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는 아버지가 근무하던 워싱턴 포스트에 버핏이 투자한 것을 계기로 그에게 관심을 두었다고 했다. 20년간의 기자생활을 청산하고, 버핏의 전기작가로 활동한지도 벌써 20년이 훌쩍 넘는다.
앤디는 버핏이 투자에 관한한 천재이지만, 그 보다는 30달러짜리 스테이크와 체리향 코카콜라를 좋아하는 자연인 버핏에게 매력을 느낀다고 한다. 버핏이 세계에게 가장 돈이 많은 사람이지만, '갑부'가 아닌 '현인(賢人)'으로 불리는 게 가장 맘에 든다고 했다.
주식 투자에 관한한 한국에도 버핏 못지 않은 이들이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민병갈 선생도 '투자의 대가'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는 가치에 비해 주가가 훨씬 싼 기업에 투자해 막대한 이익을 남겼다. 한 예로, SK텔레콤의 전신인 한국이동통신 주식을 4만~5만원대에 사들여 주가가 500만원에 이르도록 장기간 보유해 많은 돈을 벌었다. 1달러짜리 투자대상을 50센트에 사는 것이 버핏이 말하는 가치투자라고 본다면, 민 선생은 정통파 가치투자자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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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갈 선생이 걸어온 발자취도 버핏 만큼이나 감동적이다. 선생은 1979년 한국에 귀화했다. 미국 동부 펜실베이나주가 고향이고 원래 이름은 칼 밀러였다. 미 해군 일본어 통역장교로 1945년 한국과 인연을 맺었고, 한국은행과 쌍용투자증권 등에서 일했다. 전쟁고아를 돌보다 4명을 입양하여 훌륭하게 키웠다. 자신은 결혼도 마다한 채 싱글로 평생을 살았다.
남몰래 주위에 선행을 베풀었던 선생은 '천리포 수목원'을 세계적인 수목원으로 가꾸어, 우리 사회에 마지막 선물로 남긴 채 2002년 세상을 떠났다.
영국과 미국의 양대 펀드평가사로부터 최우수 역외 펀드매니저로 이름을 날렸던 최남철 삼호SH투자자문 대표는 민병갈 선생과의 인연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1997년 첫 만남을 가진 그 해 여름, 두 사람은 40년의 나이차를 잊은 채 천리포 수목원에서 여름휴가를 함께 보냈다. 최 대표는 민병갈 선생이 마치 성직자같이 맑았고 소박한 일상에서도 늘 흐트러짐이 없었다고 기억한다.
최 대표는 추잡한 욕심과 탐욕이 번민케 할 때마다 민병갈 선생의 진실과 사랑, 나눔의 정신이 숲이 되어 우거진 천리포 수목원의 그 오솔길을 걸을 것이라고 한다.
그는 일전에 기자에게 민 선생과의 인연이 한 토막 실린 책을 주면서 '큰 꿈꾸시고, 아름다운 부자되세요'란 글을 써주었다. 돈 버는데는 '젬병'인 기자지만 그래도 싫지 않은 덕담이었다. 따뜻한 새봄이 오면 천리포를 찾아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