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재건축시장 급랭 주범은?

머니투데이 송지유 기자 2011.12.01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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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박원순 공포'가 시장 얼렸다?

"토지 기부채납, 임대주택 건립 등 서울시의 요구를 다 받아들였는데 이제 와서 뭘 더 검토하라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네요. 수년을 참고 또 참고 기다린 대가가 정비구역 지정보류라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서울 강남구 개포지구 A재건축아파트 조합원)

"박원순 신임 서울시장이 강남 재건축에 부정적이라는데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겠어요? 개포지구 보세요. 재건축이 늦어지면 비용이 늘어나는 것은 불 보듯 뻔한데 주민들이 감당해낼 수 있을 지 걱정입니다." (서울 강남구 B재건축아파트 조합원)



강남 재건축시장 급랭 주범은?


서울 강남권 재건축아파트 시장이 '박원순 공포'에 떨고 있다. 박원순 신임 서울시장이 재건축에 부정적인 입장이어서 사업이 지연될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는 것. '10·26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 이후 강남 재건축 거래가 끊기고 가격이 급락하고 있다는 분석도 잇따르고 있다.

최근엔 강남 대표 재건축단지인 대치동 은마아파트의 재건축 정비계획안 주민공람이 전격 취소된데 이어 서울시가 개포지구의 재건축 정비구역 지정안을 잠정 보류하면서 재건축 조합원을 비롯해 투자자의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재건축 시장 악재된 은마와 개포…투자자들 "나 떨고 있니"

지난해 3월 정밀안전진단을 통과하며 사업 추진에 박차를 가해왔던 은마아파트의 재건축이 또다시 난항에 빠졌다. 강남구청이 은마아파트 재건축 정비계획 및 정비구역 지정안을 내놨지만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주민공람 절차가 잠정 중단됐기 때문이다. 강남구의 제안대로라면 일반분양물량이 줄고 장기전세주택 등 임대주택이 늘어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게 주민들의 주장이다.

총 4424가구로 대단지인 은마아파트의 주민공람은 강남 재건축 시장에서 손꼽아 기다려온 호재였다. 하지만 이 호재가 악재로 바뀌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강남구청의 은마아파트 주민공람 계획 발표는 지난 11월13일. 하지만 주민들은 그 다음날인 11월14일 공람 거절 의사를 밝혔다. 강남 재건축 시장은 그야말로 채 달궈지기도 전에 찬물을 뒤집어쓴 꼴이 됐다.

은마에 이어 개포지구에서도 일이 터졌다. 서울시가 지난 11월16일 도시계획위원회를 열고 강남구 개포동 주공2단지, 주공4단지, 시영아파트 등 3개 단지에 대한 재건축 정비구역 지정을 보류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서울시는 "대규모 재건축인 만큼 논의가 더 필요하다"고 설명했지만 구체적인 보류사유가 밝혀지지 않아 시장은 혼란에 빠졌다. 이번 심의 보류로 내년 초엔 조합설립에 들어가 이주·철거를 빠르게 진행한다는 주민들의 계획은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시장에선 "정비사업 속도를 조절하겠다"는 박원순 시장의 공약이 현실화되고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개포동의 C중개업소 관계자는 "주민들 모두가 이제 사업이 본궤도에 오른다고 기대하고 있었는데 서울시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일 것"이라며 "자금난을 어렵게 버티며 하루하루 재건축을 기다려온 조합원들이 많아 실망이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러다 사업이 물 건너가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는 투자자들이 많다"며 "은마에 이어 개포까지 사업에 제동이 걸리면서 그렇지 않아도 많지 않던 매수대기자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고 덧붙였다.

◆재건축 가격 급락했다는데…신임시장 취임 후 얼마나 빠졌나

부동산 시장에서 통용되는 지표를 살펴보면 재건축아파트 값은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 이후 단기 급락한 것이 아니라 3월 이후 꾸준히 하락했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 1∼2월 소폭 오름세로 출발한 서울 강남구 재건축아파트 값은 3월 이후 내림세를 지속하고 있다. 지난 3월에는 전달보다 가격이 0.48% 빠지더니 6월에는 1.12%, 9월에는 2.77% 하락했다. 미국 국가신용등급 강등 사태 여파로 9월 하락폭이 가장 컸다. 지난 10월에는 1.01%, 11월(18일 현재)엔 1.49% 내림세를 기록했다. 시장의 우려와 달리 신임시장 취임 이후 하락률은 취임 이전과 큰 차이가 없는 셈이다.

강남 재건축시장 급랭 주범은?
최근 부동산 시장의 '뜨거운 감자'인 강남 개포지구도 마찬가지다. 개포동 재건축아파트 값은 2월 하락세로 돌아선 이후 매달 1%를 웃도는 마이너스 변동률을 보였다. 지난 9월에는 5.28% 급락하기도 했다.

강남 주요 재건축아파트의 가격은 올 초보다 1억원 안팎 떨어졌다. 신임 서울시장 취임 후 큰 폭으로 떨어졌다기보다 봄부터 시세 하향조정이 이어졌다. 올 초 8억2000만원을 호가하던 개포주공1단지 42㎡(이하 공급면적)는 11월18일 현재 6억8000만원선이다. 같은 단지 36㎡는 올 초 7억2000만원에서 최근 5억8000만원으로, 49㎡는 올 초 9억원에서 최근 7억80000만원으로 각각 하락했다. 올 초 6억7000만원선이던 개포시영 44㎡는 현재 5억8000만원까지 떨어졌는데도 주인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101㎡는 올 초 9억8000만원에 거래됐지만 최근 8억7000만원으로 하락했다. 올 초 11억7000만원에 거래된 이 단지 115㎡는 최근 10억6000만원선이다.

◆"박원순 효과, 시장 침체 주범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재건축 시장이 약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장기 침체국면을 맞았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박원순 신임시장 때문에 가격이 급락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박원순 시장 당선 이후 투자심리가 더 위축돼 재건축 거래나 가격이 당분간 회복세로 돌아서기는 쉽지 않다는 견해도 있다.

김규정 부동산114 팀장은 "강남 재건축 시장을 되돌아보면 올 초부터 약세를 지속하다가 8월 미국 국가신용 등급 강등 여파가 반영되면서 9월에 급락했다"며 "박원순 시장 당선 이후 부담을 느끼는 투자자들이 늘고 있긴 하지만 가격 급락으로 이어지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분석했다.

개포지구에서 오랫동안 부동산 중개업소를 운영해온 이창훈 남도공인 대표는 "신임시장이 재건축 사업에 부정적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매수대기자들이 관망세로 돌아선 것은 사실이지만 가격이 큰 폭으로 떨어지지는 않았다"며 "올 들어서만 평균 1억∼1억5000만원 안팎 가격이 하락한 만큼 추가 하락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함영진 부동산써브 실장은 "올 초 반짝 상승세를 보였던 재건축 시장은 이미 수개월째 하락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실수요가 아닌 투자자 중심의 시장이다 보니 작은 악재에도 매수자들의 심리가 급격히 얼어붙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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