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담배를 못 끊은 기자는 늦은 밤 가끔씩 동네 24시간 편의점을 찾곤 한다. 아가씨는 아니지만 앳된 청년이 두 달 전부터 담배를 팔고 있다. 스무살이 갓 넘은 것 같은데, 날이 갈수록 얼굴이 창백해지는 듯했다. 눈이 따가울 정도로 밝은 형광등 아래서 밤을 지새는데 오죽할까 싶었다. 인공조명에서 나오는 자외선은 태양광의 2배라고 하지 않는가.
이 청년을 지난 주말 영화관 매표소 앞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아는 척하기 어색했지만 자꾸 시선이 갔다. 영화 <도가니>관으로 들어가는 줄에 서있었다. 꼬박 밤을 새면 지쳐서 나가떨어질 텐데 스트레스 확 풀리는 할리우드 액션영화도 아니고, 왜 하필이면 가슴 도려낼 듯 아프게 하는 이런 영화를 선택했을까. <도가니>는 광주 한 장애인학교에서 교장 등에 의해 자행된 무참한 성폭력 사건을 고발한 영화이다. 재미와 스릴이 아니라 인권유린과 실패하지만 살아있는 정의를 말하는 영화다. 이 청년은 왜 스릴보다 정의를 선택했을까.
우리나라의 편의점 수는 2만개가 넘는다. 청년 1명씩만 밤에 일한다 쳐도 2만 명의 청년들이 10분만 있어도 머리 지근지근한 수십 개 형광등 아래에서 밤을 지새고 있다. 어차피 시급 받고 밤새워 일할 어른들은 별로 없지 않는가. 편의점 뿐 아니라 맥도날드, 롯데리아 같은 패스트푸드 업체와 커피 프랜차이즈까지 24시간 영업을 하는 나라이다. 20대 청춘들의 밤샘 노동을 전제로 말이다.
이 또한 유린이 아닐까. 낮 시간도 부족해 24시간 영업을 내세워 대한민국이 청년들을 유린하고 있다. 차라리 <도가니>에서처럼 유린의 주체가 분명하면 연대해서 저항이라도 해볼 텐데, 24시간 편의점 청춘들에 대한 유린은 사회질서로부터 자행되고 있다.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고, 누구의 책임인지도 불분명하다. 저항조차 할 수 없기에 더 무서운 유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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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들의 편의를 얘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심야영업을 통한 수조원대 소비시장 확대를 얘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쁜 일자리도 없는 것보단 낫다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수만, 수십만 청춘을 유린하는 편의라면 차라리 불편한 게 낫고, 24시간 영업으로 늘어나는 소득이라면 차라리 덜 벌어도 청년들을 밤에 재우는 게 낫지 않을까. 청년들을 창백하게 죽어나가게 하는 일자리라면 차라리 없는 게 낫지 않을까. 최저시급만 정할 게 아니라 최대영업시간도 정해야 할 상황 아닌가.
다시 보니 담배가게 아가씨만 예쁜 것이 아니었다. 할리우드 액션영화가 아니라 <도가니>를 선택한 우리 동네 편의점 알바 친구도 참 예뻤다. 24시간 편의점에 진열 시키기엔 너무 아까운 청춘이다. 예쁘니까 청춘이다. bryu@