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방굴'의 전설

머니투데이 노엘라 바이올리니스트 2012.01.07 06:05
글자크기

[노엘라의 초콜릿박스]

'산방굴'의 전설


얼마 전 제주도에 강연을 갔다 잠시 여유가 생겨 주변관광을 했다. 한라산 다음으로 높다는 산방산을 찾았는데 그 산 중턱에는 산방굴이라는 천연동굴이 하나 있었다. 이 동굴의 내부 천장에서는 약수 물이 똑똑 떨어지고 있었다. 이 물방울은 쉼 없이 흘러 아래에 작은 샘을 만들고 있는 게 아닌가. 이는 이 동굴을 지키는 여신 '산방덕'의 눈물이라고 했다.

산방덕은 본래 바위굴의 여신이었는데 인간의 삶이 궁금해 인간으로 환생했고 고승을 만나 결혼을 했다. 그런데 고을의 사또가 산방덕의 미모에 반해 그녀를 차지하고자 고승에게 살인 누명을 씌워 귀양을 보냈다. 그러자 남편을 잃은 산방덕은 절망하여 산에 올라가 자신이 왔던 곳, 바위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고 한다. 그녀가 바위로 변하고 난 뒤 바위는 하루도 쉬지 않고 고승을 그리워하는 눈물을 흘리고 있다고 전해진다.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며 흘린 눈물이 모여 샘이 되었다는 산방굴의 전설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비블리스'를 연상케 했다. 비블리스는 아폴론의 아들인 밀레토스와 강의신의 딸인 키아니에 사이에서 태어난 딸로 자신의 친 오빠를 사랑했다. 결국 자신의 마음을 고백했고 이에 놀란 오빠 카우노스가 고향을 떠나자 비블리스는 평생 그를 찾아 헤맸다. 아무리 찾아 헤매도 카우노스를 만날 수 없었던 그녀는 절망하여 하염없이 울었다. 사랑해서는 안될 사람을 사랑해버린 비블리스. 멈추지 않고 흐르는 눈물에 그녀의 몸은 녹아 내렸다. 이를 본 요정들은 이를 안타깝게 여겨 그 눈물을 마르지 않게 하였고 눈물은 모여서 샘이 되었다.

우리는 참으로 각박한 세상을 살고 있다. 셀 수 없이 많은 종류의 사람들, 정보들, 해프닝들. 하루에도 수많은 범죄와 미움과 험담이 난무하는 세상이다. 친구가 친구를 죽음으로 몰아가고 보험금을 노려 가족을 살해하고, 선생이 학생을 성폭행하고 사랑했던 사람이 상대에게 주홍글씨를 새기는 사건들을 하루가 멀다 하고 접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이 아름다운 신화가 더욱 절절하게 다가온 것은…. 사랑의 눈물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마음을 정화시키는 힘을 가진 듯하다. 산방굴에 떨어지는 약수가 우리의 몸을 씻어주는 것처럼 말이다.



산방굴에 서서 생각했다. 우리에겐 저마다 죽어서도 눈물 흘릴 만큼, 온몸이 녹아 내릴 만큼 누군가를 사랑했던 기억이 있지 않는가? 심금을 울리도록 절절한 사랑이, 목숨을 걸만큼 지고지순한 사랑이, 그 눈물이 그리워지는 날이었다. 눈을 들어 하늘을 보니 구름이 몰려와 하늘을 덮고 있었다. 구름은 곧 눈물이 되어 내릴 듯 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