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조현정 그들마저도...테마주의 씁쓸함

머니투데이 송정렬 기자 2012.01.19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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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렬의 테크@스톡]

서울올림픽 개최준비가 한창이던 1988년초. 세계 최초의 컴퓨터 바이러스인 ‘브레인 바이러스’가 전세계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이 바이러스는 파키스탄의 형제 개발자들이 불법 복제 사용자들을 골탕먹이기 위해 만든 것으로 알려져있다.

우리나라도 거의 모든 컴퓨터가 감염될 정도로 피해를 입었다. 당시만해도 컴퓨터 바이러스의 존재에 대한 인식조차 널리 퍼지지 않다 보니 대비책이 있을리 만무했기 때문. 당시 의대 박사과정에 다니던 안철수의 컴퓨터도 이 바이러스에 감염됐고, 화면에는 ‘브레인’이라는 이름이 떴다.



안철수·조현정 그들마저도...테마주의 씁쓸함


의사에서 기업가로, 기업가에서 대학교수로, 대학교수에서 청춘의 멘토로, 지금은 유력 대선후보로 부상한 인간 안철수의 인생 역정을 결정한 순간이다. 안철수는 브레인을 발견한 순간에 대해 “등골이 오싹해지기까지 했다”고 털어놓았다.

독학으로 틈틈이 컴퓨터 실력을 키워 컴퓨터도사로 통하던 안철수는 바쁜 의대생활에도 불구하고 이 바이러스를 분석해 원리를 알아냈다. 더 나아가 이를 퇴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의학도답게 ‘백신’이라는 이름을 붙여 무료로 공개했다. 그로부터 7년뒤 안철수연구소라는 기업이 만들어졌다.



1983년 8월. 당시 대학 3학년의 혈기왕성한 청년 조현정이 창업에 나선다. 사무실은 다소 엉뚱하게도 서울 청량리역 앞 맘모스호텔에 마련했다. 한달에 60만원에 달하는 비싼 방값을 내야했지만, 숙식을 한꺼번에 해결하면서 최대한 많은 시간을 일에 투입할 수 있다는 계산에서였다. 하루 17시간씩 일했다고 한다. 국내 벤처 1호인 비트컴퓨터는 그렇게 탄생했다.

비트컴퓨터의 첫 사업아이템은 보험청구프로그램이었다. 의사들은 한달에 보름정도 매달렸던 보험청구 작업을 2~3일만에 마칠 수 있는 이 프로그램에 열광했다. 150만원에 달하는 고가에도 불구하고 조현정은 창업 첫해 연말까지 무려 50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후 비트컴퓨터는 29년간 의료정보솔루션 분야에서 한 우물을 파며, 테헤란벨리 1호 입주 벤처기업, 병역특례 1호 지정업체 등 국내 벤처의 역사를 만들어왔다. 조현정 역시 벤처기업협회장 등을 역임하며 벤처생태계 활성화에 그 누구보다 목소리를 높이며 벤처업계의 맏형 역할을 해왔다.


연초부터 정치테마주로 증시가 시끄럽다. 그 중심에 안철수연구소와 비트컴퓨터가 있다. 안철수연구소의 주가는 18일 종가기준으로 딱 일년만에 647% 상승했고, 비트컴퓨터는 20여일만에 103% 올랐다. 정치가 만들어낸 마법이다.

안철수연구소의 최대주주인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은 본인의 의지가 어떻든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중 하나다. 조현정 비트컴퓨터 대표는 벼랑 끝에 몰린 한나라당의 위기탈출을 주도하는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조현정 대표가 “정치관련주라는 이유로 비트컴퓨터 주식을 사지 마세요”라고 당부해도, 금융당국이 작전세력을 발본색원하겠다는 엄포를 놓아도 불나방처럼 한방을 노린 투자자들이 몰려들고 있다.

코스닥에는 1000여개 기업들이 상장돼 있다. 잊을만하면 횡령과 비리사건이 터지고 상장폐지되는 기업도 속출한다. 지난해 핸디소프트가 퇴출된 것처럼 벤처 1세대 기업도 예외는 아니다.

유혹과 작전이 판치는 벤처나 코스닥시장에서 안철수연구소와 비트컴퓨터는 여전히 ‘초심을 잃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대표적인 기업들이다. 각각 17년 29년동안 한눈 팔지않고 정보보안과 의료정보솔루션이라는 한 분야에 천착하며 기업가치도 꾸준히 높여왔다. 또한 중소기업이지만, 창업자들의 리더십을 바탕으로 존경받을 만한 기업문화도 갖추고 있다.

때문에 정치테마가 두 기업엔 남길 상처에 대한 우려가 벌써부터 앞선다. 증시에선 테마에 휩쓸렸던 업체들은 ‘손 탄 종목’이라고 부른다. 테마열풍이 지나간 이후 해당기업들의 기업가치는 더욱 저평가되고, 개미투자자들의 피해로 인해 기업이미지는 바닥까지 추락하는 비싼 댓가를 치루기 때문.

어떤 사람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만으로도 주변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다. 벤처업계에서 안철수연구소와 비트컴퓨터가 서있는 지점이다. 하지만 이들 기업에 손 탄 기업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상황을 배제할 수 없다. 정치테마주 열풍을 바라보는 시선이 불편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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