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흘러 먹기 위해 소를 키우는 시대가 되었고, 미각을 즐겁게 해줄 고기는 입 밖에 얼마든지 대기하게 되었다. 굳이 질긴 고기조각을 입 안에 오래 잡아둘 이유가 없어졌다. 사람들은 한참 입 안에서 씹을 수 있는 질긴 고기보다 혀에 살살 녹는 부드러운 고기를 찾았다.
◇ 프로골퍼에서 고깃집 사장으로
임씨는 워낙 예민한 미각을 가진 터라, 운동을 하면서 단백질 섭취를 위해 온갖 고기를 다 먹어봤지만 평창에서 먹었던 암소 고기만큼 그의 영혼을 잡아끌었던 맛은 없었다고 한다. 이후 암소 고기의 뛰어난 맛과 우수성을 양용은 선수 등 주변 선후배 골퍼들에게도 꾸준히 전도하고 휴일이면 암소 고기 신자들과 함께 단골 고깃집에 꼬박꼬박 출석했다.
2008년 12월, 암소 고기에 홀딱 반한 그는 강남 대치동에 평소 그토록 찬미했던 고깃집을 열었다. 한우 고깃집은 많지만 암소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업소가 드문 점에 착안하여 암소에 무게를 두었다. 늘 승부의 세계에서 살아온 임 사장에게는 일생일대의 가장 큰 승부수를 던진 셈이었다.
이 시각 인기 뉴스
◇ 암, 그래도 쇠고기는 역시 암소지!
주인장 임씨는 평창에서 체험했던 암소 맛을 잊을 수 없었다. 그 정도 육질이라면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을 것이라고 확신했고, 오랫동안 여기저기 수소문한 뒤 대한민국 암소 고기 의 최고 전문가인 최동해 씨를 만났다. 검증 끝에 최우량 육질임을 확인하고 최씨가 운영하는 암소 전문 업체에서 암소 고기를 공급받기 시작했다.
요즘에는 거세우와 암소가 고급육의 주축이다. 오직 고기를 생산할 목적으로 기른 거세우는 근육 조직이 굵고 지방 침착이 큰 반면, 암소는 근육 조직이 촘촘한 편이다. 처음부터 마블링과 연도를 목표로 기른 거세우에 비해 암소는 기름기가 적고 연한 느낌도 덜 하지만 고소한 풍미와 씹을 때 느끼는 적당한 저작감이 거세우에 비해 훨씬 우월하다.
이 업체는 초음파 검사를 통해 육질이 가장 좋다는 3~4산 암소인지 여부, 그리고 육질과 마블링 정도를 판별한다고. 또 육질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가공실명제를 실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도축한 암소는 발골과 정형과정에서 상처 없이 깔끔하게 작업해야 고기의 상품성과 질이 높아진다.
이 과정을 확실하게 담보하기 위해 고기마다 작업한 담당자의 이름을 붙여놓는다.
깐깐한 품질관리와 작업의 결과물인 이 집 암소는 연도가 높아 옛날 암소에 비하면 엄청나게 부드럽다. 그래서 이 집 단골들은 ‘거세우는 좀 싱겁고 흐물흐물한데 암소는 고소하고 쫄깃쫄깃하다’고 말한다.
◇ 스포츠 스타는 암소를 좋아해!
한편, 주인장 임씨가 스포츠계에서 활동해오다보니 여러 스포츠 스타들과 교분을 쌓았는데 고깃집을 열면서 이들이 자연스럽게 단골고객층을 형성했다.
이 집 단골이자 주인장 임씨와 오랜 친분이 있는 산악인 박영석 대장은 이 집에 올 때마다 육회와 함께 제비추리를 찾는다. 주인장 임씨의 골프계 절친 후배인 양용은 프로는 한국에 도착하면 이 집을 꼭 방문하여 갈빗살과 알등심을 즐긴다고 한다.
개점한 지 3년이 채 안 되었지만 산악인 박영석 대장을 비롯, 축구 국가대표 조광래 감독, 서정원 코치, 영원한 세계 챔피언 홍수환 씨, 신예 골프 선수 노승렬 씨 등을 비롯한 많은 스포츠 스타들이 암소를 취급하는 이 집에 자주 드나든다.
스포츠 스타들은 아무래도 일반인에 비해 운동량이 많고 양질의 단백질이 좀 더 필요하다. 다른 사람들보다 ‘몸 생각’도 많이 하는 사람들이다. 스포츠 스타들의 원기를 보충해주고 입맛을 돌게 한 일등공신이 암소였다는 사실이 우연은 아닌 것 같다.
◇ 허영만 화백, 고기는 안창살에 마무리는 육개장으로
고기맛을 진정으로 아는 마니아들이 찾는 안창살은 암소 한 마리에 2Kg 미만 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나마도 정형과정에서 손실율이 40% 정도 발생해 희소성이 큰 부위다. 안창살은 구웠을 때 쫄깃하게 씹히는 촉감과 담백한 풍미가 일품이다. 무엇보다 마블링의 분포가 좋아 맛이 진하다.
부드럽게 씹히면서 고소한 맛이 깊은 그야말로 소고기의 황제. 이 집 단골인 <식객>의 만화가 허영만 화백이 안창살 마니아다. 허 화백은 이 집 안창살을 특이하게 새우젓에 찍어서 즐긴다고 한다.
허영만 화백이 안창살을 즐기고 나서 반드시 챙기는 음식이 있다. 바로 육개장이다. 주인장 임씨는 양지머리를 워낙 푸짐하게 넣고 끓여 팔아도 남는 게 없다고 엄살이지만 허 화백은 담백하고 얼큰한 이 집 육개장(6000원)을 <식객>에 소개하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한다고.
고기 먹은 입 안과 뱃속을 개운하게 정리하는데 이만한 해결사가 없다. 전날 과음한 뒤의 해장용으로도 좋지만 점심 때 단품으로 파는 육개장은 한 끼 식사로도 훌륭하다.
고급 한우가 비싼 강남 청담동이나 삼성동에서 이 집은 고기값이 비교적 합리적이고 부담 없는 편이다. 부담 없이 귀한 손님 접대를 위한 자리를 마련하기에 아주 적당한 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