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농 된장과 함께 익어 가는 연해주의 꿈

머니투데이 김현동 바리의꿈 대표 2011.10.07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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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러시아 연해주 고려인들의 가을

유기농 된장과 함께 익어 가는 연해주의 꿈


이 즈음이면 러시아 연해주 프림코 농장의 김따냐 씨는 자식 같은 햇콩 수확에 마음이 설렌다고 말한다. 10여년전 우즈베키스탄에서 고향인 연해주로 귀환한 후 먹고 살 일이 막막했던 그 겨울이 생각날 때마다 더 부지런히 콩밭을 돌봐왔던 그녀이다.

본격적인 겨울로 접어드는 연해주의 10월, 고려인 정착마을의 여러 공동 작업장은 더욱 손길이 바빠진다. 10월 20일경 추수가 얼추 끝나면 장공장이 가동되고, 새 콩으로 메주와 청국장을 만드느라 곳곳에서 구수한 냄새가 피어오른다. 숙성실에서는 잘 익은 된장들이 한국으로 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한국의 동북아평화연대가 고려인 농업정착 지원 사업을 시작한지도 어언 7년이 흘렀다. 그리고 그 토대 위에 연해주 고려인자활을 지원하는 현지 단체인 동북아평화기금이 동북아 생협을 목표로 사업을 진행한 지도 3년이 된다.

고려인의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위해 동북아평화기금이 운영하는 프림코농장은 한반도와 더불어 콩의 원산지인 연해주에 안성맞춤인 콩 농사를 시작했다. 비료·농약을 살 돈은 물론이고 일손도 모자라는 형편이라, 씨 뿌리고 거두는 일 외에는 손 갈일이 거의 없는 것이 다행이었다. 빈 땅은 널려 있으니 콩 밭이라 해도 야생콩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이제는 콩 생산이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고 수확물의 2차 가공을 위한 가공장까지 갖추었다. 한걸음 더 나아가 비유전자조작(non-GMO)식품 찾기가 거의 불가능해진 최근의 콩식품 시장에 맞서, 유전자 조작 없는 건강한 콩을 유기농법으로 재배하는 대표적 농장이라는 은근한 자부심마저 가지고 있다.

현재 연해주 농장은 약 1,000톤 정도의 콩 생산이 가능하다. 이는 가구당 소비량을 년 50kg 정도라고 볼 때, 약 2만 가구에게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규모이다.

비유전자조작 메밀과 토종콩 400ha(120만평)의 완전 유기농 경작과 한국 인증 업체를 통한 유기농 인증 2년차 작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장류 뿐 아니라 대두박과 콩기름 유제품 공급 요청도 들어오고 있어서, 가공시설을 추가하여 차츰 생산량을 늘려갈 계획이다.


10월말이면 경기도청과 경희대 자원봉사단의 도움으로 대표적 고려인 정착촌인 고향마을 에 새로운 장류 가공장이 완공된다. 내년에는 참여 가구를 더욱 늘려 스페인의 몬드라곤 같은 협동조합 기업 모델을 접목하려 한다.

그간 사회적기업 ‘바리의 꿈’에서는 연해주 생산 콩 판매를 위한 농장 생산품 판매에 애써 왔다. 이제는 소매 판매에만 그치지 않고, 생산자와 소비자를 하나로 잇는 ‘동북아 생협’으로 거듭나려 열심히 뛰고 있다. 내년에 그동안 힘을 보태주신 분들과 함께 가칭 '좋은 콩 생협'이라는 소비협동조합을 시작하려 한다.

올해는 그 전 단계로 직거래 공동 예약구매를 시도하여 지난 1월에 메주를 20킬로그램씩, 모두 7톤을 공급하였다. 메주를 구입한 회원들의 평가가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그래서 오는 11월엔 그동안 숙성시킨 된장 10톤 회원예약판매를 다시 하고, 내년 1월엔 햇콩으로 만든 메주 30톤을 같은 방식으로 공급할 계획이다.

생협 회원들이 늘어나 자리를 잡으면 연해주 생산자 협동조합과 더불어 중장기 수요공급계획을 같이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그간 상업적인 유통 체계에 기대느라 턱도 없이 들쑥날쑥 하는 주문량과 1년 단위로 이루어지는 생산-가공의 주기를 맞추지 못해 늘 불안정했던 농장 시스템도 안정될 것이다.

왕에게 버림받은 바리데기 공주가 서역서천을 돌며 귀중한 약초를 구해 아버지를 살린다는 옛 우리 설화에서 이름을 따 온 '바리의 꿈'이 바야흐로 동북아코리안네트워크에서 그 결실을 보고 있어서 고맙고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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