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10대뉴스]③몽상가 잡스 세상을 등지다

머니투데이 송선옥 기자 2011.12.19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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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에서 '터치'로 패러다임 바꿔

2011년10월5일(현지시간) 56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한 인간의 부고 기사가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통해 전세계로 타전됐다. 바로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만든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부고를 알리는 기사였다.

[국제 10대뉴스]③몽상가 잡스 세상을 등지다


혁신과 창의, 비전과 몽상가로 상징되는 그이듯 그의 죽음은 마치 신화와 같았다. 애플 팬은 물론 애플 제품을 하나도 쓰지 않는 사람들조차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친구가 세상을 떠난 것과 같은 공허함을 느꼈다. 그가 기술자이기 이전에 한 시대의 시작이었으며 기술과 인문학을 결합한 철학가였기 때문이리라. 개인용 컴퓨터(PC) 산업의 개척자이자 책상위의 PC를 손위로 가져온 혁신가에게 보내는 세상의 마지막 인사였다.



잡스는 1955년2월24일 미 샌프란시스코의 한 대학원생 동거 커플에게 태어나 태어난지 얼마 안돼 입양됐다. 이 동거 커플은 잡스를 입양보낸 후 결혼해 가정을 꾸렸다. 잡스는 이들의 존재를 부정했으며 오히려 기술 다루기를 즐겨하고 완벽주의를 추구하던 양아버지에게서 애플의 핵심가치가 될 만한 것들을 전수받은 것을 기뻐했다.

더 큰 아이러니는 잡스 또한 23살이 되던 해 여자친구 크리스 앤과의 사이에서 딸을 얻었지만 불임이라고까지 주장하며 딸의 존재를 부정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애플 초기 컴퓨터의 이름을 ‘리사’라 지으며 화해의 손을 내밀고 1991년3월 로렌 파월과 결혼하면서 10살이 된 리사를 데려와 키우며 딸을 인정하게 된다.



잡스는 1976년 동네 형인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창고에서 애플을 창업했다. 1977년 개인용 PC인 애플II를 세상에 내놓으며 PC 시대를 알렸고 1984년에는 128K램 메모리를 장착한 맥킨토시 컴퓨터를 선보이며 애플 매니아들을 만들어 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1985년 잡스는 자신이 직접 영입한 코카콜라 출신 존 스컬리 최고경영자(CEO)에 의해 추출돼 애플을 나와 새로운 회사인 넥스트를 설립하게 된다. 넥스트가 지지부진한 사이 맥에 이은 잡스의 두번째 홈런은 예기치 못하게 터진다. 바로 1986년 인수한 픽사다. 1995년 픽사가 제작한 토이스토리는 박스 오피스를 점령하며 미국과 캐나다에서만 1억9100만원달러의 수익을 올려 잡스의 재기를 알렸다.

픽사의 성공을 배경으로 잡스는 1995년 파산 직전의 애플로 복귀한다. 12년만의 친정복귀였다. 잡스는 이후 2001년 아이팟, 2007년 아이폰, 2010년 아이패드 등 최고의 히트작품을 잇따라 내놓으며 ‘클릭’에서 ‘터치’로 정보기술(IT)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그러나 검은 그림자가 그의 인생에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2004년 중반 췌장암 진단을 받은 것이다. 그는 같은해 첫번째 병가를 내고 수술을 받았지만 암세포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그의 사망 이후 잡스는 췌장암 수술 대신 대안치료에 열중하다 결국 치료시기를 놓쳤으며 이를 크게 후회한 것으로 전해졌다. 잡스는 이후에도 병가와 수술을 반복하면서 병마와 싸웠다.

그 와중에도 삼성전자 (78,400원 ▼500 -0.63%) 등 경쟁 태블릿PC에 대해 “(시장에 도착하자마자) 사장될 것(DOA)”이라는 독설로 건재함을 과시했으며 대중을 사로잡는 프리젠테이션과 깜짝 등장으로 애플 제품에 신비감을 부여했다.

세상은 이제 ‘포스트 잡스 시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애플은 삼성전자 (78,400원 ▼500 -0.63%) HTC 등과 치열한 특허전쟁을 진행중이며 투자자들은 그의 후계자들이 잡스의 가치를 이어받을 수 있을지에 노심초사하는 모습이다. 현재 애플에게 필요한 것은 잡스의 신화가 아닌 잡스가 가졌던 자신감과 역경에 굴하지 않는 도전정신일 것이다. 바로 “항상 갈망하고 항상 우직하라(Stay Hungray, Stay Foolish)”라는 잡스의 말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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