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원·200원·1000원…노숙인의 생계수단 '짤짤이'들어보셨나요?

뉴스1 제공 2011.12.10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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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지원 많아도 재기 힘든 이유…노숙인 하루 동행해보니

(서울=뉴스1) 정윤경 인턴기자 =
노숙인들이 이른 아침부터 '짤짤이'를 받기위해 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News1 노숙인들이 이른 아침부터 '짤짤이'를 받기위해 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News1


'짤짤이' 혹은 '꼬지'로 불리는, 노숙인들 사이에서만 통용되는 은어가 있다.

교회나 성당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노숙인들에게 나눠주는 구제금을 노숙인들은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적게는 100원에서 200원, 많아야 1000원을 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마저도 과분한 호사라고 노숙인들은 말한다. 열심히 발품을 팔면 제법 쏠쏠한 '목돈'을 만질 수 있기 때문이다.

100명이면 100명, 제 시간에 맞춰 찾아오는 제한된 노숙인에게만 구제금을 주기 때문에 경쟁도 치열하다. 심지어 짤짤이를 제공하는 종교 단체와 위치 등은 철저히 '영업비밀'에 부쳐지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파악한 전국의 노숙인 수는 9월 현재 4450명에 달한다. 지난해(4187명) 보다 263명 더늘었다. 4계절 중 노숙인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겨울이 시작되면서 짤짤이에 의존하는 노숙인들이 더 많아졌다.

뉴스1이 한 노숙인과 함께 '짤코스(짤짤이 코스)'를 돌며 그 실태를 들여다 봤다.

◇ 짤짤이도 부지런해야 많이 번다


8일 오전 6시40분. 약속장소인 혜화역에서 노숙인 김인혁(52·가명)씨를 만났다.

이렇게 일찍부터 나가냐는 질문에 "오산 쪽으로 짤짤이 코스 돌 때면 5시 39분 첫 차를 타야 하는데 이 시간이면 그렇게 이른 시간도 아니지"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다리를 저는 것 외에 때 묻지 않은 남방에 가죽자켓, 새 것 처럼 보이는 운동화 차림의 그에게서 노숙인의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데 생각이 미칠 무렵, 김씨는 재작년 12월부터 성균관대 학생과 함께 혜화동의 원룸에서 살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봉사활동을 하던 젊은 친구가 종각역에서 노숙하고 있는 나를 제 집으로 데려온거야. 고마운 일이지." 김씨는 요즘도 그런 젊은이가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듯 했다.

우리 맞은편에서 모자를 쓴 거구의 사내가 손을 흔들며 다가오더니 중계동으로 짤짤이를 간다는 말을 남기고 발길을 재촉했다.

짤짤이 정보를 어디서 얻는지 궁금했다. 김씨는 정말 친한노숙인들 외에는 짤짤이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다고 했다.

일주일 동안 돌아다니는 코스가 다 다르고, 구제금을 제공하는 교회와 성당도 여기저기 퍼져 있어 길을 못찾고 헤매는 노숙인도 많다.

수첩에 빽빽하게 적어서 다니는 노숙인도 있지만 그 마저도 훔쳐가는 일이 빈번하다고 김씨는 알려주었다.

노숙인들이 많아질수록 구제금을 끊는 곳도 많아지고, 구제금액도 낮아져 아주 친한 사이가 아닌 이상 함부로 짤짤이 정보를 넘겨주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 치열한 경쟁, '짤짤이 확인증' 까지 생겨나

철산역에 도착해 첫 방문지인 K교회로 향하는 동안 한 무리의 노인들이 잰걸음으로 바쁘게 이동하는 것을 발견했다. "저거 다 짤짤이 하러 가는거야. 저렇게 가방 매고 빠른 걸음으로 몰려 다니는 노인들은 대부분 노숙인이라고 보면 돼" 김씨는 씁쓸하게 웃었다.

