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길 흥 돋우고, 전통시장선 덤 오가고

머니투데이 (제주)=이용빈 기자 2011.10.1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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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멍! 쉬멍! 걸으멍! 제주 올레길의 끝에서 시장을 만나다

편집자주 만추(晩秋)다. 가을은 걷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 꼭 이맘때 제주만큼 걷기 좋은 곳이 있을까. 걷기 여행자들이 손꼽는 가장 아름다운 길, 제주 올레를 찾았다. 끊어진 길을 잇고, 옛길을 찾고, 사라진 길을 불러내 만들어진 이 '소통'과 '교감'의 길이 벌써 탄생 만3주년을 맞았다. 차로 찍어놓은 여행지만 골라 다니는 여행이 띄엄띄엄 찍은 점의 여행이라면, 제주 올레는 그 점들을 이어가는 긴 선의 여행이다. 점찍듯 둘러보고 훌쩍 떠나는 여행에서는 볼 수 없었던 제주의 속살을 올레를 걸으면서 발견할 수 있다. 첫해 방문객 3만 명이던 이 길은 올해 들어서만 60만 명이 다녀갔다. 이젠 너무나 유명해진 걷기 여행의 진원지, 제주 올레는 지금 전통 재래시장과 연계해 또 다른 기적을 만들고 있다.

올레길 흥 돋우고, 전통시장선 덤 오가고


바다 색깔과 닮은 청명한 하늘이 가을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화창한 가을날 비행기 안에서 내려다본 제주의 모습은 아름답다는 수식만으론 부족하다.

옅은 소라 색과 짙은 창포 빛이 함께 어울린 물살, 감귤 밭을 이리저리 휘돌아나가는 돌담, 제주의 자연이 안겨준 구릉에 흐드러진 은빛 억새.



하늘에서 본 제주의 모습과 땅위에서 만나는 제주의 풍경은 또 다르다. 끝없이 이어지는 구릉은 여인네의 부드러운 젖가슴 같고, 떨기나무 짙푸른 숲과 쭉 뻗은 도로는 자연과 인공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가른다.

암녹색 숲을 빠져나온 바람은 제주 바다 속의 나풀대는 해초를 닮은 목초 밭을 쓸고 지나간다. 그곳엔 말떼들이 그 게으른 천성을 즐기며 유유자적한다.
쇠소깍∼외돌개를 잇는 올레 6코스(14.4km)는 서귀포 바다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는 해안구간이 특히 아름답다. <br>
쇠소깍∼외돌개를 잇는 올레 6코스(14.4km)는 서귀포 바다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는 해안구간이 특히 아름답다.
쇠소깍을 출발해 외돌개까지 이어지는 올레 6코스(14.4km)로 길을 잡았다. 서귀포 바다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는 해안 길로 올레길 중 가장 아름답다고 알려져 있는 곳이다. 이중섭 거리와 천지연폭포 위 산책로를 거쳐 외돌개까지 이어지는 해안·도심의 '하이브리드'형 올레다.



억새가 춤을 추는 깎아지른 절벽, 푸른빛이 넘실대는 바닷가의 정취가 일품이다. 추사 김정희가 9년간의 유배생활을 하면서 모든 것이 다 아름답다는 뜻의 '만휴(卍休)'라는 경구를 남긴 바로 그 바다다.
올레 6코스의 끄트머리인 외돌개 인근 구간.올레 6코스의 끄트머리인 외돌개 인근 구간.
걸어본 사람이면 누구나 감탄사가 나온다. 시간이 없어서 한 코스만 맛보기를 원하는 초보 올레 꾼에게 추천하는 길이기도 하다.

작은 길과 길을 이어 만든 올레 길은 이제 지역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올레 길과 서민생활의 실핏줄인 전통시장이 만났기 때문이다.

제주의 옛 모습을 만나는 가장 쉬운 장소는 바로 재래시장. 가장 제주적인 것을 찾아나서는 여정은 아름다운 자연만을 찾는 나들이보다 그 맛이 각별할 수밖에 없다. 제주전통시장은 올레코스와 연계해 관광객을 끌어 들이면서 '문화관광형' 전통시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올레 길에서 시장을 만나다
서귀포 매일올레시장.서귀포 매일올레시장.
제주 서귀포 매일시장은 '서귀포 매일올레시장'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제주 올레 6코스가 시장을 경유하도록 연계했다. 7코스와도 연결되는 요지다.

국토 최남단에 위치한 상설시장, 서귀포에서 가장 큰 시장이라는 상징성과 전국 최초 자동 개폐되는 아케이드 등 특색을 지녔다.
매일올레시장의 수변물길. 민물장어 등 토종물고기를 방류해 방문객들이 휴식과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배려했다. <br>
 매일올레시장의 수변물길. 민물장어 등 토종물고기를 방류해 방문객들이 휴식과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중섭 생가 거리와 인접해 있는 입구에는 길이 150m, 폭 1m의 수변 공간이 조성돼 있다. 천지연 민물장어 등 토종물고기를 방류해 관광객들이 휴식과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배려했다. 천장에 장식된 발광다이오드(LED)가 조명을 바닥에 비춰 걸어 다니며 감상할 수 있는 갤러리를 표방했다.

