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고리를 입은 단발머리 소녀. 두 손을 모으고 다소곳하게 앉은 소녀의 그림자 위에는 나비 한 마리가 날아간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1000회를 맞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수요시위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평화비' 모습이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어린 시절 모습을 형상화한 이 조각은 1000번째 시위가 열리는 14일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세워질 예정이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외침이 20년간 이어지면서 이제 화두는 이 역사적 사실을 '알리기'에서 '기억하기'로 옮겨졌다.
가장 큰 변화를 이끈 것은 피해자 할머니들의 공개 증언이었다. 1991년 8월 김학순(당시 67세)할머니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였음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열여섯 나이에 강제로 끌려간 김 할머니는 "당시 당했던 일이 하도 기가 막히고 끔찍해 평생 가슴 속에만 묻어두고 살아왔다"며 "국민 모두가 과거를 잊은 채 일본에 매달리는 것을 보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고 한을 풀어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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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대구에서 문옥주 할머니가 공개 증언을 하는 등 피해자 할머니들의 적극적인 증언과 시민단체들의 활동으로 국내에서는 1993년 '일제하 종군위안부 생활안정지원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국외에서는 1993년 UN세계인권대회 결의문에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포함됐고, 1996년 UN인권위원회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가 국제법적 책임이 있다는 내용의 정식 보고서가 제출되는 등 국제기구와 시민단체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요시위에 꾸준히 참석하는 위안부 피해자 강인출 할머니는 아무런 대답이 없는 일본 정부를 향해 "이런 식으로 우리가 죽기를 기다리는 것 같다"고 했다. 강 할머니는 증언할 피해자가 모두 세상을 떠나면 문제도 함께 묻히길 바라는 듯 한 일본 정부의 태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한일 협정 얘기하면서 보상 다했다고 하는데 정작 우리는 보상도 사죄도 받은 적이 없다"며 "우린 죽더라도 다 (말)하고 죽을 것"이라고 말했다.
할머니들의 증언을 기록하고 '기억하기' 위한 작업은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일본에 살고 있는 위안부 피해자 송신도 할머니가 10년간 일본 정부를 상대로 치른 법정싸움을 필름에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등 영상물과 출판물 제작이 이어지고 있다.
정대협도 현재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 건립을 준비 중이다. 개관 예정일은 내년 3월. 정대협 관계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생애와 문제해결을 위한 운동사 등을 전시한 박물관을 통해 이 같은 범죄가 재발되지 않길 바란다"고 설명했다.
↑ⓒ(서울=뉴스1) 박철중 기자= 제999회 수요집회가 7일 오후 서울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 촉구 집회인 수요집회는 오는 14일 1000회를 앞두고 있다. 사진은 일본 대사관 옆에 건립을 추진하다 종로구청으로부터 거부당한 '소녀상' 사진이 할머니들 앞에 놓여있다.
이날 일본 도쿄에서는 '외무성 인간 사슬로 포위하자'는 슬로건으로 집회가 진행되는 등 삿뽀로, 나고야, 후쿠시마, 오사카 등 일본 전역에서 집회가 계획돼 있다. 미국 뉴욕에서는 홀로코스트 피해자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함께 전쟁 피해를 알리고 평화를 촉구하는 행사가 열린다.
1000회 시위에서도 할머니들은 △전쟁범죄 인정 △진상규명 △공식사죄 △법적배상 △전범자 처벌 △역사교과서에 기록 등을 일본 정부에 촉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