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근성과 긍정적 마인드로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에너자이저

머니투데이 황해원 월간 외식경영 2011.11.03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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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간 30여 업소에서 축적한 미각으로 불고기양념 맛 일품 '불고기 전문가 류경선 장인'

인생은 ‘외생변수(外生變數)’의 연속이다. 예기치 못한 위기와 뜻하지 않은 희로애락의 순간들이 만나 삶이 완성된다.

누군가의 인생에서 일반적인 잣대가 통용될 수 없는 것도 시시때때로 변하는 상황과 변수에 따라 삶은 계속해서 달라지기 때문이다.

불고기 소스 전문가 류경선 씨는 20년 간 식당업에 몸담으면서 많은 시행착오와 변화를 겪어야 했다.



한때는 몇 안 되는 ‘젊은 실력파’로 손꼽히며 안하무인으로 살기도 했고, 어떤 때는 문 닫기 일보 직전인 식당에서 가슴 졸이는 사장의 삶을 지속하기도 했다. 희로애락의 순간들이 겹겹이 쌓인 시간이었지만 단 하루도 칼을 놓을 수 없었던 건 목표 때문이다.

◇ 음식과 맛은 고집이자 욕심
승부근성과 긍정적 마인드로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에너자이저


한번 ‘옳다’ 생각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의지를 꺾는 일이 없다. ‘ 독불장군’이라는 말도 들었을 만큼 혼자 가야 하는 길 앞에서 단 한 번도 스스로 연약해진 적이 없다.



청소년 딱지를 갓 뗀 스무 살 무렵부터 우연찮게 식당업에 발을 담게 된 이후, 행여 어리다는 이유로 무시 받지는 않을까 싶어 이 악물고 살았던 시간이 지금의 단단한 그를 만들었다.

20년 전 서울 강남 뉴욕제과 뒤편에 위치한 샤브샤브전문점 <호정>이라는 음식점에서 그릇 닦는 일부터 시작했다. 주방이라는 곳이 원래 총 없는 전쟁터나 다름없지 않은가.

선후배 간의 위계질서나 텃세가 심한 그곳에서 류 대표는 무조건 고개를 숙이고 자세를 굽혀가며 배우는 것에 힘을 쏟았다. 처음엔 아무에게도 지는 것이 싫어 필사적으로 매달렸던 주방 일에 재미를 붙인 건 제면기에서 국수를 뽑는 일을 배우면서부터다.


1년 후 <일억조>로 무대를 옮겼고 그 후로도 <대청마루>, <한우촌>, <송추가마골> 등 약 유명한 30여 군데의 음식점을 다니며 경험을 쌓고 노하우를 터득했다. 기본 업무부터 육류 관련 조리 기술까지 배우면서 자신감과 성취감이 생겼다.

또 <봄봄비빔국수> 황수창 대표를 만나 인생살이의 노하우를 배웠던 시간은 삶의 전환점이 되어 그를 더욱 단단하고 용기 있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첫 주방장의 이름표를 단 것은 그의 나이 스물일곱 때. 서울시 용산구 남영동에 위치한 <한국관>으로 오면서 그는 메인 주방장이 됐다. 위에서 누군가를 감독하고 지휘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맛’을 제대로 만들 줄 아는 달인이 되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했다.

당시 <한국관>은 생고기 전문점이었지만 업무가 끝난 후엔 밤을 새면서 갈비, 불고기 양념을 만드는데 주력했다. 감칠맛을 이해하기 위해 스스로 양념을 공부한 것이다. 그러길 20년이 지난 지금은 냄새만으로도 맛을 느낄 만큼 숙련됐다.

지난 시간은 언제나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휘한다. 마음에 상처를 받았던 이에게 시간은 약이 되고, 스스로 최선을 다 하는 이에겐 내실과 내공이 된다. 그 역시 지난 시간만큼 완전한 맛의 감각과 기술이 내공이 됐다.

그것은 독불장군 저리가라 할 만큼의 고집과 승부근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에게 음식은, 또 맛은 고집이자 욕심이다.