K교회에 도착한 그는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교회로 들어가더니 3분도 채 되지 않아 푸른 종이를 반으로 접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종이가 무엇인지를 묻자 '확인증'이라고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짤짤이 확인증'까지 생겨났다. News1 치열한 경쟁 속에서 '짤짤이 확인증'까지 생겨났다. News1
펼쳐든 종이에는 월별로 그가 K교회를 다녀간 흔적이 남아 있었다. 한 번 다녀간 노숙인들이 모자를 쓰고 다시 나타나거나 변장을 하고 재방문해서 구제금을 가져가는 일이 잦아지자 이런 확인증까지 생겼다고 그는 설명했다.

"나 같이 양심 있게 행동하는 노숙인들한텐 꼭 있어야해. 두 번 세 번 타가는 노숙인들이 생기니까 중간에 짤짤이가 끊기거든. 그러면 싸우고 멱살 잡고 난리가 나는거지. 민원신고까지 들어오니까 교회들이 구제금을 아예 끊는 거야." 그는 교회의 입장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김 씨는 K교회에서 1000원을 받을 수 있었다.

◇부자동네가 더 심해

B교회에서 나오는 그의 표정이 밝아 보였다. 원래 500원의 구제금을 주는 곳인데, 다리가 불편한 걸알고는 500원을 더 받았다며 웃어 보였다. 김씨는 짤짤이를 하면서 싸움이 나면 말리고, 노숙인을 위한 행사에서는 질서 유지 자원봉사를 자처한다. 그렇게 하다보면 그런 김씨의 노력을 알아주는 교회에서 웃돈을 얹어 준다는 것.

다음 코스인 J교회로 향하던 중 김씨의 지인들과 마주쳤다. 이미 한 잔을 했는지, 얼굴이 벌게진 남자가 김씨에게 소주 한잔 하러 가자고 말을 건넸다. 김씨가 고개를 젓자 앞서 걸어가던 남자가 손을 들어 '우리 먼저 가겠다'는 표시를 하고는김씨를 지나쳤다.

"저 앞서 가는 사람이 이 바닥에선 왕초격이야. 이 구역 짤짤이가 하나 둘 끊기고 있었는데 저 친구가 교회들을 설득해서 그나마 형편이 나아졌지"라고 소개했다.

이어 "왜있는 사람들, 부자들이 더 하다는 말이 있잖아. 방배·서초·사당 그 쪽은 정말 그야말로 짤짤이야. 200원 주던 것도 100원으로 낮춰서 주고 그래. 100원이라니(웃음). 교회도 엄청 으리으리한데 말이지"라며 혀를 찼다.

'짤짤이'를 위해 무단횡단을 하다 사고를 당하는 경우도 자주 발생한다. News1 '짤짤이'를 위해 무단횡단을 하다 사고를 당하는 경우도 자주 발생한다. News1
◇ 짤짤이로모은 돈, 술·경마 등에 탕진

김인혁씨는 이날 다섯 군데를 돌아다니며 총 4000원을 벌었다.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약 10km를 걸어 다녀야 했다.

"한 때는 하루 1만2000원까지도 벌었었지. 근데 다리가 불편하니까 힘들고…그래서 욕심을 버렸어."

김씨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많이 버는 사람이야 하루 2~3만원까지도 벌지."

그렇게 번 돈을 다 어디에 쓰는 걸까. 김씨는 "나는 관리비 내는 것 빼면 담배 사는데 주로 쓰고, 다른 사람들은 술, 담배, 경마 같은데 쓰지. 어떻게든 벗어나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긴 한데, 그런 사람들은 고시원이나 PC방을 전전하면서 쓴다"고 말했다.

경마와 같은 도박과 복권에 물 쓰듯 쓰는 노숙인들이 많다고 했다.

"애초부터 서서히노숙인이 된 사람이 없어. 한 순간에 몰락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지. 그렇기 때문에 조금씩 아껴서 공든 탑을 세우고 싶어하지 않아. 빨리 망한 만큼 한 순간에 대박이 나는 삶을 꿈꾸고 원해. 그래서 경마장에 가고, 도박을 하고, 복권에 빠질 수밖에…." 김씨의 분석은 날카로웠다.

