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