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영부영 4년 보내느니" 고졸취업 선배PB의 조언

머니투데이 오정은 기자 2011.10.14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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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졸 취업, 현장에선] 사회 조기 적응 장점… 취업후 학업·승진 기회도

외국계 은행에서 일하는 A씨(37)는 90년대 초반 한 은행에 텔러로 입사했다. 여상을 졸업하자마자 시작한 텔러 업무는 쉽지 않았다. 오후 4시에 은행 셔터가 내려가면 계산이 맞을 때까지 돈을 세고 또 셌다. 한 선배의 "일이 힘들겠지만 야간대학을 다녀보라"는 권유에 주경야독하며 야간대학을 졸업했다.

IMF의 찬바람이 불던 1998년 A씨가 다니던 은행은 한 외국계 은행에 합병됐다. 합병 뒤 A씨는 한때 "과장이 되긴 힘들지 않을까" 걱정도 했다. 하지만 "겸손한 태도가 마음을 끈다"는 평가에 부유층 자산을 관리하는 프라이빗 뱅커(PB)가 됐다. 10대 후반에 입사했기 때문에 어린 축에 속하는 A씨의 직함은 현재 외국계 은행 차장이다.



고졸취업에 대한 사회의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고 있다. 서울대생도 입사하기 힘들다는 금융권에도 고졸 합격자가 늘고 있다.

지난달 고졸 정규직 특별공채를 실시한 한국금융투자협회는 고졸 합격자 3명을 선발한 상태다. 금융감독원도 현재 고졸 공채를 진행중이며 다음달에는 합격자를 배출할 예정이다.



박병주 금융투자협회 자율규제본부장은 "지난해까지는 특성화고에서 금융권에 취업하기가 힘들었지만 올해 많이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특성화고에선 진학반과 취업반 중 진학반의 인기가 더 높았다. 하지만 최근 이런 분위기가 역전되며 취업반으로 눈길을 돌리는 상위권 학생들이 많아졌다. 바로 고졸 취업이 갖는 장점과 특혜 때문이다.

금융업계의 한 관계자는 "금감원 같은 곳은 서울대생도 줄줄이 떨어지는 곳인데 고졸특별 공채는 하늘이 준 기회나 마찬가지"라며 "대학만 경험이 아니고 사회생활도 경험인데 일찍 사회에 나가 경력을 쌓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말했다.


고졸 취업의 가장 큰 장점은 남들보다 빨리 사회생활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취업난이 심각해지면서 대졸 신입의 평균연령은 20대 후반으로 점차 늦어지고 있다. 고졸로 취업할 경우 20세에 입사해 20대 중반이면 대리급으로 승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남들보다 빠른 승진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다.

또 고졸 입사자들은 요즘 대졸 공채에 응시하는 지원자들이 가진 학벌, 자격증 등 소위 '스펙'과는 차별화된 '경력'을 보유하고 있다. 현장에서 일해본 경험, 바로 실무능력이다.

한 증권사의 인사책임자는 "우리가 필요한 인재는 단순히 공부를 잘하고 화려한 스펙을 지닌 인재가 아니다"며 "실무에 투입해서 당장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근성 면에서는 대졸이나 고졸이나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오히려 대졸자들이 밀린다는 것이다. 특히 증권업 특성상 주식시장의 등락에 따른 막대한 스트레스를 견딜 수 있는 '긍정적인 마음가짐'이 필요한데 대졸이든 고졸이든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증권사의 영업 부문, 창구에 대졸자를 배치하면 퇴사하는 경우가 많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고객에게 주식 종목을 추천했는데 고객이 와서 따지며 달려든다면 많이 배운 직원들이 견디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10년만 버티면 좋은 학벌로 유력한 임원 후보가 될 수도 있는데 고객응대, 허드렛일 이런 걸 못한다"고 말했다.

한편 고졸로 입사했다고 평생 학벌이 고졸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고졸로 입사해도 A씨처럼 야간으로 대학을 졸업하는 경우도 많다. 2년 정도의 해외연수 코스를 통해 외국계 컬리지 등도 다닐 수 있다. 회사의 지원이 뒤따르는 경우도 많다. 이번에 고졸 정규직 신입사원을 선발한 금투협 측도 대학진학시 등록금을 지급하는 등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번에 고졸 채용 면접을 본 최봉환 금융투자협회 경영전략본부장은 "선발된 학생들의 자질에 깜짝 놀랐다"며 "전 사회적으로 고졸 채용 기회가 더 많아져야 하고 지속돼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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