"아는 사람이 용역 일을 한 달간 해서 기껏 50만원을 벌어 놓고는, 이틀 만에 경마장에서 다 날리고 나한테 손을 벌리더라고. 밥 먹게 200원만 달라는 거야." 그는 이해할 수 있겠느냐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 보았다.

짤짤이를 다니는 노숙인들은 용산역과 광화문역, 종각역, 영등포 근처 등지에서 실시하는 무료급식을 통해 끼니를 해결하고 있었다. 교회나 성당에서 구제금 대신 빵과 우유를 주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김씨도 이날 용산역 근처 무료급식소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정부 지원 많아도 노숙인 재기힘들 것

정부나 시민단체의 충분한 지원이 있으면 노숙인들도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겠냐는 질문에 그는 손사래를 쳤다.

김씨는 "웃긴 것이, 지금도 노숙자를 위한 쉼터는 늘어나고 있는데 길거리 노숙자들은 안 줄잖아. 예를 들어 1000명중 100명에게 쉼터를 제공하면 길거리에 900명이 남아야 하는데, 또 1000명이 돼"라며 헛웃음을 쳤다.

그는 "오히려 일자리도 구하기 어렵고 사업에 실패하는 사람도 늘어나 요즘은 젊은 노숙자들도 많이 생겨났지"라고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김씨는 "'구걸할 힘으로 일을 하라'고 말들 하지만 나처럼 신체적으로 장애를 가진 사람도 있고, 정신적으로 질환을 갖고 있는 사람도 적지 않다"며 "요즘엔 외국인 노동자들도 많아져서 그나마 있던 일 자리 구하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노숙인 대부분이 끈기가 없어일자리를 구해도 오랫동안 일하지 못하고 다시 노숙인으로 돌아오고 만다"는 말도 덧붙였다.

현재 서울시 노숙인 수는 6월 현재 2847명이다. 이 중 쉼터 노숙인은 1843명, 거리 노숙인은 622명이다. 보건복지부 사회복지정책실 신춘호 담당자는 "노숙인을 위한 자활프로그램 참여율이 약 20% 정도로 낮으며, 독립에 성공하는 노숙인도 많지 않다"고 말했다.

꿈이 있냐는 질문에 노숙인 김씨는 "다시 태어나는 것이 꿈을 이루는 가장 빠른 길이라 생각해"라고 답했다.  News1꿈이 있냐는 질문에 노숙인 김씨는 "다시 태어나는 것이 꿈을 이루는 가장 빠른 길이라 생각해"라고 답했다. News1
◇ 꿈이 있냐고? 죽어서 다시 태어나는 게 빠르지 않을까

그는 짤짤이도 예전 같지 않다고 했다. 노숙자가 늘면서 경쟁이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얼마전에 부산에서 노숙자가 올라왔어. 부산에서 짤짤이·구걸로 활개를 치고 다니던 노인인데, 그 지역 다른 노숙인들이 돈을 모아 표까지 끊어서 내쫓다시피 했지"라며 그는 껄껄 웃었다.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짤짤이를 돌기 위해 서두르다 무단횡단 등 교통사고를 당하는 경우도 많아졌다고 김씨는 전했다.

그에게도 꿈이 있을까. 한참을 고민하던 그는 "죽어서 다시 태어나는 것이 빠르지 않을까"라면서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평범한 직장인으로 가족과 가끔 외식하는 삶을 살고 싶다"며 어렵게 입을 뗐다.

노숙자들 중 미래를 생각하며 하루를 사는 사람은 없다고 김씨는 말했다. 그들에겐 오직 '지금'만이 존재할 뿐이다.

"노숙자들은 지금 짤짤이를 해서 돈이 생기면 담배를 사고, 경마장에 갈 생각 뿐이야. 미래를 그리면 참담하니까 아예 생각을 않는 거지"라면서 그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김씨는 물론 김씨와 같은 처지의 많은 노숙인들이 내일도, 모레도 오늘처럼 짤짤이를 받기 위해 거리로 나설 것이다. 그들 가슴에 '삶과 희망'을 품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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