◇ 최고의 불고기 전문가 되기 위해 더욱 담금질
어느 날 아버지가 그를 불렀다. “너도 이제 네 사업을 시작해야 하지 않겠느냐.” 사실 그 사이 결혼도 하고 아내는 첫 아이를 가졌을 때라 안정적인 수익을 일궈야 했다. 적잖은 시간 동안 다부지게 배워 온 것들을 하나로 조합하는 일만 남은 셈이었다.

“당시 이 자리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농토와 몇몇의 가정집이 전부였지, 제대로 된 식당 하나 없었어요. 사람들이 저더러 미쳤다고 했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그 땐 무슨 오기와 깡으로 이 메마른 곳에 가게 문을 턱 하고 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부터 9년 전, 허허벌판이던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의 지금 이 자리에서 ‘황가설등심’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한우 등심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류경선 씨는 말주변이 좋고 영업력이나 적극적인 자세도 타고나 빠른 시간 안에 손님을 모을 수 있었다.

매장을 오픈하기 전부터 사람들은 그곳을 ‘황무지’라고 혀를 찼지만 그러한 곳에서도 그는 단비를 뿌리는 재미를 알아 갔다. 그가 만든 불고기와 갈비 소스 맛을 본 사람마다 고소함에 흠뻑 빠져 들었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불고기 양념과 소스 분야에서 대한민국 최고가 되기 위해 더욱 자신을 담금질 했다.

◇ ‘소스 비법 알려 달라’는 발길 줄이어
그러나 2003년 광우병 문제가 터지자 거짓말처럼 발길이 뚝 끊겼다. 그나마 왕래하던 단골손님들도 ‘지금은 시기가 아닌 것 같다’는 말만 연신했다. 직원들 월급도 3개월째 밀리고 있는 상태였다.

“항상 그랬듯 이번 문제도 금방 지나가리라 믿었습니다. 밤새 잠도 못 자고 뒤척이며 가슴을 졸이다가 결국 다른 돌파구를 찾았어요. 오래 전부터 자신 있었던 양념 돼지갈비였습니다.”

한때 감칠맛 나는 고기 양념을 만들기 위해 혼자서 부단히 노력했던 시간으로 거슬러 갔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그만의 담백하면서도 달착지근한 양념 맛에 매출은 다시 상승곡선을 타기 시작했다.

단골고객이 예전보다 훨씬 많아지면서 매출은 급속히 올랐고, 그간 밀렸던 직원 월급도 단숨에 해결했다. ‘돼지갈비 맛있는 집’으로 정평이 나면서 ‘소스 비법을 알려 달라’며 찾아오는 이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이만큼 할 수 있었던 것은 위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절망적인 순간이 닥쳤을 때 그대로 맥없이 주저앉는 사람과 도전과 오기로 덤비는 사람의 인생 결과는 판이합니다. 욕심이 있어야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법입니다.”

◇ 브라보! 맛있는 그의 인생을 위하여
승부근성과 긍정적 마인드로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에너자이저
그가 생각해도 자신의 돼지갈비 맛은 최고다. 결코 자만이 아니다. 20년 간 축적된 혀끝의 감각과 후각으로, 적어도 양념갈비의 풍미는 전국 1등이라고 스스로 자신한다. 갈비와 불고기 맛을 구현하는데 전심(全心) 다해 성실했기 때문이다.

모든 게 다 잘 될 것이다. 그는 이러한 사실을 철썩 같이 믿고 있다. 20년 전 세운 목표와 이상은 현실이 되어가고 있고, 지금도 새로운 모티브를 가슴에 새기고 계속해서 도전하고 시작하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언젠가는 목표한 길을 완주할 것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어쨌거나 브라보! ‘류경선 표’ 갈비만큼이나 맛있는 그의 인생을 위하여.

이제 불고기 전문가로 널리 알려진 그는 불고기와 갈비 소스에 대해 배우고 싶은 창업자나 식당 업주들이 있으면 언제든지 성심성의껏 전수하겠다고 한다.
류경선 씨에게는 요즘 목표가 하나가 늘었다. 외국인에게 가장 어필할 수 있는 우리 한식 아이템 직화구이 불고기와 갈비를 해외에 전파하겠다는 목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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