서귀포 매일올레시장은 올레길 코스에 편입되면서 일평균 시장 방문객이 부쩍 늘었다. 올레꾼의 발길이 자연스레 시장으로 옮겨졌기 때문이다.
전통시장이 가진 인간미 넘치는 인정과 흥정, 덤이 오가는 훈훈함이 지역적 특색이라는 문화의 옷을 입어 관광명소라는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한 것이다.

△청정해역의 신선한 메뉴판…동문수산시장

애월읍 광령1리 사무소에서 용두암 산지천을 잇는 올레길 17코스(18.4km) 구간에는 30여 년 동안 제주지역의 수산물을 유통해온 동문수산시장(064-752-8959)이 올레꾼의 발길을 붙든다.

올레 17코스는 '근심이 사라진다'는 뜻의 무수천을 지나 옛 선비들이 달빛 아래 풍류를 즐겼다는 외도월대와 알작지 해안을 거쳐 산지천 자락에 이르러 비로소 마침표를 찍는다.

해산물 특화시장인 동문수산시장은 신선한 갈치와 옥돔, 고등어, 한치, 자리돔 등 각종 활어부터 다양한 어패류까지 연중무휴로 운영된다.
동문수산시장의 특산품 중 하나인 자리돔.동문수산시장의 특산품 중 하나인 자리돔.
'생산자 직거래' '당일배송' '최저가 판매' 요즘 유행하는 인터넷 쇼핑몰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동문수산시장을 둘러본 느낌이다.
말 그대로 '당일바리'로 갓 잡아 올린 싱싱한 해산물과 철마다 달라지는 다양한 갯것 그대로의 감칠맛에 인심 푸짐한 전통시장의 걸쭉한 분위기가 더해져 제주 특유의 맛이 배어난다.

육지에서 볼 수 없는 갖가지 수산물과 특산물을 저렴한 가격에 맛도 보고 살 수도 있다. 1kg짜리 자연산 다금바리 한 마리가 회와 매운탕을 포함해 11만 원 정도에 거래된다. 1인당 상차림 비용 5000원씩을 지불하면 시장에서 갓 구입한 각종 해산물들을 원하는 입맛대로 조리해 주는 간이식당이 시장 곳곳에 있다.

△할머니 좌판은 '보물창고'…제주 민속오일장

제주에는 재래시장이 아예 관광 상품이 된 경우도 있다.
매월 2, 7일 열리는 제주시 민속오일장이다. 점포 수 1000개가 넘는 시장엔 말 그대로 없는 게 없다. 각종 농수산물은 물론 가축들·한약재·옹기가게·대장간·간이식당 등 이 모든 것들이 생명의 에너지로 넘쳐난다.

잘 팔리기 때문인지 닷새에 한번 세상 구경 하려는 시골노인의 나들이인지, 섬과 뭍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장터가 꽤 붐빈다. 장날이면 인근 4곳 대형마트의 매상이 뚝 떨어질 정도로 명물이 됐다.

지역에 사는 할머니들이 직접 키운 것들을 판매하는 '할머니 장터'가 유명한데 친환경 농산물을 저렴하게 살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유명세를 타고 있다.

비닐 하나 깔아놓고 수북수북 쌓아놓은 열무·부추·취나물 혹은 배추와 상추 솎음들, 도시에서 카트 끌면서 쇼핑하는 대형 매장에서는 절대로 만날 수 없는 보물들이 널려있다.

산과 들녘에서 나물 캐는 '생명의 전달자' 시골 촌로들이 돌아다니며 먹을 만한 것들을 뒤섞어 채취한 것을 그대로 들고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나물이 한 종목씩 모여서 나는 것이 아니니, 뒤섞인 것이 자연스럽다. 이곳에선 좋은 포장, 대량판매보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거래가 우선이다.
제주 민속오일장에서 만난 현규필(91) 할머니. '할머니 장터'에서도 가장 연장자 중 한명이다.  제주 민속오일장에서 만난 현규필(91) 할머니. '할머니 장터'에서도 가장 연장자 중 한명이다.
할머니들은 시장의 토박이 상인한테 밀려 대개는 시장의 중심까지 진입도 못하고 변두리 한 귀퉁이에 비닐 깔고 장사를 하는 경우가 많지만 제주 민속오일장은 만 65세 이상 할머니들을 위해 시장 한편에 무료로 장터를 마련해 두고 있다.

사람 냄새 물씬 나는 제주시 민속오일장은 옛 모습 그대로 장터의 기본인 '교류'에 중심이 맞춰져 있다.
조선말 보부상의 상거래 장소로 태동했던 100여 년 전 모습도 그랬을 것이다. 집에서 가져온 강아지와 닭, 텃밭의 채소, 그리고 직접 일궈낸 잡곡들이 농민들의 손에 들려 나왔을 것이다.

변하지 않는 정취에 취하고 기계적인 친절함이 아닌 사람 냄새나는 정에 마음을 빼앗기면서 5일장의 하루가 무르익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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